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5일 런던 중심가는 대 이라크 전쟁반대 시위에 참여한 백만인파로 가득찼다. 하지만 영국역사상 최대규모의 반전시위에  즈음해, 대학 내에서 반전내용의 포스터들이나 대규모 학내시위는 찾아 보기 어렵다. 인간방패를 자원해 이라크로 출정하는 대학생들도 친구들이 술집에 마련한 조촐한 환송파티로 떠나보낸다. 런던집회를 앞두고, 케임브리지대학 총학생회는  반전결의안을 채택하기 위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결과는 응답자 과반수가  학생회 차원의 정치적 입장표명에 부정적이었다. 학생회 조직이 정치적 사안에 관련된 사업을 집행할 수 없는 현실적 제약도 있거니와, 개인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반전운동에 참여하는 데 더 의미를 두는 것이 영국 대학사회의 분위기로 보인다.
 
 오히려 학생대중이 당면한 관심은 등록금 인상과의 전쟁에 더 치우쳐 있다 해야 할 것이다. 영국정부의 대학정책은 세계수준의, 다시말해 미국수준의 대학이 되려면 미국대학수준으로 등록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열배이상 등록금이 인상될 판인 영국대학생들에게 자국정부와 미국이 원망스러운건 이라크 전쟁문제뿐만이 아닌 셈이다. 수십억 달러의 전비를 쏟아부을 여력이 있으면 재정부족에 허덕이는 대학교육개선에 돌려야 마땅하다는 영국대학사회의 여론은 전쟁반대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영국사회 여론전반이 대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극심하게 양분되고 있지만,  전쟁불가피론자와 반전론자 모두 이라크 민중들의 현실과 장래에 대해 실질적인 이해와 관심이 적다는 점에서는 닮은 꼴이다.  전국적인 반전시위 당일, 블레어 수상이 전쟁수행의지를 거듭 천명하면서 인용하는 바람에 하루 아침에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케임브리지 대학 일학년생 라니아 카쉬(Rania Kashi)가 반전시위에 참가하려는 친구들에게 보낸 이메일은 바로 이 점을 아프게 지적하고 있다.
 
 현 영국사회의 반전정서는  후세인 정권의 폭정으로부터 탈출해  온 그녀와 이라크에 남겨진 동포들에게는 아쉽고도 적절하지 못하게 보일 수 있다. 카쉬는 평화를 외치는 자들의 선의야 의심할 바 없지만, 미국이 자신의 노골적인 이해관계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치장해 진실을 가리우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정작 후세인 정권의 공포정치하에서 이라크인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수난이라는 또다른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이란-이라크 전쟁당시 미국과 영국이 지원했던 무기로 삼십여년 동안 백만명에 이르는 이라크인들이 학살되고, 1988년 생화학 무기로 단 하루만에 오천명의 이라크 내 쿠르트인들이 학살되는 반인류범죄가 저질러 지는 동안에  왜 아무도 항의시위에 나서지 않았는가. 지난 오년 동안 매주마다 영국내 이라크 난민들이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모여서 후세인 정권이 자국국민들에 대해 벌이는 더러운 전쟁에 대해 외로운 항의시위를 벌일 때 도대체 당신들은 어디에 있었는지, 그녀는 안타깝게 묻는다.
 
 막연히 반전시위에 나서기 보다는 차라리 영국과 미국정부가 후세인 정권을 제거한 뒤 이라크내 민주정부 수립을 지원하겠다는 지금의 공약이라도 반드시 지키라고 촉구하는 시위를 조직해야 한다는 호소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  예컨대 넬슨만델라가 이끄는 국제평화군이 조직되어 후세인 정권을 쫓아낼 수 없는 노릇인 바에야,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을 통해서라도 한시 빨리 이라크 민중들로 하여금 민주정부를 세울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의 영국과 미국의 일관된 이라크정책은 통제가능한 군부독재체제 유지였던만큼, 단지 후세인을 말잘듣는 또다른 후세인으로 바꾸는데만 관심이 있을 것이다. 정작 이라크의 민주화가 미국과 동맹관계인 주변 중동국 독재정권들을 위협하게 되는 상황은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방향으로든 이라크 상황이 매듭지어진 뒤, 영- 미 전쟁의 축의 다음 표적은 북한에로 겨누어질 가능성이 적지않다. 그날 런던거리를 가득 메웠던 그들은 과연 남북한이 전쟁의 참상에 휩쓸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 다시 시위에 나설까? 영국의 대학생들은 북한지역의 병원과 보육시설 앞에 인간방패로 막아 서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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