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단 창무회의 <느린달>(2006)          (사진제공=창무예술원)
현재 세계의 안무가들은 ‘지금(here), 여기(now)’의 정신을 강조하는 컨템포러리 댄스(Contemporary Dance)를 지향하고 있다. ‘지금, 여기’의 정신은 ‘동시대성’ 혹은 ‘당대성’을 의미한다. 컨템포러리 댄스는 오랫동안 20세기 초에 독일과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모던댄스(Modern Dance)의 동의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1960년 후반에 영국의 안무가들이 컨템포러리 댄스를 획일화된 모던댄스의 움직임과 스타일을 탈피하며 개념(concept)을 중시하는 ‘가장 현대적인’ 춤으로 의미를 확장시킨다. 이후 유럽을 비롯하여 여러 지역의 무용가들이 컨템포러리 댄스를 선호하게 되는데, 아시아 지역에서는 영국문화권에 놓여 있던 홍콩과 싱가포르가 이 용어를 우선적으로 수용했다. 반면에 미국문화의 영향력이 컸던 아시아의 다른 지역, 예를 들어 필리핀과 한국은 모던댄스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지리적, 역사적, 미학적으로 탈중심화, 다원화된 문화현상이 나타나자 한국 안무가들은 더 이상 모던댄스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리고 춤의 내용, 구조, 기법, 미학 등 여러 측면에서 모던댄스와는 다른 가치와 스타일을 추구하는 춤을 컨템포러리 댄스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의 컨템포러리 댄스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컨템포러리 댄스 공연에서는 연극, 영상, 음악이 춤과 동등한 비율로 도입되거나 그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매체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으며, 안무가들은 새로운 개념의 개발과 새로운 움직임의 표현을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의 컨템포러리 댄스는 동시대 현대예술의 조류를 적극 반영하며 가장 최신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춤으로 정착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아시아의 안무가들은 자국의 전통춤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져 왔다. 이렇게 아시아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컨템포러리 댄스를 아시아 컨템포러리 댄스라고 한다. 아시아 컨템포러리 댄스는 서구의 발레와 현대춤에서 안무의 틀과 방법론을 빌리고 자국의 전통문화에서 소재, 구성, 움직임 훈련, 정서 표현을 끌어들여 버무리는 춤이다. 아시아 컨템포러리 댄스는 제국주의적 식민지배, 서구화와 산업화를 경험했던 아시아 국가들, 특히 인도, 인도네시아, 대만, 한국에서 번창했는데, ‘재창조된 전통춤’, ‘현대화된 전통춤’, ‘전통적 요소를 응용한 현대무용과 발레’ 등이 이 유형에 포함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한국창작춤, 한국적 현대무용, 한국적 발레가 해당되는데, 최근에 와서는 이들은 모두 한국 컨템포러리 댄스로 편입되고 있다. 세계무용사에서 현대춤의 한 갈래로 기록된 일본의 부토(舞蹈) 또한 아시아 컨템포러리 댄스에 편입시킬 수 있다. 하지만 부토를 비롯하여 일본의 컨템포러리 댄스에는 전통춤이 강조되지 않는다. 식민과 해방의 경험이 없는 일본 안무가들에게는 춤을 통해 민족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국가적 사명감이 부여된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토무용단 산카이 주쿠의 <카게미>(2007) (사진제공=창무예술원)

일본의 우시오 아마가츠(부토무용단 산카이 주크의 예술감독), 대만의 린 화이민(댄스 시어터 클라우드게이트의 예술감독), 인도네시아의 사르도노 쿠스모(사르도노 댄스 시어터의 예술감독)는 아시아 컨템포러리 댄스의 대표적인 안무가로 손꼽힌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의 주요 극장과 페스티벌이 우선적으로 섭외하는 아시아의 안무 거장들이다. 한국의 여러 안무가들이 세계의 중심무대에 서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세계무대에 진출해서 성공했던 한국인 안무가로는 최승희가 유일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안무가들마다 ‘제2의 최승희’로 자신을 포장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최승희가 활약했던 시기와 현재의 관객들은 취향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만약 최승희의 안무스타일인 한국적 요소를 적당히 가미한 현대무용으로 유럽무대에서 춤을 추게 된다면 셀프 오리엔탈리즘(Self Orientalism)이라는 비난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무대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안무가들의 사고 저변에는 ‘한국적’이라는 테두리가 전제되어 있다. 더군다나 이들이 구사하는 ‘한국적’이라는 표현기법은 최승희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전통의 이미지를 배치한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전통 이미지를 얄팍하게 포장한 한국의 현대춤이 서구 무대에 진출하여 환호를 받았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면, 그 춤이 과연 예술적으로 감상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한국문화에 대해 이해도가 낮은 관객들이 ‘한국적’ 컨템포러리 댄스를 정당하게 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의 도입부에서 컨템포러리 댄스는 동시대성을 강조하는 춤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한국의 컨템포러리 댄스는 전통성이 아니라 동시대성을 고민해야 한다. 즉, 먼 과거의 움직임과 이미지를 재배치할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한국적 표현을 탐구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는가? 한국의 안무가들이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지금, 여기’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지점과 시각들을 자신의 몸짓으로 표현하는 작업이 아닐까.

최해리/아르코예술정보관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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