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얼굴을 붉힐 일이 생기기도 하고 때론 그것이 원치 않은 상황인 경우도 있다. 물론 인간과 인간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그럴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과정보다 중요해야만 하는 이 공간에서, 싸움을 싫어하는 나에겐  정말 후회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막 수습보로 들어와서 설문조사를 하던 때다. 설문조사엔 딱히 노하우라는게 없어 해도해도 힘들었다. 두꺼워지는 얼굴이 노하우라면 노하우라고 해야되나. 특히 의대의 경우는 설문조사를 하기에 어려운 곳 중 하나로 꼽히는데 운이 없게도 가위바위보를 잘 못해서 그곳을 맡게 됐다. 설문조사를 하려고 셔틀버스를 타고 의대 앞에서 내리긴 했는데 무척 난감했다. 학생회실과 복도 지나는 사람 몇 명 붙잡고 낑낑거리며 했으나 받아낸 건 겨우 5장.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의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의학과 학생회장에게 부탁을 해보기로 했다. 될까 안될까 하며 전화를 했는데 다행히도 흔쾌히 해준다고 답했다. 다음날 학생회장을 만나 설문지 30장 정도를 주고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나를 ‘기자님’이라고 부르며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닌 듯 반갑게 인사를 보낸 그 형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추가로 설문조사를 해야 할 일이 생겨버렸다. 미안하지만 다시 한 번 그 학생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고, 그는 시험기간이라 바쁘다면서도 해보겠다고 했다.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설문조사를 받으면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하며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도움을 줬다 안줬다 여부를 떠나서 그는 친하게 지내고 싶은 인품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요일쯤에 부탁한 거라 설문조사 결과도 급했다. 전화로 언제 줄 수 있냐고 물었고 시험기간이라 조금 늦는단다. 취재부장님은 언제 줄 거냐며 자꾸 재촉해온다.

어느덧 금요일. 이날은 고대신문사 창간 60주년 기념행사가 있어 행사준비와 설문지가 겹쳐 일이 바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휴대폰마저 집에 놓고 와 버렸다. 간신히 번호를 기억해내 동기 휴대폰을 빌렸지만, 오래 빌려 쓰기는 미안했다. 학생회장도 오늘 시험이 있다고 해 무작정 전화하기도 힘들었다. 최대한 압축해서, 그러나 재촉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문자를 써서 보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나도 답장이 안 오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해 봤더니 받지 않는다. 무슨 일일까. 하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진 않았다. 언제 받을 수 있을지가 나는 더 궁금했다.

몇 시간 후, 신문사에서 행사 준비를 하며 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들이닥쳐 나를 찾았다. 그 학생회장이었다. 나는 반갑고 미안하고, 또 고마운 마음에 얼른 나가봤는데 그의 얼굴은 무척 상기돼있었다. 그는 나에게 완성된 설문지를 내던진 후, 너무 화가나 여기까지 걸어왔다며 시험 보는 사람 입장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버럭 화를 냈다. 그리곤 다시 씩씩거리며 건물 밖으로 사라져갔다.

당황스러웠다. 좋아하던 사람에게 본의아니게 피해를 줬다는 점이 그랬다. 모든 모습을 신문사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도 그랬다. 아무래도 문자 내용이 불친절하고 매우 재촉하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내 딴에는 정말 조심스럽게 보낸 건데, 문자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가지 않은 하나의 기호에 불과하다 보니 의미가 잘못 전달됐나보다. 그 후 내가 전화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연락한 기억은 없다. 그리고 이 일 이후론 취재원을 대할때 가급적 전화로 하려고 노력을 한다.

지금도 그의 메일 주소를 내 메일함에 넣어놓고 있다. 사과편지라도 보내려고 의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의 메일주소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몇 번을 망설이다 결국 보내지 못했다. 일이 바빠 꽤 오랜 기간 그 일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씩 떠올리고 메일을 보낼까 하곤 한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그리고 그 외에 생각이 짧아 말다툼 했던 여러 나의 고마운 취재원들, 또 기분 나쁜 말을 하기도 했던 동기들, 같은 부서인 이가현 누나, 류란 전 국장님, 이후연 국장님, 이보람 부장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누구든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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