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경력
2004년 네팔로체(8,516m)남 벽신 루트등반
2007년 파키스탄K2(8,611m) 무산소등정& 브로드파크(8,047m) 연속등정
2008년 네팔 마칼로(8,436m)무산소등정&로체(8,516m)무산소 및 최단시간 등정 세계기록
2008년 파키스탄 세계최고 미등정봉 바투라-Ⅱ(7762m) 세계초등정(원정대장)
늦가을의 북한산은 인적이 없었다. 아침에 비가 온 뒤 쌀쌀해진 날씨에 스산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산악인 김창호(40) 씨는 “이런 날씨엔 산에 혼자 와서 산책하며 생각하기에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3명이 산을 함께 올랐지만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만이 북한산을 울렸다.

지난 4일(목) 본지 기자는 전문 산악인 김창호 씨와 함께 북한산에 올랐다. 우이동에 위치한 한국등산지원센터에서 만난 김 씨는 여느 등산객과 다름없는 푸근한 인상이었다. 간단한 등산용 겉옷과 가방, 등산화.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를 수차례나 산소병도 없이 오른 사람의 범상함을 찾긴 어려웠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건물 옥상에 올라가 오늘 오를 산을 간단히 둘러봤다.

“서쪽으로 쭉 가면 도선사를 거쳐 오르게 됩니다. 그 위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인수봉입니다.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안개가 많이 껴서 잘 안 보이네요. 여기서도 잘 안보이면 실제로 올라갈 경우 앞이 거의 안 보일 겁니다. 오른편으로 있는 게 도봉산입니다. 저쪽에 다섯 개 봉우리가 도봉산 오봉이에요. 오늘은 날씨도 안 좋아서 높이는 못 오르고 육모정 쪽으로 간단히 2시간 정도 올랐다가 와야 할 것 같네요”

삼각산으로도 알려진 북한산은 백두산, 지리산, 금강산, 묘향산과 함께 대한민국 오악(五嶽)에 포함되는 높이 836.5m의 명산이다. 북한산의 등산 기점은 △우이동 △4·19탑 주변 △정릉 청수장 입구 △구기동 세검정 △진관사·삼천사 입구 △북한산성 입구 등 크게 여섯 곳으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우이동을 기점으로 하는 등산로는 백운대를 오르거나 인수봉 암벽 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일행은 우이령으로 향하는 들머리에서 출발해 육모정 고갯길로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기 시작했다. 이 코스로 등산할 경우 산행 중에 백운대와 만경대, 인수봉을 볼 수 있다. 김 씨는 이것이 이 코스의 매력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처음엔 닦아놓은 듯한 완만한 길이 이어져  손을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늦가을의 산을 구경하며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붉은빛을 뽐내던 단풍 대신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하얀 하늘 아래 서있었다. 길 위엔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있어 밟을수록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임을 실감케 했다.

완만한 길옆으로 드문드문 철조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산의 일부 지역엔 군사시설이 있다. 김 씨는 문득 기억이 난 듯 말을 꺼냈다. “산악을 하면서 죽을 뻔한 고비도 여러 번 넘겼어요. 9·11테러 땐데,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지대에서 지하드에 가담한 청년에게 잡혀 총 맞아 죽을 위기에 처했어요. 다행히 풀어주기에 살아났죠. 높은 산을 오르기 전엔 사전 답사를 하는데 세계적인 고산(高山)들은 국가와 국가 간의 경계가 되는 경우가 많아 무턱대고 답사를 다니긴 위험해요”

걷다보니 완만하던 경사는 ‘육모정’이라는 팻말을 지나면서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북한산은 동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흙으로 이루어진 육산(肉山)이 아닌 큰 바위와 돌들로 이뤄진 악산(嶽山)이기 때문에 오르기 어렵다. 곳곳에 위치한 기암괴석은 맑은 날씨였다면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멋있었겠지만 비가 내린 후라 그런지 적막함마저 느껴졌다. 산행 중간 중간 미끄러져 넘어질 뻔하기도 여러 번. 주머니에서 손을 다시 빼 나뭇가지를 잡고 올라가지 않으면 어려울 정도가 됐다. 어느덧 다들 산타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말없이 산에 오른 지 30분 쯤 지났을까. 힘들어 거친 숨을 몰아쉬는 기자들과 달리 김 씨는 여전히 힘든 기색 하나 없이 가볍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힘들어 하는 기자들을 위해 김 씨는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자고 했다. 쉬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산을 둘러보는 김 씨에게 기자는 북한산이 동네 뒷산 같지 않느냐는 농담을 건넸다. 김 씨는 “저도 옷 안쪽에는 이렇게 땀이 나기 시작하는 걸요”라며 웃었다. “산은 높낮이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느 산이든 그 산의 매력이 있습니다. 북한산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멋진 바위가 많고 가을에는 단풍도 많이 피는 등 구석구석 예쁜 산입니다. 또 오르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고 바로 앞에는 세계 어느 강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한강이 흐르고 있어요. 우리 가까이에 이렇게 멋진 산이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김 씨의 히말라야에서의 산행이 궁금해졌다. 단 몇 시간의 산행에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한 달에 걸쳐 오르는 고산에서는 어떨까. 김 씨는 힘든 수준이 아닌 생사를 넘나드는 일이라고 답한다. 본래 산악인들은 고산을 오를 때 로프에 몸을 걸친 채 수천 미터의 암벽을 오르나 김 씨는 로프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 장비 없이 자연 그대로를 몸으로 느껴보고 싶은 이유에서다. 때문에 김 씨에게는 한 발 한 발이 더욱 소중해진다고 했다. 한 발에 삶, 다시 한 발에는 죽음이 얹혀 있어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발을 내딛을 때마다 삶과 죽음이라는 외줄타기를 하기 때문이다.

얼마간의 휴식 후에 일행은 말없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김 씨는 왜 죽음을 무릅쓰면서도 산악을 시작했고 계속 하는 걸까. “대학교 들어와서 산악부에 가입했습니다. 그땐 사실 이게 내가 정말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건 아니었어요. 그러고 보니 저의 첫 산행은 북한산에서였네요. 그 때 암벽을 로프 타고 오르는데 어찌나 힘들던지...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다가도 힘든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서 선배들이 사주는 고기와 술을 먹으면 ‘한주 더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한 주 한 주 하다 보니 어느덧 산에 오르는 일은 그냥 제가 해야 할 일이 돼버렸어요”

(사진=이지영 기자)
김 씨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전문 산악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조그만 사업을 하던 그는 30살이 되던 지난 1999년 사업을 정리하고 산악인의 길에 접어들었다. 하루하루 사업으로 바쁘게 지내던 그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 후 사업을 정리하고 남은 적은 돈으로 산행을 시작하게 됐다. 가족의 반대가 심했고 사는 것도 어려웠다. “당시엔 다닐 차비조차 없었어요. 어쩌다 친구를 만나 술이라도 마시면 남는 돈이 없어 집까지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도 집까지 걸음으로 걸리는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어요. 집이 목동인데, 종로에선 2시간, 강남에선 5시간, 잠실에선 8시간 걸립니다. 한 번은 사촌 형을 만났다가 예상치 않게 지출을 더 하게 돼 돈이 부족해졌어요. 형이 너 차비 있냐고 묻더라고요. 없다고 했죠. 형이 빌려준 돈을 가지고 집에 오는데 얼마나 부끄럽던지... 서른 살이 넘어서 뭐하는 짓입니까. 한동안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어요. 저 뿐 아니라 모든 산악인이 그랬을 거예요. (엄)홍길이 형 같은 사람도 지금은 많이 알려져서 넉넉히 살지만 예전엔 저만큼 힘들었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산에 오른 지 한 시간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비가 내린 탓인지 다섯시밖에 안됐지만, 벌써 산은 어둑어둑해졌다. 아쉽지만 정상까지는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아래로 향했다. 비를 머금은 바위와 낙엽 위를 지나갈 때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지만 올라가는 길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산에서 내려와 인근에 위치한 음식집에서 못 다한 얘기를 곁들여 오리고기와 술 한 잔 했다. 그가 말한 산행의 또 다른 묘미 중 하나였다. “새로운 모험을 위해, 홀로 새로운 환경 속으로 뛰어들어 탐사를 하며 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모닥불 피워 차 한 잔 마시고 작은 텐트와 침낭에 의지해 잠을 청하노라면 별이 정말 머리 위로 쏟아져요. 그런 자연 속에서 느끼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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