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국화를 품에 안은 남자가 저벅저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다가 주저앉는다.

지난해 10월, 민족춤 연구가 이삼헌 씨가 서울 구로공단의 기륭전자(주)의 비정규직 노동자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하던 한 노동자의 영결식에서 진혼굿을 펼쳤다. 사회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춤꾼의 몸짓, 바로 ‘민족춤’이다. 민족춤은 무용계에서 좁은 입지를 차지하고 있지만 민족춤을 추는 사람들은 사회와 소통하려는 의지를 버리지 않고 있다.

민족춤은 민주화의 목소리를 내던 민중춤운동을 계승해 1980년대 후반에 형성된 사회 지향적 무용예술이다. 탈춤, 굿, 발레 등 다양한 무용 장르를 총망라하는 민족춤은 통일문제, 노동계층 등 사회 전반에 관심을 보이며 △운동성(정치성) △현장성(대중성) △전문성(예술성)을 추구하고 있다.

민족춤패 '출'                                                                                Google

민중춤운동이 민족춤으로 이어져 문화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지난 1988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 민예총) 내 민족춤위원회(현 한국춤예술연대)가 결성되면서부터다. 민족춤위원회는 무용 장르의 구분 없이 모인 진보적 춤 단체로, 민족춤을 발굴하고 춤의 사회적 역할을 실현하기 위해 ‘민족춤제전’을 개최했다. 민족춤제전은 △1997년 제4회 ‘여성, 우리 세상의 절반’ △2000년 제7회 ‘쌍방소통 야단법석’ △2001년 제8회 ‘분단 2세기 평화천사 종횡무진’ 등 여성, 통일 등의 사회문제를 주제로 행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현재 민족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국내 민족춤 연구가와 무용가가 줄어들고 민족춤에 관심을 갖는 관객 역시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1933년에 이미 ‘노동자춤연맹’을 결성해 진보적 교육 사업을 실시하고 영국에선 공동체를 위한 ‘커뮤니티댄스’가 유행하는 것과 비교된다. 지난 1994년에 처음 시작해 매년 열리던 ‘민족춤제전’은 2005년 이후 답보된 상태다. 민족춤제전 기획위원 김채현(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교수는 “점점 작품 생산성이 떨어지고 재정여건이 나빠져 질적인 보완을 이루기 위해 제전 개최를 유보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국내의 민족춤패에서는 매년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고자 노력하지만 여기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국내의 대표적 민족춤패 ‘출’은 노동무용극 <아! 대한민국>으로 전국 순회공연을 하고 있으며 ‘너울’은 지역예술제에서 창작춤 레퍼토리 공연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민족춤은 어렵다’라는 인식이 굳어지면서 이를 향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 ‘출’의 구영회 사무국장은 “대중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자 매 공연마다 시연회와 품평회를 열고 있지만 기본적인 관심이 적다보니 민족춤의 확대와 전문가 양성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게다가 현장에서 활동하던 선배 무용가들이 줄어들면서 민족춤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도 고되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도 민족춤을 이어나가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춤예술연대를 중심으로 △각 춤단체와의 교류 및 연대 △춤 분야 공익사업 △교육 및 학술 사업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울산의 마당극 전문 극단 문화예술센터 ‘결’이 올해 처음 민족춤 무용단을 극단 내 설립해 민중의 삶에 다가가고 있다. ‘결’의 박은정 대표는 “촛불집회, 이랜드 사태 등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민족춤이 나섰다”며 “형이상학적이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과 가장 가까운 예술이 바로 민족춤”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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