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급속도로 친해진 나미인 양과 오방정 양, 그리고 한동요 양. 자칭 ‘미녀삼총사’라고 부르며 매일같이 붙어 다닌다. 오늘도 학교 앞 카페에서 수다를 떨기 시작한 세 사람. 신나게 떠들다가 갑자기 정적이 흐른다. 이 때 나미인 양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같은 과 선배 이야기를 꺼낸다. “야, 너희 그거 알아? 그 선배 예전에 양다리 걸쳤다가 들켜서 휴학까지 했대”

뒷담화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을까?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은 뒷담화가 당장 그 대상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해를 입히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뒷담화는 공격성을 바탕으로 한다. 내면의 분노감을 간접적 혹은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소극성도 지닌다. 이러한 소극적 공격성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만 분노의 표현이 파괴적이지 않아 사회적 관계를 유지시킨다. 고영건(문과대 심리학과)교수는 “소극적 공격성을 바탕으로 뒷담화를 자주 하는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나미인 양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오방정 양과 한동요 양은 순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오방정 양은 나미인 양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선배 이야기를 또 다시 꺼낸다. “난 저번에 얼핏 들었는데 고등학교 다닐 때도 양다리 걸치는 걸로 유명해서 왕따도 당했대” 선배의 고등학교 후배인 한동요 양 또한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그랬던 것 같다”며 맞장구친다.

누군가가 뒷담화를 하기 시작하면 생각이 없던 사람들도 이에 동참하게 된다. 사람들은 집단의 의견이 만장일치를 보일 때 그 사안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동조하는 경향을 띤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Solomon Asch)는 동조이론에서 뒷담화의 진위 여부를 가리지 않고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한다. 이러한 동조현상은 개인과 집단 간 유대 강도가 강할수록, 집단의 규모가 클수록 강하게 일어난다. 집단 내 무언의 압력이 개인에게 작용하는 동시에 개인은 집단에 대한 믿음과 집단 내 구성원에게 호감을 얻으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나미인 양은 오방정 양과 한동요 양이 뒤에서 자신을 헐뜯는다는 사실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을 통해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미인 양은 두 친구와의 관계를 끊을 생각이 없다.

한창 신나게 떠들던 나미인 양이 급하게 화장실을 찾는다. 나미인 양이 화장실에 간 사이 오방정 양과 한동요 양이 쑥덕거린다. 나미인 양의 오늘 패션에 대한 평가가 도마 위에 올랐다. 뒷담화의 대상이 나미인 양으로 바뀐 것이다. 나미인 양이 멀리서 걸어오는 게 보이자 둘은 화제를 갑자기 다른 곳으로 돌린다.

세 명의 친구가 친한데도 다른 한 명을 험담하는 것은 각자 안정감과 친밀감을 증대시키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인간관계에서 힘의 구도는 두 명 사이에서 가장 안정적이며 여기에 한 명이 추가될 경우 불안정해진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하이더(Fritz Heider)의 균형 이론(Balance Theory)에 따르면 세 명의 관계가 모두 원활하거나 세 명 중 둘 사이가 좋을 때 균형이 유지된다. 뒷담화가 이뤄지는 것은 후자의 경우다. 누다심 심리학 칼럼리스트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1:1부터 시작해 세 명으로 확대되는 게 일반적인데 이 셋 사이에 똑같은 에너지와 관심이 흐르기 어렵다”며 “삼각 구도 안에서는 각자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보다 안정된 1:1 관계를 위해 뒷담화를 한다”고 말했다.

나미인 양은 오방정 양과 한동요 양이 뒤에서 자신을 헐뜯는다는 사실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을 통해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미인 양은 두 친구와의 관계를 끊을 생각이 없다.

사람들은 관계를 끊었을 때와 계속 유지했을 때의 심리적 비용과 이득을 따지게 된다. 관계를 끊을 경우 상실감이 크고 자존감이 저하되기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다. 특히 갈등 관계를 힘들어하는 사람일수록 그 가능성이 크다. 때론 스스로 긍정적 암시를 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교수는 “친한 사람이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다음엔 안 그러겠지’라며 다른 타당한 이유를 찾는다”며 “스스로 긍정적인 생각을 함으로써 고통스러운 상황을 심화시키지 않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뒷담화는 인간의 생존 욕구와 관련돼 있다. 타인에 대한 부정적 정보를 바탕으로 그 사람에게 적합한 대응 방식을 찾으려는 과정인 것이다. 뒷담화를 형성하는 또 다른 심리적 요인에는 △좌절감에 의한 공격심리 △자존감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자기 고양적 동기 △재미 추구 등이 있다. 허태균(문과대 심리학과)교수는 “이 세 가지는 뒷담화를 형성하는 주요 축이자 인간 행동의 근본적 동기이기 때문에 뒷담화의 생존력이 이토록 강한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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