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불평등한 사회의 한 단면일 뿐
결국 불평등한 사회의 한 단면일 뿐
  • 고대신문
  • 승인 2009.03.0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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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경제위기가 불어 닥치면서 실업과 빈곤 문제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IMF 구제금융지원으로 겨우 국가부도를 피했지만 곧이어 기업구조조정에 따른 △노동시장 유연화 △공기업 민영화 △금융시장 개방 △재벌기업 개혁 등이 동시에 진행됐다. 정리해고가 자유롭게 이뤄지면서 실업자가 급증했고, △임시직 △파견근로 △간접고용 △기간제 고용 △인턴 등 새로운 고용 형태의 등장과 함께 비정규직 또한 급증했다. 이로써 ‘불완전’ 고용과 ‘불안정’ 고용이 한국 노동시장의 새로운 구조적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 과정에서 청년 실업과 청년 불완전 고용 문제가 등장했다. 취직 기회를 놓친 젊은이들이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과거 세대가 경험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살인적인 경쟁과 엄청난 사교육비의 대가 치고는 너무도 참담한 현실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겪는 이러한 고통은 ‘88만원 세대’라는 담론에 집약돼 있다. 이는 20대의 95%가 비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비정규직 평균 임금이 119만 원이므로 가중치를 부여해 계산하면 20대의 월평균 소득은 88만 원이라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20대가 겪는 불합리한 경제적 고통을 압축한 이 담론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고용문제를 세대문제로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프랑스나 스웨덴 등 유럽 사회에 비해 한국 사회의 청년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고발함으로써 젊은 세대가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을 깨닫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도발적인 문제제기 만큼이나 88만원 세대 담론 자체도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20대가 겪는 경제 상황이 전대미문의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단지 20대만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가? 비정규직과 같은 불완전 고용, 저임금 그리고 그로 인한 소득 불평등의 문제가 연령적으로 20대에 속하는 문제라고 보는 게 타당한 것인가? 젊은이들이 이러한 불이익과 난관을 직시하고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갖게 하는 차원에서 세대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회과학적인 분석에 의해 현재 고용문제를 ‘세대 착취’란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고용문제를 20대만의 문제로 인식하는 88만원 세대 담론은 필연적인 한계를 갖는다. 첫째, 오늘날 20대보다는 40대 및 50대 이후의 세대가 훨씬 더 심각한 노동조건에 놓여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4, 50대의 경우 50% 이상이 저소득으로 고통 받는 자영업자, 비정규직 종사자나 실업자이다. 한국의 자영업은 대부분이 영세 자영업으로 소득 수준이 노동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피고용자 퇴직연령이 낮고, 퇴직 후 자영업자로 많이 진출하기 때문에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영업 비율도 높아진다.

특히 조기퇴직으로 영세 자영업자로 내몰리거나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경우에도 4, 50대 남성은 가부장제적인 전통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짐을 지고 있다. 반면, 한국의 20대는 유럽의 20대와 달리 부모와 같이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는 20대의 사회 안전망으로 작용한다.

둘째, 88만원 세대 담론은 계급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 전체 소득 불평등을 세대 간 소득 불평등과 세대 내 소득 불평등으로 분해하면, 세대 간 불평등은 10% 정도에 불과하며 나머지 90%는 세대 내 불평등이다. 세대 내 소득 불평등은 주로 세대 내 계급 불평등에 기인한다. 이는 동일한 세대 내에서 나타나는 계급에 따른 소득 격차가 국내 소득불평등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대에 따라 계급구성도 크게 달라진다. 20대는 정규직 중간계급 및 노동계급 비율이 다른 연령에 비해 월등히 높다. 나이 든 세대일수록 정규직 중간계급의 비율이 낮고, 영세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다. 결국 기성세대가 20대만을 착취하는 게 아니라 기성세대 일부가 절반 이상의 다른 기성세대를 착취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4, 50대의 비정규직과 자영업 종사자들은 20대를 착취할 위치에 놓여있지도 않고, 착취할 수도 없다. 오히려 이들 중 상당수는 20대에 밀려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한 사람들이다.

88만원 세대 담론은 20대 청년들의 암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사회과학적 논의가 대중적인 담론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흔치 않은 현실에서 이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대중매체 등을 통해서도 외환위기 이후 20대가 겪고 있는 취업과 고용상의 문제가 빈번히 다뤄지고 있다. 이슈를 제기하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한국의 고용 및 불평등 문제가 전체 세대와 연관돼 있는 점을 제대로 드러내지는 못했다. 세대 문제는 전사회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불평등 체제의 구조화 과정과 관련된 문제이며, 개인의 전 생애에 걸쳐 이뤄지는 경제활동과 맞물려 이해돼야 한다. 복합적인 상호 연관성의 기제가 밝혀져야 하는 것이다. 20대가 처해 있는 상황을 세대 문제로만 보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88만원 세대 담론은 이제 20대 청년들의 문제로 제한돼선 안 된다. 한국의 경제문제, 특히 고용문제는 보다 넓은 의미로 개인들의 생애과정 및 계급과의 관계 속에서 고려돼야 한다. 88만원 세대 담론의 문제제기를 포괄하면서 총체적으로 한국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새로운 담론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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