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박광미 기자)

“TV가 처음 나왔을 때 모두들 ‘사라질 것’이라 말했지만, 라디오는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어요. 그 매력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거죠”
매일 밤 ‘시대에 역행하는 방송’을 들려주는 라디오DJ가 있다. 기독교방송(CBS) 음악FM(93.9MHz)에서 오후 10시부터 자정까지 ‘꿈과 음악 사이에’를 진행하는 매력적인 목소리의 DJ 허윤희 씨를 만났다.

라디오의 세계에 몸담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방송을 하고 싶어했어요. 방송에 나오는 MC와 DJ의 약력이나 프로필, 장단점을 다 꿰고 있던 친구였는데 같이 다니다 보니까 저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친구는 흐지부지하다가 다른 분야로 가게 됐고, 저는 잊고 있다가 취업 준비할 무렵에 다시 떠올리게 됐어요.
그래서 맨 처음 입사한 곳이 라디오 방송국이었어요. 계속 떨어지다가 이제 마지막이다 하고 넣은 데가 된 거에요. 그곳에서 1년 남짓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다가 CBS에 채용됐죠.

학창시절은 어땠는가
학창시절에는 너무 내성적이어서 앞에 나가서 발표하는 것도 잘 못했어요. 지금도 친구들은 ‘네가 방송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얘기해요. 근데 이상하게 그런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방송이 되게 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아나운서를 준비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뭔가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요.

학창시절에도 라디오를 많이 들었나
네. 무척 많이 들었어요. 이문세 씨에서 이적 씨로 넘어갈 즈음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많이 들었어요. 생방송으로 듣고, 들으면서 녹음해 다음날 또 듣고, 계속 끼고 살았어요. 특히 이적 씨를 많이 좋아했죠.
얼마 전까지 이적 씨가 오후 10시에 ‘텐텐클럽’을 진행했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제가 좋아했던 DJ가 나랑 같은 시간대에 방송을 하고 있다는 점이요.

(사진 = 박광미 기자)
그 때 듣던 라디오랑 지금 라디오랑 다른가
토크 위주의 방송이 많아졌고, 보이지만 않을 뿐 TV랑 비슷한 형식의 라디오 프로도 많아졌죠. TV를 안보고 라디오를 듣는 이유는 TV에서 얻을 수 없는 감성적인 것을 얻기 위해 듣는 건데, 라디오가 너무 TV처럼 변해 그런 면이 예전에 비해 줄어든 것 같아요.

매일 생방송하는데 긴장되지 않나
긴장해요. 긴장 안 한 적 없어요. 내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많은 사람들에게 들어가는 건데 넋 놓고 있을 순 없죠. 그렇지만 이제는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의 긴장이 돼요. 맨 처음에 라디오DJ로 입문했을 땐 너무 긴장해서 실수도 많이 하고 그랬어요.

본인 방송을 스스로 들어보나
스스로 모니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방송할 때 듣는 거랑 직접 진행하며 듣는 거랑 느낌이 다르거든요. 몇 년 전 방송을 오랜만에 들으면 얼굴이 빨개지기도 해요. 당시엔 주변에서 아무리 얘기해줘도 모르던 것을 다시 들어보면 조금씩 배워나가는 것도 있어요.

지향하는 방송상은
오후 10시엔 10대가 아닌 사람들이 들을 만한 방송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20대 △30대 △40대들은 어떤 분위기의 방송을 좋아할지를 고민한 끝에 찾은 답이 ‘우린 옛날 라디오가 갖고 있던 아날로그적 감성을 유지해보자’는 거였어요. 예전에 저같이 라디오 듣고 자랐던 라디오 키드들이 ‘아, 그 때 방송 같다’, ‘아, 그땐 이랬지’라고 느낄 수 있는 방송이 되면 좋겠어요.

기억에 남는 사연과 신청곡은
재미난 사연도 많지만 밤이다 보니 슬픈 사연이 많이 들어와요.
10월 마지막 날이었어요. 학창시절부터 3~4명이서 친하게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 해마다 그 친구를 생각하며 모인다는 사연이었어요. 그 친구가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라면서 김동규 씨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들려달라고 신청했어요. 사실 스튜디오 들어가기 전에도 슬프다고 느꼈지만 참을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소리 내서 읽으니 감정 몰입이 더 잘 되더라고요. 그래서 울면서 사연을 읽었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사연에 동화되거나 몰입해서 소개하면 듣는 사람도 훨씬 더 슬프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학생 청취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사연을 받아보면 요즘 학생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또 직장인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대충 알 수 있어요. 특히 고등학생들이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려 준비하는 분들이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하지만 학생 분들이 아무리 어려워도 자기가 진짜 뭘 원하는지에 대해 좀 더 많이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지금 1, 2년 늦는 건 아무 문제가 안 돼요. 하고 싶은 일을 몇 년이 걸리든 충분히 찾아본 다음에 추진한다면 나중에는 10년, 20년을 앞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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