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봉했던 일본 영화 굿‘바이는 납관사(納棺師)가 된 첼리스트의 이야기다.

악단이 해체돼 직업을 잃은 주인공은 고향으로 내려온다. 고수익이 보장된다는 말에 그는 얼떨결에 납관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그러나 시신을 알코올로 닦아낸 뒤 옷을 입혀 관에 넣는 일은 돈을 바라보고 하기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썩어가는 시체 앞에서 구토하기도 하고, 그의 직업이 알려지면서 친구들은 그를 피했고, 사랑하는 아내와 갈등도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납관의식을 겪으며 자신의 일이 세상 어떤 일보다 숭고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깊은 오해와 미움이 자리 잡은 사이라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 용서와 화해를 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 보내는 사람의 역할임을.

아무리 미움이 큰 사이라 하더라도 망자 앞에서 최대한 예를 갖춰 저승길을 배웅하는 납관사의 모습은 망자와 산자의 마음에 쌓인 앙금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결국 그의 진중한 모습은 친구들과 아내의 편견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올해 초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한 나라의 장례의식을 소재로 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인 공감을 얻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굿‘바이의 원래 제목인 ‘おくりびと(오쿠리비토)’는 ‘보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장례절차를 진행하는 납관사 뿐만 아니라 장례에 참여하는 고인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보내는 사람’일 것이다.

전 대통령이 또다른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헌화할 꽃을 던지고 나왔다는 말을 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생전에 어떤 갈등이 있었든, 얼마나 미워했던 사이였든 망자를 ‘보내는 사람’으로서 진실된 화해와 용서를 청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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