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종일 TV를 보는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3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왼쪽 팔과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어느 날 어머니가 TV를 보다가 무심코 말한다. “저런 거 찍으면서 저 사람들은 재미있을거야” 아들은 말한다. “엄마도 찍어볼래?” 나는 어머니에게 연기를 연습시키고 그녀의 인생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녀의 남편에 대해, 그녀의 자식들에 대해, 그녀 자신에 대해, 그리고 그녀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계속되는 질문의 끝에서 결국 한 편의 영화가 된다. (영화 ‘엄마의 영화, 빨간 구두 아가씨’)

“저 산도 봐. 내려가는 길이 있는가 하면.. 또 올라가는 길이 있어”

어린 시절 난 매일 아침 아빠의 향긋한 로션냄새에 눈을 떴고, 하얀 셔츠차림으로 출근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요즘 아버지는 두세 켤레의 양말을 신고 털모자로 귀를 가린 채 집을 나선다. 하루 종일 길가에 서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난히도 추웠던 99년 겨울부터 아빠는 거리의 상인이 되었다. 두 달 넘게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서류가방을 든 채 집을 나섰지만 이제는 아내도 딸도 그의 든든한 후원자다. (영화 ‘거리의 상인’)

지난해 언론학부 수업 실습과제로 제작된 학생 작품 두 편이 ‘2008년 부산 아시아 단편 영화제’ 본선에 올랐다. 이용의(언론01) 씨와 이현주(언론02) 씨의 영화는 700편의 경쟁 작품을 뚫고 당당히 국제대회 본선에 진출했다. 두 작품은 얼마 전 부산 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선정되어 관객들 앞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만든 영화로 국제영화제 본선 진출의 꿈을 이룬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실습용으로 만든 단편 영화가 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선정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들었다.
이용의(이하 용의) 영화를 찍으면 꼭 크고 작은 영화제에 출품하고 있어요.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거나 상영작으로 선정되면 그만큼 제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될 확률도 높아지니까요. 그동안 여러 번 출품했는데 본선에 진출하게 돼 믿기지 않을 만큼 기뻤어요.

이현주(이하 현주) 처음 영화를 만들어봤는데 본선까지 진출해서 뜻밖이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일 영화제 사이트에 들어가서 조회해보기도 했어요(웃음).

두 분 모두 영화의 소재를 가족에서 찾으셨는데

이현주(언론02)씨와 이용의(언론01) 씨 (사진 = 정회은 기자)
현주) 아버지가 대기업 사원에서 말 그대로 ‘거리의 상인’이 되신 후부터 저희와 어머니께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세요. 하지만 사실 저희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거든요. 말로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영화를 통해서 아버지께 ‘우리는 지금의 아버지가 충분히 자랑스럽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용의) 저희 어머니는 3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로 왼쪽 팔 다리를 쓰시지 못하세요. 병이 들고 나이가 늘어가면서 어머니는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물이 돼간다는 느낌을 받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머니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드리고 싶었죠. 영화에서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난 살아갈거야’라는 대사를 따라하는 장면도 그러한 의도를 반영한 것이에요.

두 영화가 구현하는 주제가 희망과 치유라는 내용이라던데
용의) 영화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 놓고 어떤 식으로 영화를 구성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생각났죠. 영화를 찍고 감상하는 과정에서 저와 어머니가 아픈 기억과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길 바랐어요.

현주) 주제를 정하고 영화를 기획한 것은 아니었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시는 아버지를 통해 저희 가족의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었죠.

본인이 나온 영화를 보고 부모님들께선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
현주) 촬영을 준비하면서 아버지와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리서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촬영 중에 가지고 다녔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그걸 보고 우시더라구요. 그동안 딸과 대화할 기회가 많이 없으셨는데 영화 때문에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감정이 복받치신 것 같았어요. 촬영이 끝나고 영화를 보실 때엔 오히려 담담하셨고요.

용의) 어머니께선 당신이 출연하신 영화를 보시면서 많이 웃고 즐거워하셨어요. 한 번은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을 불러놓고 가진 영화 상영회에 어머니를 초대했는데 영화 상영 내내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고 하시더라구요. 영상으로 현실을 담아내니 그 모습이 우스우셨나봐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용의) 졸업 후엔 다양한 일을 해 보고 싶어요. 장사도 해보고 방송계에 종사하고도 싶구요. 다양한 경험이 좋은 영화를 만드는 자양분이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 영화감독을 하고 싶어요. 그 때쯤엔 나를 치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감싸안아주고 싶어요. 그런 영화가 내가 꿈꾸는 영화고 영화가 내게 갖는 의미죠.

현주) 저에게 영화는 ‘세상은 아직 살만 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매개체예요. 제가 만든 영화도 관객들에게 그러한 의미로 다가갔으면 해요. 광고 계열에서 일하는 것이 오랜 꿈이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영화 쪽으로 직업을 가져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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