/ 사진=정회은 기자
△방학이면 많은 대학생들이 정형화된 코스로 해외여행을 떠나요. 짧은 시간에 최소비용으로 최대한 많은 걸 보려 하죠.
-정신없이 많이 보려고 다니는 여행은 내 점만 찍은 거고.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빈곤의 흔적이에요. 여행마저도 효율적여야 한다는 강박. 근데 그런 효율이 말이 되나요? 사람이 어딜 가면 찬찬히 들여다보고 느끼고 맛을 보고 사람들과 대화를 해야 뭔가 나한테 남는 거지. 직접 맛을 봐야 알지 그저 맴돌기만 하면서 맛이 날까?
루브르 잠깐 보고 시간 없다고 다른 도시로 가잖아요. 다시 생각해 보면 이게 얼마나 우스운 일이야. 내가 지금 볼게 눈앞에 잔뜩 있는데 다른 데로 간다는 게. 일부러 수고해가면서 돈 내고 이동하는 게 비효율 아닌가요?

△사람들은 여행 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결국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길을 따르게 되는데.
-그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죠. 그런데 나는 새로운 길로 가는 게 뭐가 두렵냐고 묻고 싶어. 그리고 왜 망설이는지 적어보라고 하고 싶어. 그럼 대안이 나온다니까. 아플까봐? 그럼 병원에 가면 되고. 사고가 생길까봐? 그럼 조심하면 되잖아요. 뭐가 두려운지 모르겠단 거지.
병원을 찾아야 할 응급 상황이 닥칠 확률이 얼마나 높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잖아 사실. 여행자 보험 들고 주의할 거 주의하고. 그래도 어떤 나쁜 일이 생기면 그건 어쩔 수 없어요. 근데 그건 여행에서 생긴 일이 아니라 서울에서도 있을 수 있죠. 외로울까봐? 거기서 친구 사귀면 되지. 여권 잃어버릴까봐? 재발급 받으면 되지.
이런 의미 없는 망설임과 두려움이 여행의 본질을 파괴하고. 더 많이 경험하고 느낄 가능성들을 망가뜨리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나만의 여행을 해보란 말이에요.

△선생님이 말하는 ‘나만의 새로운’ 여행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무조건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는 데를 가라는 게 아니에요. 가이드북을 찬찬히 보되 Must Do 리스트에서 자유로워지라는 거지. 가이드북에 짧게 소개돼도 궁금하면 가보라는 거죠. 완전히 동떨어진 델 가라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가야 된다고 말하는 데가 내키지 않는다면 과감히 포기하라는 거죠. 마지막으로 여행의 일정 전체가 예측가능하다면 재미없지 않을까요? 여행은 우연을 만나려고 가는 거 아닌가?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지세요.

△남과는 다른 여행을 특히 강조하시네요.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하는 호텔에 묵고, 모든 사람들이 빠르다는 교통편을 이용하고, 모든 사람들이 맛있다는 음식점엘 가고. 모두들 다 그렇게 여행하니 이상하지 않아요? 여행은 일상을 버리러 가는 건데 뭔가 일상적이지 않나요?

△남과 다른 여행이면 성공이라 보시는 건가요.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앞서 했던 경험을 다시 하진 않을 거란 거죠.

△배낭여행을 자주 가시던데 강조하시는 ‘자유’ 때문인가요.
-우선 ‘배낭여행’이라는 말부터 고쳐야 할 것 같아요. 이 말은 20대만이 적은 돈으로 하는 여행이라는 편견을 전제한 거 같아요. 배낭여행이 아니라 자유여행으로 불러야 맞죠. 배낭을 메고 가도 그 안에 구두가 들어있을 수 있어요. 잠은 싸구려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도 저녁엔 호텔 바에 가고 싶을 수 있잖아요.
여행은 그냥 여행이지 여행에 무슨 종류가 있어서 ‘어떤 여행’이라고 분류하지 말자는 거지. 50대 60대는 배낭여행 하지 못하나? 여행에 대한 어떤 단편적인 사고방식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거예요.

△여행에 대한 또 다른 강박관념이 있을까요.
-여행을 떠나면 뭔가 막 자기성찰을 하고 돌아와야 될 것 같은 어떤 강박이 생기나요? 뭔가 내가 변하지 않고 돌아오면 안 될 것 같다는 이런 거. 그런데 그런 변화는 자연스러운 여행의 일부분이에요. 우선은 일상에서 벗어난 그 상황을 즐겨야죠.
또 대학생 때 여행 꼭 해야 되나요? 그것도 강박이죠. 남들 다 하니까 자기도 여행을 꼭 해야 할 거 같은 강박. 글로벌한 인간이 돼야겠다는 강박.

△‘자유’로운 여행을 위한 계획은 어떻게 짜나요.
-여행 순서를 디테일하게 정하면 여행이 효율적으로 된다는 장점보다는 내 여행을 결박 지어버리는 단점이 크죠. 오히려 계획을 세우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재밌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럼 그냥 무작정 여행을 하시나요.
- 내가 무슨 막무가내로 여행한다는 게 아니에요. 티켓도 가능하면 싸게 살려고 하고 숙소도 예약을 하고. 가능한 스케줄을 짜려하지만 그게 본질적인 게 아니라는 거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여행 중에도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가만히 생각해보고 그 순간 그냥 그걸 하는 거예요.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 될 거 같아서 따라하는 게 아니라 거기 가는 내 이유가 있어야 뭔가 느낄 수 있다는 거죠.

△쏟아지는 여행 가이드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세요.
-뉴욕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왔는데 보면 어디를 가라, 뭘 먹어라, 다 명령조야. 솔직히 요즘 가이드북들은 잘못됐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누가 결정한 건지 참. 소개된 곳은 다만 그냥 퍼센트 상으로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일 뿐이에요. 그래서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현지인들조차 사람들을 비즈니스로 대하고. 내가 관광지를 잘 안 가려는 게 그 이유지요. 재미가 없어요.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 나처럼 똑 같은 관광객들이고 나를 상대로 장사만 하려고 하니까.

사진=정회은 기자
△진정한 여행이란 뭔지
-일상에서 벗어나서. 한국은 나한테 일상이잖아요. 이런 일상적인 환경에서 벗어나서 다른 가치, 다른 세계관,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느끼면서 내 삶의 한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게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이에요. 그냥 먹고, 보고, 사진 찍고 그런 관광을 여행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성공 여행을 위한 조언 한마디
-여행의 실패와 성공의 기준이 뭐죠? 자기만족! 그런데 여행에서조차 남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파리 갔다 오면 쏟아질 ‘루브르 봤어?’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루브르에 1시간 동안 들어갔다 나오고. 뭘 보고 올지도 중요하지만 뭘 하면 만족할지부터 생각하세요.

△여행을 떠나려는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내가 어떤 롤모델이 돼서 구체적인 답변을 원한다면 나는 별로 할 얘기가 없어요. 그건 나의 여행이란거지. 각자 자기만의 여행을 만드는 게 중요한 거니까. 자기 식대로 많이 보고 많이 느끼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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