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신약개발역사는 20년이 채 안 된다. 지난 1999년 국산신약 1호인 ‘선플라’ 탄생을 시작으로 2004년 ‘팩티브’가 미국 FDA로부터 신약 승인을 받았지만 100년이 넘는 선진국의 신약개발 역사와 성과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신약개발은 인간 게놈 지도의 완성과 더불어 눈에 띠게 발전했다.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수천 개의 ‘의약 작용점’을 예측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질병에 대한 미시적인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신약개발의 열기가 고조되고 새로운 신약개발 기술도 개발됐다. 신약개발의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수많은 의약 작용점 가운데 질병에 직접 관여하는 특정 작용점을 알아내고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의약 후보물질’을 체계적으로 창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케모인포매틱스(Chemoinformatics, 이하 케모)다.

‘Chemistry’와 ‘Informatics’의 합성어인 케모는 화합물의 구조, 생물학적 작용부위(active site)를 비롯한 생 ? 화학적 자료를 컴퓨터상에서 정보화하고 규칙화해 단백질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활용하는 과정을 말한다. 신약개발의 전 과정에 적용, 개발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돼 신약개발 과정을 가속화 시키는 도구로 통한다.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화합물을 목표단백질에 결합시키는 가상검색(virtual screening)을 통해 신약의 선도물질(lead compounds)을 탐색하고, 더 좋은 활성을 갖는 화합물로 최적화하는 과정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한다.

고전적인 신약개발은 △질병 타깃 발굴 △의약합성 △약효검색 △동물에서의 효능검색 △약동력학(ADME/Tox-Absorption, Distribution, Metabolism, Excretion/Toxicity) △임상연구 순으로 진행된다. 먼저 질병을 일으키는 물질(target)이 확인되면 이를 조절해 약이 될 수 있는 선도물질을 탐색한다. 이후 수많은 선도물질의 기능기를 변형시켜 가며 생물학적 활성이 뛰어난 화합물로 선도물질을 최적화한다. 최적화한 선도물질을 찾아내면 쥐, 원숭이, 토끼 등의 동물 모델에서 전임상시험(Preclinical test)을 실시하고 최종적으로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연구(Clinical study)를 진행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하나의 신약이 개발되려면 최소 12년 이상의 시간과 약 8억 달러의 비용이 소요된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가상검색을 진행하는 케모를 활용하면 신약개발의 기간 및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케모는 신약개발 초기단계에서 ADME/Tox를 예측하고 디자인한 화합물을 실제로 합성하기 전에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다. 따라서 컴퓨터상으로 약효를 가늠해 우수할 것으로 예상되는 화합물을 합성해 실패요인을 줄일 수 있다.

신약개발 과정에서 케모는 바이오인포매틱스(Bioinformatics)와 임상연구의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바이오인포매틱스는 DNA/RNA 염기 서열을 기반으로 유전자의 기능과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 등을 분석해 단백질의 분자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바이오인포매틱스 역시 컴퓨터를 활용하는데 인간 게놈 지도의 완성으로 유전정보량이 증가하면서 그 중요성이 커졌다. 이는 주로 신약개발의 초기단계인 질병 타깃을 발굴하고 검증하는데 활용된다.

검증된 질병 타깃을 바탕으로 케모는 △구조-기반 분자설계(Structure-based drug design) △리간드-기반 분자설계(Ligand-based drug design) △정량적 구조-활성관계 연구(Quantitative structure-activity relationship) △ADME/Tox 예측 등 여러 가지 컴퓨터 활용 기술로 의약 선도물질의 발굴 및 최적화에 활용된다. 구조-기반 분자설계는 목표로 하는 단백질의 X-ray 3차원 구조가 알려져 있을 경우 사용하는 방법으로 목표단백질의 리간드 작용부위를 분석하고 결합력을 높일 수 있는 구조적 변형을 설계한다. 또한 작용부위에 데이터베이스의 화합물들을 결합시켜(docking) 활성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리간드-기반 분자설계는 목표 단백질의 구조가 알려져 있지 않을 때 사용된다. 기존에 알려진 리간드의 화학구조를 분석하고 우수한 활성의 가능성이 있는 부분을 찾아내 이를 이용한 분자 설계나 가상검색을 실시한다. 정량적 구조-활성관계 연구는 약물의 약효가 그 화합물의 화학구조가 갖는 특징과 정량적 관계가 있다는 가정 하에 화학구조와 약효의 정량적 관계를 도출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ADME/Tox 예측은 화합물의 2D/3D 특징을 분석해 화합물의 물성과 막 투과성, 생체 이용률, 심장독성, 메타볼리즘(metabolism)에 대한 안정성 등을 예측하는 것이다. 약물 디자인 초기부터 예측 가능하므로 선도물질 최적화 단계에서 드는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케모 연구는 연세대학교 Bioinformatics & Molecular Design 연구소(소장=노경태 교수·생명공학과)와 숭실대학교 분자설계연구센터 등의 대학을 비롯해 △LG생명과학 △한미약품 △중외제약 △종근당 △동아제약 △이큐스 팜 등 국내 제약회사가 관심을 가지고 진행 중이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는 지난 2002년부터 케모를 활용한 신약개발기반 구축사업을 진행해 왔다. KIST 케모인포매틱스 연구단은 △신경성 통증 △알츠하이머 △우울증 등의 뇌 질환과 질환영역별로 새로운 타깃을 개발하고, 신약 후보물질 도출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감수 : 배애님 책임연구원(한국과학기술원 케모인포매틱스 연구단)
       본교 이동호(생과대 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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