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지배자'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이 블라디슬라브(경영대 경영03) 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이다. 고국에서 세계경제외교대학교에 다니던 중 한국어를 배우게 된 것이 그와 한국의 첫 만남이었다.


"안녕하세요! Здравствуйте!"

이 블라디슬라브 씨는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자연스레 첫인사를 건넸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서 연해주로 건너갔다. 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이 씨에 이르는 4대의 삶이 이어졌다.

"스탈린 시대에 연해주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됐어요. 지금도 중앙아시아엔 고려인 인구가 25만 명이나 돼요"

끊어질 뻔 했던 그와 한국의 인연은 1991년 이 씨의 아버지가 한국에 오면서 이어졌다.

"우즈베키스탄 독립 후 한국에서 NGO분들이 왔어요. 아버지는 그 분들과 입국해 연세대 치대에서 교육을 받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교환학생을 와 편입을 생각했을 때 아버지께선 연세대를 추천하셨지만 전 고려대에 왔죠"

각별한 애정으로 고대생이 된 그이지만 이 씨의 학교생활이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향에서 한국어를 배울 때 소홀했던 탓일까. 한국어로 된 전공 강의 시험은 언제나 고역이었다.

"문제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해 아는 문제에도 손을 댈 수 없었어요. 처음엔 50문제 중 10문제 쯤 풀었는데 재수강해 마지막엔 35개 쯤 풀었죠. 그렇지만 학점은 여전히 별로였어요(웃음)"

처음엔 문화적 차이로 인해 선배의 술 권유에 화를 낸 적도 있는 그였다. 하지만 이후 이를 극복하고 한 커뮤니티의 부회장으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한국에서의 인연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만나게 된 인연에는 선배, 후배, 그리고 여자친구도 있다.

"러시아어 수업을 들었었어요. 그 때 선생님께서 학점을 쉽게 줄 순 없다며 한국어로 시험을 보라고 하셨죠. 그 때 도와줄 노문과 학생을 소개해주셨는데 그 학생이 지금의 제 여자 친구에요"

본교에서의 기억을 뒤로하고 그는 지난달 25일 졸업, 한국의 에너지관련 대기업의 사원이 됐다.

"구소련 쪽으로 진출하고 있는 석유개발사업부에 있어요. 상대 기업들이 모국어가 러시아어인 사람과 연락하는 것을 좋아해 운 좋게 뽑힌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새내기 사회인인 그는 앞으로 사회에 가치를 더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우선 제가 속한 곳에서 열심히 일할 거예요. 훗날에는 NGO에서 치과의사로 봉사하시는 제 아버지처럼 사회에 가치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돈보다 그게 훨씬 중요한 것 같아요"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