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두 번은 불법정치자금과 관련된 기사를 접하는 오늘날, 불법 정치자금은 한국 정치 저(低)발전의 대표적인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도 불법정치자금과 관련해 친박연대, 창조한국당의 당선자와 정당관계자가 검찰의 조사받고 있어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사태는 과거 정치자금 문제와는 다소 다른 특징을 보인다. 거대 정당이 아닌 소수 정당에서 불법정치자금문제가 발생했다는 것과 특별당비 혹은 차입금 형식을 교묘히 이용했다는 점이다.

소수정당이 불법적 정치자금에 현혹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거대 정당에 비해 선거자금을 모금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정당 후원회가 금지돼 있기 때문에 정당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선거보조금 규모에 맞춰 선거운동을 진행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3월 말 17대 국회 교섭단체의 여부, 국회의원 의석수, 17대 총선 득표수 비율에 따라 각 정당에게 18대 총선의 선거보조금을 지급했다. 통합민주당에는 129억, 한나라당 117억, 자유선진당 16억, 민주노동당 20억, 창조한국당 2천만 원, 친박연대에 6천만 원의 선거보조금을 각각 지급했다. 창조한국당과 친박연대에 제공된 선거보조금은 가장 낮게 책정된 제주시 을의 총선후보자 선거비용제한액인 1억 5천만 원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이 정도 규모의 자금으로 정당이 효과적인 선거운동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하향식 공천방식이 대세였던 18대 총선은 공천헌금 등의 불법이 조장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정치자금의 제도적 허점도 문제다. 정치자금을 후원회에 기부할 때는 연간납입, 기부한도 등이 정해져 있지만 특별당비엔 명확한 규정이 없다. 각 정당은 당헌ㆍ당규에 특별당비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만 있을 뿐, 규정이 모호하거나 아예 없어 특별당비가 불법정치자금의 통로가 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선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적정 수준의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모금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개정된 정치관계법은 선거자금제도의 투명성과 공정성 강화, 소액다수 중심의 후원제도 등 선거자금제도 개선에 크게 기여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정당의 주요 자금원인 정당후원회를 폐지함으로써 정당의 합리적 정치자금조달을 막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당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선거에 들어가는 비용을 선거보조금의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당 스스로 선거와 정당 운영을 위한 최소한 자금은 모금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중앙당의 후원회를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후원회 제도는 뚜렷한 논리적 근거가 없이 폐지된 측면이 강할 뿐만 아니라, 후보자 후원회 제도에 비해 정치발전에 긍정적 효과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특별당비에 명확한 규정을 만들고 공개하도록 해야 하며 투명성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각 국가는 추구하는 정치이념과 정치자금의 특수성을 고려해 독자적인 정치자금제도를 고안해 왔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다양한 정치자금제도가 실시되고 있으나, 어느 제도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공감대는 아직 형성돼 있지 않다. 정치적 가치, 이를 테면 자유와 형평, 절차와 결과, 목적과 수단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정치자금제도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보호는 제도를 선택하고 있다. 우리도 불법정치자금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한국 민주주의에서 어떤 가치에 더 중점을 둘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우선시 돼야 한다.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정치자금제도를 개선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임성학(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교수
한국정당학회 연구이사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