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곽동혁 기자)

‘잠시만요’

짧은 인터뷰 도중에도 유호열(인문대 북한학과)교수를 찾는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그가 시시각각 변하는 남북관계에 정통한 몇 안되는 북한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바쁜 일상을 살고 있다. △안암(일반대학원) △세종(북한학과) △대전(행정대학원)을 오가며 강의를 하고, 북한 관련 정부부처나 시민단체 자문은 물론 각종 학회 활동도 하고 있다. 학부와 대학원, 서울과 지방을 넘나드는 그의 강의 편력 덕에 제자들의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현직기자 △영관장교 △국회의원보좌관 △탈북자 △외국교환학생 등이 모두 그에게 북한학과 정치학을 배우고 있다.

학창시절 안암골의 유 교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1974년 본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그는 1학년 때 영자신문사(GT)에 들어갔다. GT에서 기자생활을 하며 당시 김상협 총장과 차범근 선수 등을 인터뷰했고, 신입생 본고사 성적을 다룬 특종보도를 하기도 했다. 이외에 스피치연구회 활동을 했고, 대학원생 시절에는 중단됐던 안암모의국회를 부활시키기도 했다. 그는 “고시나 취업준비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 노력했다”며 “이런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을 심어준 모교에 늘 감사한다”고 말했다.

기자를 꿈꾸던 그가 교수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대학원 시절 한승주 교수를 만나면서다. 그는 한승주 교수가 풍기던 학자로서의 분위기에 매료됐다. 2년간 한승주 교수의 조교를 하며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통일연구원 창설멤버로 재직하다 지난 1999년부터 본교 북한학과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제자와의 교류에도 열성적이다. 세종캠퍼스 관현악단 세미클래식에서 학부생들과 트럼펫을 연습하며, 지난 2006년엔 대전 엑스포 아트홀에서 가족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유 교수의 개인 블로그(www.cyworld.com/yoohoyeol)는 그가 제자들과 소통하는 창이다. 조홍래(대학원ㆍ북한학)씨는 “교수님이 제자들의 관심사를 하나하나 기억해 잘 챙겨주신다”며 “개인적인 고민은 블로그를 통해 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에게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물었다. 그는 “여러 행정 업무들에서 벗어나면 미뤄뒀던 책을 집필하고, 남북 통일과 관련해 학문적 국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개인사를 비교해 남북한 역사를 고찰해 보려는 계획도 있다. 강단에서 동갑내기 탈북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남쪽으로 내려와 북한학과에 입학한 그 사내는 유 교수와 똑같은 1955년생이었다. 둘은 비슷한 시기에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유 교수가 대학에 진학할 때 그는 군에 입대했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그가 학업을 계속하진 못했지만, 유 교수는 새로운 연구 과제를 얻게 됐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본교엔 개인이 가진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특유한 토양이 있다”며 “객관적 수치나 개인적 목표에 자신을 한정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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