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세 번 한다고들 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한 번, 길 위에서 한 번, 돌아와서 먼지 풀썩이는 배낭 속에 든 추억을 정리하며 또 한 번. 세 번째 여행이 생각보다 길고 힘들었다’
<길은 사람사이로 흐른다 中>

괴산군 집 앞에서.
양학용(문과대 불문89)씨와 김향미(문과대 독문88)씨는 967일 동안 47개국을 배낭여행했다. 들인 돈은 3600만원이 전부. 장소보단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기억하는 양 씨와 김 씨가 여행에서 돌아와 맞은 ‘세 번째 여행’은 967일 간의 여행을 책으로 정리하는 일이었다.

지난 21일(금) 오전 10시 반. 음성터미널에 마중 나온 김 씨의 모습은 소박한 시골 아낙이었다. “인터뷰 끝나면 감 따러 가요”라는 말에 웃으며 인터뷰가 시작됐다.

양 씨와 김 씨는 결혼 10년이 되던 지난 2004년 전세금을 전부 빼 훌쩍 여행을 떠났다. “결혼할 때 3년 후에 배낭여행을 가자는 약속을 하고 매달 20만원 씩 적금을 부었어요. 결국 10년 뒤에 가게 됐죠” 전세금을 다 빼 떠난다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냐고 묻자 김 씨는 “여행 후에 취직하고 월세에 살고 그럼 먹고사는 것은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그건 어렵지 않았아요. 그것보단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우리가 했던 일을 떠맡기고 가는 것 같아 미안했죠. 그게 힘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김 씨와 양 씨는 결혼 후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당시 노동운동은 생소한 직업이었기에 그 때부터 집안 어른들은 양 씨 내외의 범상치 않음을 인정했고, 훌쩍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파랗다'고는 설명이 안되는 터키의 티티카카 호수.
여행을 시작했을 때 처음 3개월 간은 과거와 미래의 삶에 매어있었다. “돌아가서 무엇을 할지만 생각했어요. 그러다 현재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때부터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어요” 그런 후에야 양씨와 김 씨는 스스로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이 찾은 해답은 ‘자기 자신에 귀를 기울이며 느리게 사는 것’



기억에 남는 여행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양 씨는 여행지는 제각각 매력이 있어 순번을 매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자신이 받았던 친절을 이야기했다. “그냥 친절하다고 하면 설명이 안 되요. 격을 갖춘 친절이라고 할까요. 한번은 이란에서 국경지점에서 버스를 갈아타야했었어요. 새벽이었고 예상했던 일이 아닌 터라 당황해만 하고 있었는데, 그 때 타고 있던 버스의 기사가 따뜻한 차도 주고 다음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줬어요” 그 기사는 자기 돈으로 표까지 끊어 좌석까지 안내해 줬다고 한다. “왜 이렇게 친절하냐고 물었더니 그게 ‘친구들’에게 하는 자기의 마음이래요”

물론 그들의 여행이 계속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여행을 오래하다 보니 권태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 도착할 때 즈음엔 여행이 곧 생활이 돼서 유적도 그냥 돌덩어리로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4개월 간 정착해 영어 공부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했죠”

그들은 여행을 즐거울 때, 힘들 때가 다 있는 하나의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여행엔 생로병사가 다 있어요. 위기를 맞기도 하고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면서 느끼는 점도 많아요” 에너지를 쏟는 것도 여행을 하나의 인생답게 만드는 이유라고 말했다. “여행을 떠나면 자기가 만나는 세상이 낯설고 새롭기 때문에 기억하고 사색하고 글을 쓰는 데 에너지를 더 쏟게 되죠. 평소에 글 잘 안 쓰던 사람도 여행가면 글 많이 쓰잖아요(웃음)”

여행하면서 만난 친구들에게 온 엽서들.
967일간의 여행은 그들의 삶을 여행 전과 다르게 바꿔놓았다.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취직을 해보았으나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미 저희들의 코드가 바뀌어있었어요. 여행가기 전에는 10년 동안 조직생활을 했는데 3년이란 시간이 우릴 확 바꿔 놓은 거죠” 결국 그들은 음성의 16가구가 사는 작은 시골마을에 현재의 집을 장만했다. 마당엔 감나무가 있고 집을 나서면 소가 우는 시골집이다.

양 씨와 김 씨에게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취업하기도 많이 힘든 때니까. 그렇지만 후배들이 인생을 장기적으로 보고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봤음 좋겠어요. 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생각하며 살았으면 해요. 그 안에 있는 내 모습도 생각하고 말이에요”

인터뷰를 마치고 마당에 나가 감을 땄다. 정말 감을 딸 줄은 몰랐지만 양 씨와 김 씨는 여행하면서 겪은 ‘자연스런’ 베풂을 그대로 기자에게 베풀고 있었다. 함께 식사를 하고 터미널까지 나와 배웅을 해주던 두 내외는 마지막 인사를 포옹으로 대신했다. “다음엔 인터뷰 말고 정말 대화하러 놀러와요” 그들은 버스가 출발하고 나서도 계속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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