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일반 백성들에게는 접근조차 금기시됐던 궁궐의 문이 열렸다.

당시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곳은 창경궁 안에 위치한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 1909년 11월 1일 개관한 제실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박물관이었다. 이는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명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면서 제실박물관은 ‘이왕가(李王家)박물관’으로 격하됐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제실박물관에 대해 “1910년 한일합방이 되기 전에 국왕의 명에 따라 설립됐다는 점에서 근대박물관의 근본적 뿌리를 찾을 수 있다”며 “비록 식민지 현실을 체험했지만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은 근대적이고 주체적인 시민의식이 반영된 것”이라 평가했다.

제실박물관이 우리 문화재를 지키고자 했다면, 같은 시기 총독부에서 경복궁에 세운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식민정책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경주(1926년), 부여(1939년) 등에 분관을 두고 통제·관리했다.

연희전문학교 박물관(1928년)을 비롯해 보성전문학교 박물관(1934년), 이화전문학교 박물관(1935년) 등 대학박물관도 비슷한 시기에 첫 선을 보였다. 1936년에는 민족문화재 수집가로 활약하던 간송 전형필에 의해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간송 미술관’이 설립되었다. 이렇듯 일본의 식민지배 속에서도 박물관의 종류와 수가 늘어나는 가운데 이왕가박물관으로 격하됐던 제실박물관은 1938년 덕수궁으로 이전한 뒤 ‘이왕가미술관’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해방 후엔 ‘덕수궁미술관’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1950년 발발한 6.25 전쟁 이후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제실박물관은 1969년 국립박물관에 통합됐고, 1972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편되면서 그 줄기가 지금에 이른다.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박물관은 꾸준한 양적 성장을 거듭하면서, 현재는 질적 성장과 문화 가치 창출에도 힘쓰고 있다. 국립박물관을 비롯해 지방의 시·도립박물관, 사립박물관 및 대학박물관 등 국내 박물관 수는 총 600여 개로 집계된다. 그 중에는 호암미술관 등 기업박물관과 한국자수박물관, 목아불교박물관 등 다양화, 전문화된 박물관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국성하 씨는 박물관의 문화적 가치에 대해 “박물관은 사람들의 문화향유 욕구를 채우는 공간으로서 전시품을 통해 미적 감동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박물관은 여전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물관 관계자들은 △운영 예산 부족 △대학박물관의 위기 △박물관 전문 인력 공급 부족 △특색 없는 지방박물관 등을 큰 문제로 꼽는다.

사립박물관의 운영 예산 부족은 특히 심각하다. 지난 2007년 한국사립박물관협회(회장=전보삼)가 발간한 <국내외 사립박물관 실태조사 및 한국사립박물관의 장단기 진흥방안>에 따르면 사립박물관 설립자(또는 관장)의 50%가 개인 부담과 입장료에 운영 예산을 의존하고 있다. 미국 사립박물관이 △민간분야의 지원 △판매수입 △정부지원 등으로 예산을 충당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학박물관 역시 재정난과 관심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운영되는 곳이 드물다. 대학박물관은  일반 시민이 대학에 쉽게 접근하게 만드는 통로이자 교육·연구 기능을 하는 복합 공간이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뒤늦게 대학박물관을 도입했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선 오히려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신경철 한국대학박물관협회장은 “대학박물관이 없었던 일본이 한국의 대학박물관 제도를 벤치마킹해 간 뒤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대학박물관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점점 더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물관 전문인력 양성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한 것도 문제다. 현재 국내 4년제 대학 중 박물관학과는 없으며 전문대학인 대전보건대학 박물관과가 유일하다. 조한희(대전보건대 박물관과)교수는 “국가 경쟁력은 문화적 역량에서 비롯하는데 문화집적소가 바로 박물관”이라며 “박물관 전문가 양성기관이 없어 지난 1992년 박물관과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학부가 아닌 대학원 중에서는 동덕여대, 명지대 등이 박물관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외국대학에 비해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방박물관을 비롯한 사립박물관, 대학박물관 등에서 전시하는 소장품 구성이 획일적인 것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박물관협회 허동화 상임고문은 “박물관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세분화, 전문화를 통해 개별 박물관들이 각각 특색을 갖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근대 박물관 100년의 역사와 현재를 되짚는 것은 앞으로의 방향 설정을 위한 것이다.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은 현재 상설관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으며 100여개의 전국 박물관이 ‘전국 박물관·미술관 특별전’을 열고 있다. 오는 22일(금)부터는 박물관 국제학술대회도 있을 예정이다. 지나간 100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세기를 열 한국 박물관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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