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지름신이 강림 하셨습니다’

22세의 김 모(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씨. 파운데이션을 사러 현대백화점 1층에 있는 바비브라운 매장에 들어갔다. 그러나 파운데이션만 사려 했던 김 씨의 눈에 완벽한 피부보정을 시켜주는 베이스, 매력적인 눈을 만들어주는 아이섀도우, 도톰한 입술을 만들어주는 립글로즈 등이 눈에 들어오는 거 아닌가. 김 씨는 결국 그 화장품들을 모두 구입했다. 가격은 40만원이 조금 넘게 나왔다. 원래 의도했던 소비는 아니었지만 김 씨는 그 화장품들의 기능에 만족하고 현재 잘 사용하고 있다.

한국개인신용(KCB)이 지난달 11일 각 연령별 신용위험도를 조사한 결과, 20대의 신용위험도가 198포인트로 50대에 비해 36포인트 높았다. 신용위험도는 신용 위험에 빠질 가능성을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포인트가 높을수록 위험도도 높다. 한국개인신용 관계자는 “20대는 일정한 소득이 없음에도 소비가 공격적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전했다.

공격적인 소비는 주로 충동구매로 나타난다. 이런 소비를 10대, 20대들은 ‘지른다’고 표현한다. 네이버 오픈백과에선 ‘지르다’의 반대말로 ‘절약, 인내’를 꼽았다. ‘지른다’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소비한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르는 소비와 합리적 소비는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요즘 20대의 소비는 ‘합리적으로 지르는 소비’가 많다. 본교 행동과학연구소 김기호 교수는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고, 소비도 마찬가지”라며 “지르는 것도 상황파악을 한 후 나름의 합리적인 판단 과정을 거쳐서 물건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때 ‘된장녀’로 논란이 됐던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보면 된장녀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학생회관의 값싼 밥을 먹는다. 샤넬 가방을 두르고 프라다 지갑을 샀지만, 지갑 안엔 1000원도 없다.

김 교수는 “이것은 개인의 합리적인 소비”라며 “비싼 커피를 먹으면 싼 밥을 먹는 게 당연한 경제적 완충작용이다”고 말했다. 즉, 된장녀는 나름의 판단 후 자신에게 맞는 합리적인 소비(브랜드 가치를 우위에 두는 소비)를 한 것이다.

또한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했던 고가 제품들이 기능적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 때문에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입할 때 심사숙고하지 않아도 합리적인 소비가 가능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LG경제연구소 박정현 선임연구원은 “요즘 제품들은 비슷한 기능, 가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20대 소비자들은 제품보단 남과 차별되는 높은 ‘가치’를 구입하고 싶어한다”며 “그 가치는 브랜드 이미지가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연구원은 “워낙 인터넷이 발달했기 때문에 20대 소비자들은 제품 정보를 훤히 알고 있다”며 “‘지르는 행위’도 결국 물건 살 때 필요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소비자를 ‘마켓 메이븐(Market Maven)’이라 한다.

그렇다면 ‘지르는 소비’는 앞으로도 계속될까? 박 연구원은 “사회가 변해도 어느 정도 연령대에 맞는 고정적인 사고방식을 하기 마련인데 아무래도 감성적으로 좀 더 치우치는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 역시 “브랜드가 가지는 영향력이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며 “감성적으로 물건을 팔고, 구매하는 행위가 더 증가할 것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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