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감독님' 영정에 바친 눈물의 승리
'아! 감독님' 영정에 바친 눈물의 승리
  • 김명선 기자
  • 승인 2009.07.11 0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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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하계리그전 그리고 1993년 정기고연전

 

우승 후 동의대 선수들은 마운드에서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진=투데이코리아

■ 2009년 목동야구장

동의대는 8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2009 회장기 전국대학야구대회 하계리그 결승전에서 성균관대에게 2-1 승리를 거두었다. 춘계리그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우승이었다. 선수들에게 춘계리그와 하계리그 우승은 크게 달랐다.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아야할 조성옥 감독의 빈 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던 것. 허공을 향한 헹가레를 마친 선수들은 마운드를 둘러싸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생전에 자신들을 가르쳐주는 스승을 향해 자기들만의 방식들대로 제 각각 우승 소식을 알렸다.

각각의 선수들은 눈물로, 기도로, 혹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혼잣말과 같은 중얼거림으로 자신의 은사인 감독님과 ‘소통’을 하고 있었다. 글썽이는 선수들의 왼쪽 어깨에는 검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동의대 선수들은 대회 기간 내내 우승을 향한 비장한 결의를 보여주었고 결과는 우승이란 값진 결과였다. 비록 결승전에 패배하며 준우승을 차지한 성균관대 선수들도 경기 후 묵념을 하며 선배 야구인에 대한 추모를 함께 했다. 하계리그의 우승기는 故 조성옥 감독의 영전이 안치되어 있는 경남 양산으로 옮겨졌고 선수들은 납골당에서 조 감독의 마지막 떠나는 길을 애도했다.

동의대 야구부 버스, 맨 앞에 창가쪽 자리가 故 조성옥 감독의 자리다. 사진=김명선

조 감독은 올해 춘계리그 우승 직후 발견된 간암으로 48세의 짧은 일생을 마쳤다. 그가 야구계에 끼친 영향력에 비추어보아 너무나 짧고 안타까운 나이다. 국가대표 출신으로서 프로야구에서 롯데가 활약했던 그. 아직도 ‘Again 1992’ 행사를 주최하며 우승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는 곳.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열성적인 팬을 가지고 있다는 구도 부산에서 이루어낸 1984년, 1992년 롯데 우승의 현장에서 모두 뛰었던 선수가 바로 조 감독이다.

그리고 부산 야구계에서 그가 키워낸 제자는 이름만 모아놔도 국가 대표 선수들이 즐비하다. 백차승, 추신수, 정근우 외에도 많은 프로 선수들을 지도했다. 부산고를 고등학교 정상권으로 이끈 후 2007년부터 동의대 감독을 맡아 작년부터 3개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등 대학야구의 강호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는 지도력뿐만 아니라 선수들에게 인격적으로 많은 존경을 받는 감독이었다. 클리블랜드 소속의 추신수 선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은사로 주저없이 조 감독을 꼽을만큼 그는 선수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 1993년 잠실야구장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1993년 9월 24일 정기전. 2009년 동의대 선수들이 마운드에서 흘린 눈물을 고려대 선수들도 똑같이 흘려야했다. 고려대 최남수 감독은 추계리그 영남대와의 경기에서 조성민이 7회까지 노히트노런으로 호투하던 상황에서 안타를 허용하자 갑자기 쓰러졌다. 검사 결과 뇌혈증으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최 감독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정기전을 불과 일주일 앞둔 9월 16일, 안타깝게도 세상을 뜨고 말았다.

오열하는 강상수 선수 사진=고대신문 자료
감독을 잃은 선수들은 슬픔에 오열했다. 하지만 경기에 나서야만 했다. 감독도 코치도 없었지만 선수들은 똘똘 뭉쳤다. 당시 고교 감독을 맡고 있던 선배들도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그들에게는 정기전 승리를 감독님 영전 앞에 바치겠다는 비장한 결의만 있었다. 당시 팀의 주장을 맡았던 강상수(체교 90) LG 스카우터는 “연습을 제대로 못해 몸 상태가 엉망이었고 혼자서 감독, 코치, 선수의 역할을 도맡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며 "감독님 영전에 우승컵을 기필코 바치고 말겠다는 우리들의 의지가 승리를 이끌어냈다“고 눈시울을 붉히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준비한 정기전 당일 선수들은 왼쪽 가슴에 검은 리본이 달고 경기에 참가했다. 덕아웃 감독석의 빈 자리는 영전 사진이 대신하고 있었다. 1회초 연속안타를 허용하며 연세대에 2점을 먼저 빼앗긴 우리학교는 6회말 김종국(체교 92)의 좌월 솔로 홈런으로 추격에 나섰다. 이어서 7회말 연속 볼넷 2개로 주자 1,2루의 상황에서 조경환(체교 91)의 적시타로 동점을 이룬 후 심재학(체교 91)의 희생타로 결승점을 뽑아냈다. 고-연 정기전 역사에서 보기 드문 명승부였다. 하지만 멋진 역전승을 거뒀고, 선수들은 감독님을 외치며 오열했다.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 응원하던 고려대 학생들은 “최남수!”를 잇따라 연호했다. 상대편인 연세대 학생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선수들은 마운드에 엎드린 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이날 경기의 선발투수 였던 손민한(고려대 체교 93)은 2008년 SPORTS KU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 당시를 회상하며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나를 지탱해준 그런 경기였다”고 금새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이상훈(체교 89)은 한 팬미팅 현장에서 자신은 긴 머리카락은 신체의 일부라 자를 수 없지만 “내 머리를 자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故 최남수 감독님뿐이시다”며 은사에 대한 존경을 표한 바 있다.

선동렬, 이상훈, 손민한 등 한국야구의 기둥이 된 최고의 선수들을 발굴했던 덕장 최남수 감독의 갑작스런 작고는 야구인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야구를 위해 할일이 많았던 48세의 젊은 감독의 죽음은 야구팬들에겐 아픔이었다. 세월이 흘러 2009년, 역시 48세의 나이에 운명을 달리한 조성옥 감독은 부임 2년만에 팀을 대학 최강으로 만들었다.

훌륭했던 야구 선배인 두 분은 비록 젊은 나이에 세상과 작별했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경기장을 지켰던 두 감독의 야구와 제자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선수와 팬들 곁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1993년 잠실 야구장, 그리고 2009년 목동 야구장에서 그들은 아마도 후배 선수들이 쏘아올린 축포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 짓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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