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인민의 대표를 자임하는 자들이나 사회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은 집단들이 행사하는 권력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대의제를 통해 인민의 권력을 제한하려는 기성의 시스템을 넘어서려는 힘이며 … 말하자면 예상치 못했던 시간에,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주체들이 공적인 문제들을 결정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자크 랑시에르는 배제된 자들의 주체화가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일갈한다. 그에게 대의 민주주의란 모순된 두 단어의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학계의 논의는 어떻게 이뤄져 왔을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최장집(정경대 정치외교학과)명예교수는 우리 사회 최대의 균열은 사회적 기반이 없는 정치적 대표체제와 대표되지 않은 사회 사이의 균열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한국 민주주의의 ‘대표성의 위기’ 및 정치-시민사회 간 괴리는 투표율의 하락, 정부나 정당에 대한 낮은 신뢰도로 나타났다. 지난해 촛불집회는 그러한 균열이 단적으로 드러난 예였다. 당시 거리의 정치를 어떻게 바라볼지를 둘러싼 논란과 함께 일각에선 국민투표나 국민소환제 등 직접민주주의적 요소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도 민주주의 이념을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박동천(전북대 정치외교학과)교수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여전히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부터 논쟁의 대상”이라며 “용산참사에서 보듯 △사회적 약자 △소외계급 △소수 △비주류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신진욱(중앙대 사회학과)교수는 “대의민주주의가 위임민주주의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견제력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는 직접민주주의보다는 오히려 시민사회의 강화를 통해 가능하다”며 정치권력과 시민사회 간 건설적 긴장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전정현(본교 강사·정치학)씨는 “운동의 요구는 분명 건강한 것이지만 정당 수준의 대안으로 발전되지 못하면 정치적 힘을 모으기 어렵다”며 좋은 정당 체제를 갖추는 일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랑시에르의 국내 수용은 지난해부터 본격 시작됐다. 올해도 랑시에르의 대표적 저서 <불화>가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 책의 번역을 맡은 진태원(본교 민족문화연구원)연구교수는 “랑시에르를 비롯해 최근 주목받고 있는 프랑스 철학은 20세기 맑스주의 이후 해방과 변혁의 정치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며 “독점 자본과 소수의 정치 귀족들이 지배하는 체제에 맞설 광범위한 대중적 연대를 강조하는 이들 철학이 우리 현실에 갖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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