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중국, 장샤오강, <Bloodline: The Big Family No.2> · 인도, 친탄 우파드야이, <Old Gaze and New Actor> · 콜롬비아,페르난도 보테로의 <The First Lady> · 콩고, 깐낀다, <성찬>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제3세계 미술이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현대 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미국과 유럽의 뒤를 이어 급부상하는 중국, 그리고 그 틈새에 △인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이 주목받고 있다. 제3세계 미술은 문화적 다양성을 통해 서구 미술에 대한 편식 현상을 완화하고, 예술가와 감상자에게 영감을 제공한다.

세계 미술계의 흐름은 미술시장의 흐름과 직결된다. 작품의 예술성과 경제적 가치에 따라 미술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수요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미술시장 전문 잡지 ‘아트프라이스’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세계 미술시장 점유율은 △미국 △영국 △프랑스 순이었으나, 이듬해인 2007년에는 중국이 미국과 영국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중국이 신흥 미술 강국으로 성장한 중국의 개혁 개방정책에 따른 미술 시장의 확대 덕분이다. 중국 인근의 홍콩, 대만 등 화교권이 중국 미술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 것도 유효했다. 세계적인 미술경매시장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아시아 지역 중 홍콩에만 에이전트를 두고 있는 것 또한 중국 미술이 세계 미술시장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인도 미술 역시 급격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최근 3년 사이에 인도 작가의 작품 가격은 평균 14배 이상 상승했다. 매년 7~8%의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인도 내 신흥 부자들이 자국의 미술 작품을 구매한 결과다. 다종교와 다언어 사회를 바탕으로 색채의 신비를 드러내는 인도 미술은 국내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새로 생긴 안단테갤러리와 선 컨템포러리 등은 인도 현대미술을 전시해 주변 화랑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인도 내 미술 관련 인프라와 정부의 지원 부족으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는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친탄 우파드야이(Chintan Upadhyay) 등 20여 명에 불과하다. 하계훈(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교수는 “인도 스스로 자국 내에서 일고 있는 미술에 대한 관심을 어떤 시스템으로 키울지가 의문”이라 말했다.

중국과 인도 미술이 부흥하게 된 주된 원인이 경제 성장에 따른 것이라면 제3세계 미술은 투자 가치보다는 희소성과 작품성 때문에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말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에 이어 올해에만 벌써 △호주의 <유토피아, 사막의 색>(1월) △터키의 <터키현대미술전>(1월) △아일랜드, 포르투갈, 홍콩의 <조우: 더블린, 리스본, 홍콩 그리고 서울>(1월) 등이 있었다. 지난 25일(수) 있었던 K옥션(대표=김순응) 경매장에선 쿠바와 베네수엘라 등 라틴아메리카 미술 작품 4점, 인도네시아 미술 작품 8점 등이 선보였다. K옥션 경매팀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작품에 대한 관심을 보였으나 생경하기도 하고 투자 가치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낙찰까지 이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한편, 제3세계 미술 중에서도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미술은 서구 미술의 흐름을 좇지 않고 독특한 지역색을 고수해 주목받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미술은 약자를 위한다. 여러 인종이 섞여 형성된 독특한 혼혈 문화와 군부 독재의 경험은 미술문화의 바탕이 됐다.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선명한 색감과 자극적인 소재는 라틴의 살사, 탱고 등과 함께 정열을 보여준다. 대표 화가는 칠레의 초현실주의 작가 로베르또 마따(Roberto Matta), 볼륨감 있는 일러스트레이션과 명화의 패러디로 유명한 콜롬비아의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등이다. 갤러리반디 안진옥 대표는 “라틴아메리카 미술은 사회상과 시대 배경을 감각적으로 표현해 독자적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아시아 미술에 비해 가격도 저렴해 젊은 컬렉터들에게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대륙을 관통하는 미술 특징은 휴머니티다. 아프리카 종족 대부분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그림 △색채 △조각 등을 통해 인간애를 표현한다. 아프리카 조각과 회화에는 ‘목이 긴’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 목이 길다는 것은 조각에선 ‘신에게 가까워지고자 하는 열망과 종족의 정체성’을, 현대회화에선 ‘미래지향적 사고와 개성을 드러내는 개인주의적 심리’를 상징한다. 각 색깔에 큰 의미를 부여해 원색 계통의 회화가 주를 이루는 것 또한 아프리카 미술의 특징 중 하나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세네갈의 케베(Ibrahima Kebe), 콩고민주공화국의 무칼라이(Mukalay N.L) 등이 있다.

제3세계 미술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아직 시작 단계다. 미술시장에서의 영향력도 아직 미미하다. 하지만 몇몇 대학과 미술관, 화랑이 중심이 돼 국내에서의 제3세계 미술에 대한 관심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전남대는 지난해 3월부터 7월까지 전남대 박물관에서 아프리카 문화축제를 열었으며, 서울대 미술관은 <체코현대미술: 할루페츠키상 수상 젊은 작가들>전을 진행 중이다. 또한 갤러리미즈, 표갤러리 등은 국제 문화교류의 일환이자 제3세계 미술을 소개하기 위한 △전시기획 △국내외 신진작가 발굴 △아트컨설팅을 통한 미술인구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서울대 미술관 전희원 학예사는 “제3세계 미술은 잠재적인 시장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앞으로 다문화 사회에 걸맞은 매력적인 미술 영역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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