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의 교수업적평가제도는 교수의 교육 및 연구활동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1998년 처음 도입됐다. 평가결과는 △직위승진 △호봉승급 △재임용 △정년보장 심사 등의 근거로 활용된다.

교무지원부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본교 교수의 직위승진 및 호봉승급 탈락률은 △2005년 6.9%(39명) △2006년 8.4%(55명) △2007년 9.3%(61명) △2008년 15.3%(159명)로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다. 교무지원부 이주리 과장은 “탈락 사유는 교수들이 평가자료를 제출하지 않아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자신의 업적이 부족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심사를 유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적평가 규정은 현재까지 네 차례의 개정을 거치면서 꾸준히 강화돼왔다. 특히 지난 2005년엔 승진 및 승급에 필요한 업적점수 및 논문 게재 편수를 대폭 높였으며 지난해에도 또 한 차례 개정이 이뤄졌다. 이는 연구중심대학을 강조하고 교수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적 추세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카이스트가 재임용 심사에서 25명 중 6명의 교수를 탈락시킨 데 이어 서울대가 정년보장 심사 기준을 강화하는 등 올해 들어 대학가의 개혁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이러한 교수 평가기준 강화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연구지원 사업의 대상으로 선정되기 위해선 일정 수준 이상의 연구실적이 필수적인 데다, 이는 해당 대학의 국내 및 세계 순위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최용철 연구처장은 “본교가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연구역량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지금까지의 규정에 더해 교수들의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본교의 교수업적평가는 △교육 △연구 △봉사 3개 영역에서 이뤄진다. 전임강사에서 조교수로 승진하려면 만 2년 동안 240점을, △조교수에서 부교수 △부교수에서 교수로 승진하려면 각각 만 5년 간 600점을 취득해야 한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직위승진은 유보된다. 특히 교수 4호봉까지는 전체 점수의 30% 이상을 연구업적에서 취득해야 한다.

많은 교수들은 이러한 업적평가의 취지에 공감했다. 이성준(생과대 식품공학부)교수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교수사회에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노력을 요구하는 자극제가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이 크다”고 평가했다. 국제학부의 한 교수 또한 “이런 제도가 있기 전엔 실적으로 인정하는 기준조차 없었다”며 “업적평가는 교수들이 그나마 열심히 연구하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상당수는 현재의 기준이 완벽하지 않으며 보완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논문 게재 수로 획일적 평가
본교 규정에 의하면 직위승진 및 호봉승급을 위해선 △SCI(과학논문인용지수) 등재지 △SSCI(사회과학논문인용지수) 등재지 △A&HCI(인문과학논문인용지수) 등재지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지 또는 등재후보지 등에 일정 편수 이상의 논문을 게재해야 한다.

이러한 평가기준은 객관성을 확보했다는 측면에선 일단 긍정적이라는 반응이다. 생과대의 한 교수는 “해당 분야에 파급 효과가 상위에 있는 학술지이므로 이들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은 바람직하며 평가에 반영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정 학술지에 논문을 몇 편 게재했는지 여부가 절대적 기준으로 적용되는 것에 대해선 꾸준히 문제제기가 돼 왔다. 언론학부의 한 교수는 “SSCI에 포함돼 있다고 반드시 훌륭하고, 포함돼 있지 않다고 해서 훌륭하지 않은 학술지가 아니다”며 “나의 전공 분야에선 SSCI에 포함돼 있지 않은 학술지 중 하나가 기타 SSCI급 학술지보다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데, 점수상 손해를 보는 나 같은 사람은 논문을 내려 하지 않으니 연구자로서 좋은 평판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토로했다.

단기간에 적지 않은 편수의 논문을 요구해 결과적으로 개별 논문의 질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적평가는 1년 단위, 호봉 승급 시엔 2년 단위로 이뤄지는데, 해마다 적어도 120점 이상을 취득해야 하는데다 승진(급) 최소기준도 충족하려면 적어도 1년에 두세 편의 논문은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교수는 “장기적인 연구를 하기 힘들고 논문 양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며 “정말로 하고 싶은 연구가 있어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 포기하고 빨리 나올 논문 위주로 연구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지난 9월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SCI 논문 발표 수는 세계 12위로 상위권이었으나 논문 1편당 피인용수는 논문 발표 수 5000편 이상인 50개 국가 중 30위에 그쳤다. 논문 피인용수는 해당 논문이 학계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쳤는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논문의 질적 우수성을 보증한다.

이러한 논문 물량주의는 학문적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교수들은 입을 모은다. 법과대의 한 교수는 “하나의 연구주제에 불과한 것을 단기적으로 자잘하게 나눠 업적평가에 대비하는 풍토는 이미 사실상 고착화됐다”며 “도서관에 비치된 서적과 연구논문 중에 과연 몇 권이나 소장가치가 있는지 반성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 역시 “낮은 수준의 논문이 넘쳐난들 해당 학계에도, 국가 역량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논문 개수로 밀어붙이는 후진적인 학문 풍토가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는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업적, 사실상 반영 안 돼
현행 규정은 교수가 전체 평가점수의 40% 이상을 교육업적에서 취득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세부항목을 살펴보면 △주당 강의시간당 4점 △석탑강의상 5점 △강의계획안 입력 ±1점 △석사 배출 1인당 2점 △박사 배출 1인당 4점 △학생지도 학기당 2점 등으로 질적 평가는 거의 이뤄지지 않으며 점수 또한 높지 않다. 예를 들면, 국제 저명 학술지에 논문을 실을 경우 80점을 부여하는데 석탑강의상 가산점은 5점에 그친다. 결국 국제 저명 학술지에 게재된 한 편의 논문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기 위해선 적어도 강의상을 16학기에 걸쳐 받아야 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육업적 평가는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그 영향력 또한 미미하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최준식(문과대 심리학과)교수는 “현 시스템에서 교육점수는 거의 자동으로 받게 돼 있다”며 “그냥 강의만 해도 수십 점을 받는데 석탑강의상이 불과 5점이라면 강의상도 의미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생과대의 한 교수 역시 “지금으로선 교수들이 연구에 비해 강의에 소홀하게 되는 것이 정상”이라며 “강의 업적의 비중을 높이되 강의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공정한 척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교육의 질을 평가하는 합리적 기준이 있느냐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안병윤(생과대 생명과학부)교수는 “교육평가엔 학생들의 강의평가가 산입돼야 한다”며 “그 외에는 강의의 내용적 수준을 평가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윤남근(법과대 법학과)교수는 “평가자의 주관에 따라 좌우될 수 있으므로 현재 수준 이상의 질적인 평가를 시도한다면 엄청난 부작용이 따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교수는 동료 교수들의 상호 평가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강의의 질적 평가는 교육 환경의 개선이 전제돼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신호정(경영대 경영학과)교수는 “현재와 같이 교수 학생 비율이 국제 기준에 못 미치는 현실에서 교수에게 일방적으로 양질의 교육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어떠한 형태로든 강의평가가 교수평가에 반영돼야 하지만 이는 학교 교육환경의 개선과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수는 미국의 예를 들었다. 미국 대학들은 △교육중심대학 △연구중심대학 △복합대학 등 3종류로 나뉘는데 연구중심대학의 경우 교수당 강의 과목수를 줄여 연구실적을 내도록 배려하며, 교육중심대학에선 강의에 대한 평가를 엄격히 하는 대신 논문은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들은 연구중심을 표방하지만 실은 복합대학에 가까운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연구 실적과 양질의 강의를 모두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의 좋은 것을 무조건 한국에 적용하려 하지만 정작 그런 나라들에서 어떻게 교수나 학생을 배려하는지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많은 연구중심 대학이 과연 필요하고 교육중심대학은 평가절하돼야 하느냐”며 “나라에서 돈을 주니 연구중심으로 가겠지만 어떤 방향으로 가야 진정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우리 사회에 기여하며 교수들도 숨을 쉬고 살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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