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법전 중 질그릇에 새겨진 채 전해 오는 내용이다.  스승이 제자 둘과 함께 하는 수업. 스승이 말하기를 "이 문서를 삼키게나. 이 또한 옥수수와 같은 음식이니." 멕시코에서 옥수수는 우리 문화에서 쌀이 차지하는 것만큼의 비중과 오랜 역사를 지닌다. 스페인의 식민지 건설 이전에 이미 책을 숭상하는 문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이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가듯 올해로 24주년을 맞는 국제 박람회가 2월 20일부터 시작해 열흘간 계속되었다. 광산 채굴에 관한 전문 지식인을 양성할 목적으로 식민지 시대에 지어지기 시작한 아름다운 건물의 외양에 비하면 600여 개의 출판사가 참가한 박람회의 전시 형식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광업관'이라 불리는 도심 한복판에 있는 건물 바깥에까지 차양이 드리워지는데 주로 재고들을 큰 폭으로 할인해 주는 곳인지라 차량과 책먼지 속에서도 인파가 모여든다. 이름하여 국제 박람회이기는 하지만 멕시코 내의 여러 주에 있는 출판사들이 보여 주는 한 해의 수확을 구경한다는 의미가 크다. 올해는 멀리 북서쪽 국경 언저리에 있는 바하 칼리포르니아 반도(APEC 정상회담이 열린 바로 그곳이다)의 두 주(州)와 그 옆의 소노라 주가 새롭게 참여한 멤버들이다.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한 건물의 위용을 제외하면 겉으로 보기에 어수선한 전시이지만 그 목적이 단지 많은 책을 선전하는 데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개회사는 올해 박람회의 목적이 "문화와 지식의 보고로서의 책의 가치를 인정"하는 데 있음을 알려 준다. 각 분야의 책들이 장르에 따라 혹은 내용에 따라 좀더 다양하게 세분되고 저자들의 회의와 강연을 듣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언어와 문화, 역사의 여러 공통점 때문인지 라틴 아메리카 독립의 영웅들, 사상가들의 탄생 또는 서거 몇 주년 기념 발표회도 건물 안의 곳곳에서 빠지지 않는다. 올해는 "우리 이름으로는 NO"를 외치는 반전 시위대와 "나는 이렇게 썼다" 정도로 이해될 만한 작가들의 창작 과정 소개가 눈길을 끌었다. 이 시대를 말없이 대변하며 건물 곳곳에 나붙은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함께. 어떤 작가의 출판을 거부했던 저명 출판사에 항의했던  100여 명의 학생들의 시위도 이슈였다. 이 광업 관저가 분규로 이름 난(?) 우남 대학 소속인 탓도 있겠고 워낙에 사회적으로 반전 분위기가 확대되고 있기도 한 탓에 당국이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안정한 책의 미래가 특별히 멕시코를 비껴 가는 것 같지는 않다. 2억 8천 2백만 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이 나라에서도(2001년 집계) "멕시코는 책의 나라이지만 독자들의 나라는 아니다"라는 통탄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출판은 많이 하는데 그만큼 많이 읽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앞의 2001 년 집계에서 65퍼센트의 출판사가 국고와 관련된 지원을 받는 곳인데도 해적판 출간이 또 세계 3위라니 놀랍다. 그러나 이 나라의 어두운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책에 대한 지원이 보잘 것 없는 우리 현실을 돌아보는 마음은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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