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경민 기자)

‘대학생 작품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완숙한 구성미와 문체, 그리고 신화와 현실의 관계 맺기가 두드러졌다. 최인훈 이후 한국적 심성과 정서가 완벽할 정도로 잘 결합된 수작’

올해 갓 데뷔한 극작가 김지훈(인문대 문예창작학과 03)씨의 첫 작품이자 2005년 대산문학상 희곡상 수상작이었던 <양날의 검>에 대한 심사평이다. 혜성처럼 나타난 뒤 아무런 소식이 없던 그는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희곡 활성화사업 ‘창작예찬’에 자신의 작품을 공모해 입상하며 다시 연극계에 이름을 알렸다. 올해 초연된 그의 작품 <원전유서>와 <양날의 검>은 평단의 극찬을 받았고,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전적으로 우연이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극작가가 되었냐는 기자의 물음에 김 씨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는 시를 썼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내준 과제를 하러 연극을 보러갔는데 작품이 너무 형편없는 거예요. 기존에 있던 소설과 내용은 똑같은데 의상만 특이하게 입고는 ‘사디즘적인 관점을 통해 소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하더라고요. 보고나서 ‘저 정도면 내가 더 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죠”

그래서 쓰게 된 첫 작품이 <양날의 검>. 결과는 기대이상이었다. 작품은 대상을 수상했고, 사람들은 그에 대한 기대와 찬사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겁이 났다. “심사평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최인훈 선생님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최고의 문인 중 한분이잖아요. 제가 평소에 유일하게 존경하던 분이기도 했고요. 감히 비교된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했고…. 상을 받고 1년 정도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결국 일선에서 작업 해보자고 결론 내렸어요” 그날로 밀양행 기차를 탄 김 씨는 극작가 겸 연출가 이윤택 씨의 연희단거리패에 합류해 연극에만 매달렸다.

시간이 지나자 고민과 노력의 흔적이 글 속에 묻어나기 시작했고, 글에 대한 자신감도 되살아났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뿌리’가 생긴 것. “저는 배우는 입장이기 때문에 더더욱 뿌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뿌리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나무가 클 수 있고 그 나무로 좋은 집이 지어질 수 있겠어요? 전 자기 확신이라는 확고한 틀 안에서 제 글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그 결과 나온 작품이 지난여름 공연한 <원전유서>다. 김 씨의 연극은 ‘관객 중심’이라기보다는 ‘작가와 연출가 중심’이다. <원전유서>는 짧고 가벼운 작품 일색인 7~8월의 연극계에 장장 4시간 30분이라는 압도적인 공연시간으로 화두를 던졌다. 내용도 가볍지 않았다. 사실 긴 공연시간과 무게감 있는 내용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이가 죽어서 나무가 되는 일생’을 어떻게 한, 두 시간만에 가벼이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철학의 부재라고 생각해요” 그는 요즘 신인 작가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인문학적 소양의 부족을 이야기했다. “요즘은 아무도 철학을 알려고 하지 않고, 인문서적에도 관심을 갖지 않아요. 소설이라고 읽어봐야 베스트셀러 몇 권 정도에 불과하고요. 연극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수많은 극작가들이 있는데 이전에 나왔던 것과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쓸모있는 극작이 아니에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인문학적 소양이 얕다보니 수많은 작가들이 매번 같은 이야기만을 반복하고,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식상할 밖에요”

때문에 ‘다르게, 반대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것’, ‘철학적인 사유를 공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가 고대생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지금의 가치에 반대된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야당이 되라거나 데모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에 반대되는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는 사람이 앞으로 성공하고 최고가 될 수 있는 비결이라는 거죠. 학교를 다닐 때에 다들 그런 고민을 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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