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작가를 판단하고, 시대와 외형에 쉽게 속지 말길…
책으로 작가를 판단하고, 시대와 외형에 쉽게 속지 말길…
  • 공인주 기자
  • 승인 2003.03.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교와 예술관, 이데올로기 갈등, 한국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제를 정통적인 리얼리즘 기법으로 다뤄낸 소설가 이문열. 그의 눈빛에는 거친 세월이 훑고 지나간 인고의 깊은 흔적이 있다. 수만 권의 책 내음 가득한 서재에서 바쁘게 작품 마무리에 몰두하고 있는 이문열씨를 만나봤다.
 
△본교생이 만나보고 싶은 소설가로 선정되셨습니다.
- 요즘은 이상하게 이미지가 바로 실체가 되는 시대에요. 예전에는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있다해도 그 뒤에 또 다른 면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는데 요즘 세대는 이미지를 실체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대학교 교양 과정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친구나 후배 얘기를 들어보면 나를 모르는 학생들은 없대요. 이들이 각기 다 이견을 가지고 있는 거죠. 작가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그 작가의 책을 읽어봐야 하는데 요즘 세대들은 떠돌아다니는 이미지 중 하나를 자기 취향에 맞춰 선택을 하는거죠.

△소설 전문 인터넷 사이트에 <호모 엑세쿠탄스>를 연재하기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 호모 엑세쿠탄스는 처형하는 인간이라는 뜻이에요. 인간들은 초월적인 것에 대해 견디지 못하고 공공연하게 처형하는 특성이 있어요. 이것을 인간의 한 특성으로 보아 처형자로서의 인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죠.
호모 엑세쿠탄스를 인터넷에 연재한 이유는 이전에 인터넷 소설을 쓰기로 했던 약속이 있어서에요. 인터넷이라고 해서 반드시 가볍고 감각적인 것만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 오히려 관념적이고 진지한 주제로 쓰게 된 거죠.

△소설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 문학이 나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됐어요. 젊었을 때에는 세상을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어요. 그래서 삶 전체가 괴롭고 될 수 있으면 피해버리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이런 것들에 비해 소설을 쓰는 것은 덜 괴로웠죠.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이 글을 쓰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쓰신 대부분의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일정한 시기에 독자에게 사랑받는 글이라면 쓰지 않아요. 어느 시기에 내놔도 사람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죠. 또 하나로 나는 내 글의 중요한 독자에요. 내가 독자이고 그런 의미에서 전문적인 독자로서 건전한 판단과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죠.
내 글을 분석할 때 교양주의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는 그런 이유도 있을 거에요.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한번 읽고 다시 되돌아 볼 만한 것이 없다면 사람들이 읽지 않겠죠.

△문학의 독자들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 독자가 떨어져 나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산업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여러 방향으로 분산돼 문학에 대한 관심이 더욱 줄어든 것 같아요.
90년 이후에는 거대담론이 자취를 감추면서 개인적인 체험이나 주관적인 감성이 소설의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어요. 이런 소소한 것들 역시 훌륭한 문학의 주제가 될 수 있고 문학적인 성취가 될 수 있지만 대중을 오랫동안 만족시킬 수는 없죠. 그러다 보니 고만고만한 작가들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후학 양성을 위해 부악문원을 세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후학 양성이라기보다 등단할 때까지 다른 사람 눈치보지 말고 내 밑에서 책이나 읽고 가라는 의미에서 시작한 거에요. 부악문원에는 숙생과 객원 두 가지 제도가 있는데 숙생은 공통의 커리큘럼을 갖고 같이 공부하는 것이고 객원은 방만 쓰고 책을 이용하는 거에요. 작년부터 숙생은 부담이 돼 객원만 받아 지금은 한 7명 정도 있을 거에요. 금년부터는 숙생제도를 보완할 것인지 원래 계획한 대로 교육기관이 아니라 장학기관 또는 격려기관으로 남을지 고민중이에요.

△선생님께서는 한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정확히 서있지 않다고 이야기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한국에서는 진보도 보수도 개념이 왜곡돼 있어요. 현대사에서 비판받아야 할 악역을 맡은 사람들이 보수뒤에 숨었거든요. 원래 보수라는 개념은 친일이라든가 봉건시대 잔재, 대지주와는 상관없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보수가 봉건잔재와 친일을 껴안고 가는 형태가 돼 버렸어요. 진보라 하면 반드시 좌파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 진보하면 좌파라고 생각하죠.

△선생님께서는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시는 것 같습니다. 현재에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요소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지금은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다기보다 왜곡되고 있습니다. 예전에 군사정부 시대에 일어났던 정보 왜곡이 지금은 역으로 일어나고 있어요. 예전에는 홍위병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제는 홍위병이 아니라 탈레반이라는 단어를 써야겠다고 생각중이에요.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9분의 1인데 극악한 무리에요. 세계화 원리주의 대신 싸구려 민족주의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 탈레반의 특징이죠. 또, 탈레반의 특징중에 하나를 말하자면 10대의 정치화죠. 홍위병나 킬링필드도 10대가 정치에 참여해서 발생한 거에요. 그런데 지금 10대가 정치화하는 조짐이 보이고 있어 걱정입니다.
지금 와서 이런 얘기를 하면 군사정부 때는 가만히 있었다고 비난하는데 그건 말이 되지 않아요. 군사정부 시절에는 우리가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민주주의와 문민참여를 주장하고 나온 사람들이니까 군사정부 때처럼 그래서는 안되죠.

△지난 2001년 7월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라는 시론으로 이미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으셨는데….
- 세상에는 아무도 거절 못할 기본적인 원리라는 게 있잖아요. 이런 원리를 들어 처벌을 하기 시작하면 그 사회는 굉장히 불행해져요. 과거에 국회의사당에 불을 지르고 불지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며 공산당에게 방화의 책임을 물었어요. 이런식으로 나오면 누가 공산당을 용서하겠어요. 공산당 역시 이렇게 잡아넣은 거에요.
국가의 조세권 역시 국가의 권리라는 것에 대해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어요. 누구도 부정못하는 권리를 내세운거죠. 박정희 시대에도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사회안정을 내걸고 잡아간 것처럼 말이에요. 무엇을 내세웠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란 거죠.
제가 생각하는 문제는 언론개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신문 중에서 왜 조선일보를 골랐냐는 거에요. 이건 분명 보복적인 측면이 있어요. 여러 가지로 순수한 세무조사가 아니라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의를 제기 해야죠.그러지 않으면 독재자가 나와서 법과 권리를 내세워 마음대로 통치해도 할 말이 없어지는거에요. 아주 추상적인 ‘민족을 사랑하자’나 ‘착하게 살자’는 원리를 가지고 착하게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벌주기 시작하면 감당을 못하게 된단 말입니다.
처음에 나는 이 사건이 문화적 사건인줄만 알았어요. 그래서 장례식을 하든, 책을 태우든 문화적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참았는데 이것은 문화가 아니라 정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는 문화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 선거를 하는 것을 보니까 이것을 주도했던 사람이 노사모에 들어가서 정치에 참여하더라고요.  이것은 정치가 문화를 탄압한 거에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 열심히 작품을 쓸 생각입니다. 작가에는 정년이 없다고 하지만 작가도 정년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60세 이상이 되면 일을 못하는데 작가라고 해서 더 쓸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 제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10년 정도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지를 바꾸는 일에도 좀 신경을 써야 하지만 우선 내 본업을 충실하게 해야지요.

△마지막으로 본교생들에게 한마디 해주십시오.
- 시대, 그리고 외형에 너무 쉽게 속아넘어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앞선 세대의 사람들도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했어요. 지금에 와서 변한 게 없다고 평가되는 것일 뿐이에요.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시대 역시 전 시대가 있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 속에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외형과 감각에 휘둘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혼과 정성을 다하지 않는 글은 단 1매 조차도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작가 이문열. 자신을 가장 중요한 독자라고 생각하는 그의 소설에 대한 철학은 그를 최고의 작가로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게 한다. 반백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오늘도 그는 자신의 삶의 무게를 실어낸 펜 끝으로 독자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