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길은 17세기 중엽 이후 조선의 국가사회를 새롭게 만드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산림 유자(儒者)며 기호 예학의 대표학자다. 아울러 당시의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고 다양한 사회 개혁정책을 주도한 사상가이자 정치가이기도 하다. 송준길의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다. 동춘당은 그가 거주하던 회덕 송촌에 세운 당명(堂名)을 가리키는 것으로, ‘만물과 더불어 봄을 함께 한다(與物同春)’라는 의미다.

동춘당의 철학사상에 대한 연구는 그의 위상에 비해 일천하며 기존의 연구 성과도 많지 않다. 이는 학계가 동춘당을 예학자로 국한시켜 이해했고 ‘양송(兩宋)’이라는 범칭 아래 동종동문인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과 묶어서 평가해왔기 때문이다. 동춘당을 예학자로만 이해하거나, 우암과 사상적?정치적 경향이 같은 철학자로 이해하면 그의 진면목은 밝혀질 수 없을 것이다. 동춘당의 삶과 철학이론은 긴밀한 내적 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그의 주경적 삶 속에서 표출됐다.

동춘당은 효종의 산림 우대 정책으로 스승인 신독재, 우암 등과 함께 효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으며 북벌계획에 깊이 참여했다. 효종이 죽은 뒤 효종의 계모였던 자의대비가 상복을 몇 년간 입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인 기해예송(己亥禮訟)에서 우암과 함께 보편주의적 입장에 근거한 기년복(일 년 동안 입는 상복)을 적극 주장해 관철시켰다. 이후 동춘당은 대사헌, 좌참찬, 찬선 등에 여러 차례 임명됐으나 기년복의 잘못을 규탄하는 남인들의 반대로 사퇴했다. 향리인 회덕 동춘당에서 향년 67세로 영면할 때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중국 속어 사전인 <어록해(語錄解)>를 비롯해 <동춘당집(同春堂集)> 48권 26책을 남겼다.

동춘당은 율곡→사계→신독재로 이어진 기호학파의 적통을 이어받은 철저한 주자(朱子)의 문도(門徒)였다. 그의 주자학 존숭(尊崇)은 동춘당이 처했던 학풍과 역사의 긴장된 상황 속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주자학 일색이었던 당대의 사상풍토, 가문의 학풍과 사계 김장생(金長生) 부자 및 장인인 우복 정경세(鄭經世)의 영향, 주자가 본 남송(南宋)의 현실이 곧 조선의 현실이라는 인식 등이 그것이다.

동춘당은 예학에 밝은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사계의 사후에는 사계의 아들인 신독재 김집(金集)과 장인 우복으로부터 배웠다. 사계와 우복은 주로 사상과 처세 면에서 동춘당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짐작된다. 죽음도 불사하고 대의를 지키는 정신, 시속(時俗)과 결코 타협하지 않는 기개와 청렴결백한 인품은 그의 전 생애를 지배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예(禮)’를 통한 덕성의 함양을 강조하는 사계의 가르침은 동춘당에게 춘추대의(春秋大義) 정신과 독자적인 예설(禮說)을 확립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

동춘당은 성리학적 입장, 즉 이기론(理氣論)에서는 대체로 율곡의 학설을 따랐다. 그는 우주만물을 형성하는 시원적(始原的) 존재로서의 이(理)와 기(氣)를 동시에 인정하면서 이와 기의 묘합이응(妙合而凝)의 관계를 중요시 했다. 그러나 동춘당은 이에 더욱 근원성과 가치를 부여했다. 모든 존재가 이와 기로 이뤄진다는 점에선 하나지만 각기 고유한 특성이 있어 양자는 논리적으로 구별된다는 것이다. 그는 율곡의 이기설(理氣說)을 계승해 이를 자신의 철학사상의 바탕으로 삼았지만, 이의 일차성?가치성을 인정하고 더 중시하는 입장은 퇴계의 입장과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심(心)의 문제가 인욕에 이끌리기 쉬운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 도심(道心)이 일신(一身)의 주인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마음 지키고 다스리는 공부’, 즉 수양론(修養論)을 강조했다. 동춘당이 말하는 도덕수양의 요체는 바로 ‘경(敬)’이다. ‘경’이란 인간의 수덕수양에 있어 핵심적인 개념으로서 수기(修己) ? 안인(安人)의 양면을 포함한다. 그런 점에서 동춘당의 철학을 ‘주경(主敬)의 철학’이라 명명할 수 있다.

이렇게 확립된 주경철학은 그로 하여금 주자학적 도학의 정통을 자임하면서 남다른 도덕적 지향과 현실성에 투철한 삶을 살게 했다. 이는 학문적으로 기호유학과 영남유학을 집대성하려는 노력으로, 정치적으로는 당파를 초월한 대의를 추구하는 융화적인 자세로 표출됐다. 결국 동춘당이 추구한 참된 현실이란 인심(人心)과 인욕(人慾)에 의해 조작되지 않고 천리(天理)와 도심(道心)을 실현하는 세계며, 주경철학을 바탕으로 ‘내수외양(內修外攘)’의 이상을 현실에 구현해가는 인간 본연의 도덕적 순수성과 의리정신이 살아 숨 쉬는 세계였다.

동춘당이 강조한 ‘경’사상은 극단적 물량주의(物量主義)와 육신주의(肉身主義)에 의해 인간의 본성이 파괴되고 황폐화되는 이 시대에 인간의 품위와 도덕성을 한 차원 높여줄 수 있는 사상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것은 오늘날 만연된 지식과 정보 및 기술 위주의 교육풍토에서 벗어나, 인간의 참다운 도리를 밝히고 완성을 도모하는 전인적인 인간교육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송인창(대전대 철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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