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잊고 살았던 나를 찾기 위해 참여하게 됐어요” 지난달 31일(화) 성북동에서 열린 집단상담에서 만난 한 여성은 60대의 늦은 나이지만 자기 자신을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게슈탈트 심리치료는 내담자(상담을 받는 사람)가 ‘잃어버린 자신의 부분’을 찾게 해주는 심리치료의 한 기법이다. 잃어버린 자신의 부분이란 본인에게 전혀 인식되지 않은 채 그늘 속에 숨어 존재하던 감정이나 욕구 혹은 능력 등을 말하는데, 이를 발견하고 현재의 안전한 환경에서 재경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라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바로 게슈탈트 심리치료다.

게슈탈트(gestalt)는 ‘전체, 형태, 모습’ 등의 뜻을 지닌 독일어지만 우리말과 일대일로 대응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형태 일반이 아닌 지각의 대상으로서 전체의 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릇에 남은 음식 찌꺼기를 버리고, 세제를 사용해 그릇을 닦고, 다시 물로 그릇을 헹구는 행동’을 ‘설거지’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행동을 하나씩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의미 있는 전체로 설명하는 것이 게슈탈트다.

이 개념이 치료 영역으로 확장되면, 게슈탈트는 곧 ‘개체(사람)에 의해 지각된 자신의 행동 동기’를 의미하게 된다. 개체는 우리의 욕구나 감정을 하나의 유의미한 행동으로 만들어 실행하고 완결 짓기 위해 게슈탈트를 형성하며, 이를 환경과의 접촉을 통해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개체의 욕구나 감정이 게슈탈트는 아니다. 개체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을 고려해 그 상황에서 실현가능한 행동 동기로 지각한 것이 게슈탈트다.

게슈탈트 치료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알아차림(awareness)’과 ‘접촉’이다. 게슈탈트 심리치료에서 모든 심리 장애는 궁극적으로 알아차림과 접촉이 결여된 상태이며 내담자는 이들의 회복을 통해서만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아차림은 ‘개체가 개체-환경의 장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내적, 외적 사건들을 지각하고 체험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개체가 자신의 삶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현상들을 방어하거나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각하고 체험하는 행위다. 또한 자기 행동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특정 상황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반응을 아는 것 등도 알아차림에 해당한다. 개체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에게 중요한 유기체 욕구나 감정을 게슈탈트로 형성해 해소하는데, 이는 자신의 내외적 상황에 대한 알아차림이 전제돼야만 가능하다. 알아차림을 치료에 활용하는 방법엔 미해결 과제를 알아차림으로써 과제를 해소하는 것과, 현재 상황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욕구나 감정을 알아차려 게슈탈트를 형성하는 것이 있다.

접촉은 개체가 알아차림을 통해 형성된 게슈탈트를 행동으로 해소하는 행위다. 퍼얼스(Perls et al.)는 접촉을 △전 접촉 △접촉 △최종 접촉 △후 접촉의 네 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전 접촉단계는 신체가 배경(관심 밖에 놓여 있는 부분)이 되고 어떤 흥미로운 환경적 자극이 전경(관심의 초점이 되는 부분)이 되는 단계다.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이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순간 오아시스가 그의 전경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접촉단계에 이르면 전 접촉단계에서 전경이었던 것이 배경으로 물러나고 그것을 해소시킬 행동 가능성들이 전경이 되며, 이 중에 가능한 것은 선택돼 행동으로 옮겨지고 그렇지 못한 것은 거부된다. 오아시스를 향해 열심히 걸어가 도착한 뒤 사람들에게 두레박을 빌려 물을 긷는 행위 등이 이에 포함된다. 최종 접촉단계에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환경적 자극이나 신체는 배경으로 물러나고 목표물만이 전경이 된다. 이때 모든 의도적인 행동은 사라지고 지각과 운동, 감정이 하나가 되며 목표물만이 전경으로 남는다. 이는 오아시스에서 우물물을 마시는 행위에 해당하는데, 물을 마시는 동안 모든 것은 배경으로 사라지고 오로지 물만이 전경으로 생생하게 알아차려지는 것을 말한다. 후 접촉단계는 전경과 배경의 구분이 사라진 채 유기체-환경이 상호작용함으로써 게슈탈트가 해소돼 사라지는 과정이다. 물이 몸속으로 흡수되면서 갈증이 사라지는 단계라 볼 수 있다. 게슈탈트 치료에선 이러한 접촉을 치료의 관건으로 본다. 내담자는 치료자와의 접촉을 통해 지금까지 회피해왔던 현실을 다시 접촉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실제 치료는 개인치료 또는 집단치료로 이뤄진다. 집단상담의 종류엔 특별한 형식 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비구조화’와 리더가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구조화’가 있다. 비구조화 집단상담에선 내담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기 때문에 상담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알 수 없다. 오직 이야기하는 상호작용 속에서만 상처를 발견해내는 것이다. 상담심리전문가 이순일 씨는 “집단상담에선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기’와 물음이나 공감 등 ‘반응하기’가 매우 중요하다”며 “이 상호작용을 통해 치유와 성장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심리학과 심리치료 자체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뤘던 이전과 달리 최근 게슈탈트 심리치료 분야에선 아동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행동장애나 정서장애, 대인관계 등을 다룬 연구가 많이 진행된다. 다른 심리학 분야나 기타 학문과의 융합도 활발하다. 게슈탈트 심리치료를 인지행동치료 및 명상과 통합해 불안장애를 치료하기도 하고, 자기심리학과 게슈탈트 치료를 통합하려는 시도도 있다. 종교성과 게슈탈트 치료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도 나왔다. 정부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자들의 한국 적응 훈련을 돕기 위한 연구 또한 예정돼 있다. 김정규(성신여대 심리학과)교수는 “비행청소년 선도 프로그램이나 △알콜중독집단 △약물중독집단 △성폭력피해집단 △이혼자집단 등 다양한 집단에 대한 게슈탈트 치료가 앞으로 더욱 보급될 것”이라며 “기타 심리적 문제에 게슈탈트 치료가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