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종 드 히미코 : 게이인 아버지를 증오했던 주인공 사오리(시바사키 코우 분)가 게이 실버타운 ‘메종 드 히미코’에 사는 사람들의 꾸밈없고 순수한 모습과 그 이면에 숨은 외로움, 고민을 접하면서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일본 영화.

■ Will&Grace : 여주인공 그레이스(Grace)가 게이 친구 윌(Will)과 동거하며 생기는 에피소드를 담은 미국 드라마. 여자 친구보다 더 세심하게 고민 상담해주는 윌을 보며 게이 친구에 대한 환상을 갖는 여성들이 급증했다. 한편, 패션 감각이 뛰어나고 돈 잘 버는 윌은 이성애자들에게 게이들이 다 그와 같을 것이라는 편견을 심어줬다.

■ 커피 프린스 1호점 : 여주인공 고은찬(윤은혜 분)은 남자라고 속이고 생활하던 중 최한결(공유 분)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동성애 코드’를 담아 새롭고 흥미로웠다는 의견에 대해 동성애자들은 ‘진짜 동성애’를 다루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최근 문화 트렌드로 급부상한 ‘동성애 코드’에 대해 △민노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최현숙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 한채윤 △한국레즈비언상담소 간사 박은우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장병권 △여성주의 저널 일다 기자 김영선 △본교 성소수자 동아리 사람과 사람 게이 3명에게 들어봤다. 본 기사에서는 이들의 생각을 정리해 게이와 레즈비언의 대화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커피 프린스 1호점, 사이비 동성애?

게이1: 요즘 <L word>랑 <Queer as folk>에 빠져 살아. 이젠 다운받지 않아도 케이블 채널로 동성애물을 볼 수 있어. 문화 분야에서 ‘동성애 코드’가 유행하는 것 같아. 심지어 <커피 프린스 1호점>같은 공중파에서도 동성애를 다뤘으니.

게이2: 그게 동성애를 다룬건가? 사실 처음부터 은찬(윤은혜 분)이가 여자인 걸 알았으니까 이성애자들이 거부감 없이 드라마에 몰입한거야. 또 은찬이가 여자라고 고백했을 때 한결(공유 분)이가 처음에 화를 내긴 했지만 결국 받아들이잖아. 진짜 동성애를 다뤘다면 그 때 한결이가 은찬이를 떠났어야지. 동성애자 입장에서 좋아하던 동성이 어느 날 이성이라고 말하면 몇 명이나 받아들일까?

레즈1: 하지만 한결이가 “네가 남자든 ‘외계인’이든 상관없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이성애자들이 실제 동성애자들이 동성을 사랑하는 마음도 저런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면 어느정도 제 몫을 한거야. 사회적으로 판단되는 존재가 아닌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거니까. 또 동성애에서 모티브를 따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세상이 변했다는 증거고.

레즈2: ‘이성애자’들의 세상이 변한거지. <왕의 남자>나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성공하고 ‘동성애 코드’를 담은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마치 우리의 인권이 향상된 것처럼 말하지만, 동성애를 문화 측면에서만 다루지 인권엔 관심이 없어. 동성애는 단지 하나의 ‘유행’일뿐이야. 


이성애자들이 보는 동성애물

게이2: 자본은 인권에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선 ‘시장성’만 가지면 되잖아. 동성애는 신선하고, 자극적이니까 ‘돈이 되겠다’고 여긴거지.

게이3: 동성애물을 보는 이성애자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어.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면 동성애자들이 서로 사랑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동성애자란 이유로 살해당해. 이걸 보며 이성애자들은 ‘불합리한 사회가 바뀌어야해’라고 생각하기보단 그냥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라고 여기고 말아.

레즈2: 게다가 이성애자들은 여전히 레즈비언에 대해선 잘 몰라. 사회적으로 약자인 여성이면서 동시에 동성애자인 레즈비언들은 이러한 문화 흐름에서도 소외당하고 있어.

레즈3: 레즈비언을 다루는 건 상품이 되지 않기 때문이야. 문화물의 주 소비자는 젊은 여성층이잖아. 잘생긴 게이들이 서로 사랑하는 영화를 보면 여성들은 감정 이입할 필요 없이 관찰자의 입장으로 기분 좋게 볼 수 있어. 하지만 레즈비언들의 사랑은 내 얘기, 내 친구 얘기가 될 수 있고, ‘우정’의 세계가 ‘사랑’의 세계가 되면 거부감이 생기고 불쾌하게 돼. 


멋있는 게이, 친구 삼고 싶다

게이3: 게이를 다룬 드라마, 영화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게이에 대한 새로운 편견을 심어줘. 60년대 할리우드 영화는 연쇄살인범처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게이로 다루고, 그 다음엔 게이에게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심더니, 이젠 완소남들만 게이로 나와. 잘 생기고, 돈 걱정 없는데다 패션 감각 뛰어나고. 그러다 보니 젊은 여성들이 게이에 대한 판타지를 가져. <Will&Grace>나 <Sex and the City>를 보고선 멋있고 친절한 게이 친구를 갖고 싶어하고.

레즈2: 이성애자들은 항상 그들이 상상, 허용하는 것 내부에서만 동성애를 통용시키니까. 지금 또 하나의 이성애자들의 욕망, 마초적인 남성의 반대인 친절하고 착한 남자를 게이라는 옷을 입혀 사용해. 이성애자들이 써 먹고 싶은 대로 동성애를 갖다 쓰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동성애자들의 현실, 그리고 희망

게이2: 난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하는 동성애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잘 살면서 왜 차별, 억압 운운 하는거야?’라고 생각하게 될까봐 겁나. 매일 우리가 부딪쳐 나가는 갑갑하고 폭력적인 현실은 외면당하고 있어.

레즈3: 사실 매체에서 동성애를 많이 다루고 그 존재가 가시화되면서, 동성애자들의 취약한 상황을 매개로 한 범죄가 증가했다고 레즈비언 상담소에서 일하는 언니가 말해줬어.

레즈1: 하지만 범죄가 표면화됐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어.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선 동성애자의 존재 자체를 몰랐지만 이제 영화나 드라마 등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동성애가 드러나기 시작했어. 앞으로도 계속 동성애물이 생산되다보면 이런저런 동성애자들의 삶을 다룰 거고, 그러다보면 우리의 실제 삶과 가까운 것도 나오지 않을까.

게이1: 그렇게 되리라 믿어. 언젠간 동성애를 다뤘지만 ‘동성애물’이라는 딱지보다 ‘멜로’라는 장르로 분류된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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