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전쟁이 일어났다. 개전 일주일이 지나면서 전쟁이 장기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어가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가는 전쟁의 희생자들의 참상이 보도되면서 반전의 목소리도 전세계적으로 고조되고 있다. 여기 일본을 비롯하여 전세계의 시선은 지금 분명 이라크에 쏠려있다. 이라크에서의 전쟁이 어떠한 결말을 낳을지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대량살상무기의 해체', '이라크의 민주화'를 전쟁의 명분으로 내건 미국의 태도에서 북한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우려하고 있듯이 이러한 주장들은 '핵무장 포기', '북한의 민주화'로 치환되어 북한에 대한 군사적 행동의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의 전환이 단순한 우려로 그칠 수 없는 것은 이라크와 북한을 '예측불가능한 위협'을 가져다줄 수 있는 존재로 표상해 왔던 미국의 시각이 최소한 이곳 일본에서는 매일매일 미디어를 통해 반복되고 있는 현실에 있다. 독재적 정치체제의 폐쇄성과 대량살상무기 보유의혹이 정보의 불충분에 의한 예측불가능성과 군사적 위협의 근거로 동원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북한이라는 '텍스트'를 보는 시각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보인다. 우선 한국에서 북한을 보는 시각은 전반적으로 이념적 적대관계의 시각을 탈피해 '민족'이라는 가치가 중시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햇볕정책에 대한 찬반이 하나의 쟁점을 형성했던 지난 대선의 결과가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삼일절에 벌어진 이념적 대결양상은 큰 차원에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이 아직은 이념적 가치와 민족적 가치의 '경합'하는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일본의 경우도 북한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은 북한을 앞서 언급했던 예측불가능한 위협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으로 규정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북한의 공작원에 의해 납치되었던 일본인의 귀국을 계기로 더욱 강화되고 있는 모습니다. 게다가 최근에 있었던 북한의 미사일시험발사 사건은 일본인들에게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환기시키는 소재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일본인들은 북한의 미사일개발에 크게 걱정하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북한의 수뇌부가 궁지에 몰렸을 때 일본열도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적 가치와 민족적 가치가 경합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게 북한은 어떤 의미에서 철저하게 타자적 존재이다. 그 타자를 지금의 일본은 북한이라는 텍스트를 예측할 수 없는 위협을 보유한 존재로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의 양'이라는 측면에서 북한을 다루는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뚜렷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북한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학술적 차원에서 북한관련 자료에 접근하는 것에도 여러 가지 제한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에 비해서 일본은 북한에 관한 자료에의 접근이 용이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곳 쓰쿠바대학의 경우만 보더라도 도서관에는 상당수의 북한의 출판물들이 구비되어 있다. 특히 눈에 띠는 특징은 방송미디어에서 거의 매일 북한 관련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TV프로그램은 일본내의 북한전문가들을 술집으로 불러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시리즈로 다루기도 한다. 그 소재도 다양해서 이른바 '기쁨조'로 알려진 집단의 공연모습부터 북한의 일반시민들의 생활상까지 다루고 있다. 이러한 정보의 양적 차이는 한국인들의 북한인식이 극히 제한적인 정보에 의해 구성되고 있는 반면, 일본의 경우는 선택된 정보의 내용이 어떠한가라는 문제를 제쳐두고 볼 때 다양한 정보와의 접촉을 통해 북한에 대한 인식을 형성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특징이다. 달리 말해서 북한을 민족적 가치를 통해 인식하려는 노력이 자칫 현실적 정보의 부재 속에서 오직 '민족'이라는 가치에 이끌린 공허한 주장으로 흐를 가능성에 주의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한국과 북한이 외부에서 어떻게 표상되고 있는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외부자적 처지는 한국사회와 북한을 상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라크와 북한을 부단히 유사한 집단으로 표상하는 일본사회에서 이번 이라크에서의 전쟁이 북한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피할 수 없는 듯 싶다. 그런데 이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행여 민족적 가치를 통해 북한과의 관계를 설정해 가려는 노력이 정보의 부재로 인해 공허한 선언으로 그치지는 않을까 문제도 이곳 일본에서 볼 때 걱정되는 것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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