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지영 기자)
대학 재학시절, 교수가 가장 되고 싶지 않았다던 그는 지금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허철(언론학부) 교수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창작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다보니 학교로 돌아오게 됐다며 웃음 지었다.

허 교수가 본교에 입학한 1985년은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 시기였다. 아직도 입학식 날의 전경이 눈에 선하다. “그때가 김준엽 총장의 마지막 행사였는데 축사에서 이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새끼호랑이로서 사회의 부정의에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돼라’고…” 그날의 입학식은 데모 현장으로 변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허 교수는 작은 개인과 거대한 세상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암울했던 그 시절의 허 교수에게 ‘음악’, ‘영화’ 그리고 ‘사랑’은 그나마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모 대기업에 입사했으나 정경유착의 폐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는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껴 그만뒀다. “한 기업의 직원이 아닌 제 이름으로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창작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허 교수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술학을 공부하고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미국에선 극심한 유색인종 차별을 보고 겪으면서 사회 그 자체에 크게 실망했다. 그래서 그는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 등의 문제를 여러 다큐멘터리 작품들에 담았는데, 이 중에는 미국의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아 공영방송에 방영된 것도 있다.

허 교수가 이런 작품 활동을 하다가 교수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은 경험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단순히 삶의 경험에 의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지도교수의 권유에 따라 박사과정을 밟게 됐다.

미국에서 창작 작업을 하면서 교편을 잡고 있던 허 교수가 갑자기 한국을 다시 찾게 된 계기는 지난 2006년에 열린 부산국제영화제다. 미국에서 12년 간 살면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다가 지난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게 됐고 한국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귀국을 결심했다. “지난 2005년, 2006년은 한국영화산업계의 가장 슬픈 시절이었어요. 거대 금융 자본이 들어오면서 질 낮은 영화들이 무수히 쏟아졌거든요” 작품 안에는 당대 시대상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허 교수는 자신의 인생철학이 담긴 대본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할 계획에 있다.

남들이 기억할만한 작품 하나는 꼭 남기고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허 교수는 학생들에게 가장 재미있고 즐거운 일을 찾으라고 당부했다. “취업 중요하죠.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행복을 주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고민해보고 거기에 매진하는 뚝심이에요” 그런 점에서 교수는 자신과 학생들의 위치가 같다고 말한다. 늘 무언가를 찾고 도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성이 지배하는 곳이에요. 대학 시절만큼은 지금의 순수한 감성으로 진짜 사랑도 해보면서 자유를 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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