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랑이 전설에 방점을 찍다 - 박주영의 입학과 예고된 승리

2004년, 대한민국 축구사(史)에 큰 획을 그을 선수라 평가 받던 고교생이 우리학교로 진학했다. 그는 바로 박주영(체교 04, AS 모나코). 박주영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보내주었던 포항 등, K리그 11개 구단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우리학교로 온 것이다. 당시 우리학교 조민국(울산 미포조선) 감독은 K리그를 평정하고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한 이천수보다 박주영이 낫다고 평했다. 조민국 감독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박주영은 광양에서 열린 험멜코리아배 전국대학축구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 우리학교가 3년 만에 우승하는데 일조했다. 그리고 정기전에서 1골 1도움 활약하며 우리학교의 2-0승리를 이끌었다. 박주영은 정기전 뒤 바로 출전한 '2004 말레이시아 아시아 청소년축구대회'에서 6골을 넣으며, 대학을 넘어 국민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를 대학무대란 좁은 울타리에 잡아 놓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K리그의 FC 서울이 박주영을 데려갔다. 

#2. 호랑이 발톱을 잃다 - After 박주영

이후 4년간 정기전에서 우리학교는 빈공에 허덕이며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05년, 초반 실수를 만회하지 못하고 0-2로 완패. 2006년, 마지막 1분을 버티지 못하고 1-1 무승부. 2007년, 지루한 공방전 끝에 0-0 무승부. 2008년, 경기를 장악하고도 득점력 부재를 드러내며 0-1로 패했다. 정기전이 시작된 1965년부터 2004년까지 34번의 정기전에서 총 45골을 넣으며 경기당 평균 1.32골을 넣으며 33골만 넣었던 연세대에 압도적으로 앞서있었다. 하지만 2004년 정기전을 끝으로 상황이 역전 되었다. 우리는 4년 동안 단 1골만 넣으며 4골을 넣은 연대에 밀렸다. 박주영 이후 이렇다할 공격수가 없다고 쓴소리를 들은 이유다.

#3. 호랑이 벼랑으로 몰리다 - 고대축구 자존심의 마지막 보루

우리학교가 5년 동안 승리를 하지 못한 기록은 1965년 정기전 초기로 돌아간다. 1970년 3-0으로 승리하기 전까지 무려 5년 동안 승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후 축구는 우리학교를 대표하는 종목이 되었다. 70년대를 대표하는 차범근, 80년대를 대표하는 김종부, 조민국, 90년대를 대표하는 홍명보, 서정원, 이임생, 2000년대를 대표하는 이천수, 최성국, 박주영 등 국가대표 급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했다. 스타들을 배출하며 성적도 좋아졌는데, 1989년부터 1994년까지 6연승 금자탑을 포함 2004년 승리까지, 상대전적에서 14승 9무 11패로 우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2004년부터 연대에 2무 2패로 밀리며 상대전적도 턱밑까지 추격당했다. 대학무대 최고 선수라는 평을 들었던 권순형(체교 05, 강원FC), 이용래(체교 05, FC 경남)가 포함된 05학번은 정기전에서 한번도 승리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졸업했다. 06학번 05학번의 눈물을 보며 일 년 동안 칼을 갈았다고 한다.

#4. 호랑이 날개를 달다 - 마지막 퍼즐 박정훈!

사실 우리학교의 측면자원은 선수구성으로만 보면 작년이 올해보다 풍부했다. 박정훈, 김자운, 전원근, 박준태, 김익현 등 빠르고 드리블이 좋은 선수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를 끝으로 부상 중이던 박정훈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이 졸업과 프로진출로 팀을 떠났다. 우리학교의 주력 전형인 4-3-3은 측면이 살아나지 않으면 단순한 '뻥'축구가 되기 일쑤다. 올해 전반기에는 가운데 미드필더로 뛰는 박상현이 오른쪽 날개로 서는 등 측면에서 이렇다 할 해법이 보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경기력도 좋지 않아 U리그에서 중하위권으로 추락했다.

결국 김상훈 감독의 '측면'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해준 이는 부상에서 돌아온 박정훈이었다. 박정훈 돌아온 U리그 후반기 첫 경기인 한양대와의 9R부터 팀이 변했다. 난적 한양대를 1-0으로 잡았고, 명지대와의 경기에서도 4-3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박정훈은 U리그 1위 경희대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1-0승리를 이끌며 자신의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박정훈이 돌아오면서 팀이 3연승을 한 것. 이 3연승으로 우리학교는 순위표에서 우리학교가 있을 만한 자리로 돌아갔고, 선수단의 사기도 올려놓았다.

#5. 호랑이 편하게 전장에 임하다 - 김상훈 감독의 '경험' 용병술

선수단의 사기는 좋았다. 이런 좋은 분위기에서 김상훈 감독이 중시한 것은 '경험'이었다. 골키퍼 김기용(체교 09)과 왼쪽 풀백 양준아(사체 08)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이 3, 4학년으로 채워졌다. 양준아는 지난해에도 미드필더로 출전해 이미 정기전 '경험'이 있었다. 특히 4-3-3전형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허리 진영에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06학번을 대거 기용했다. 2009시즌, 김상훈 감독이 중용했던 새내기 '앙리' 박희성(체교 09)은 벤치에 앉아서 정기전을 맞이했다. 반면 연세대 신재흠 감독은 윤주태(FW, 09학번), 김민우(MF, 09학번)등 혈기왕성한 어린 선수들을 배치했다. 반면 4학년은 왼쪽 날개로 나온 공영선 혼자였다. 연세대의 혈기는 초반에 반짝했다. 초반 연세대는 윤주태의 슛을 앞세워 우리학교를 위협했으나, 이후 중원에서부터 우리학교의 압박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박정훈은 "감독님이 경기 시작 전에 U리그 경기라 생각하라고 하셨다"며 "편한 마음으로 경기한게 좋은 경기의 원동력"이라 말했다.

#6. 호랑이 포효하다 - 드디어 벗어난 박주영 징크스

경험과 더 해진 '날개'는 환상적이었다. 박정훈은 독수리의 날개를 완전 꺾어 놨다. 그리고 득점 상황에서 행운도 따라주었다. 코너킥 상황에서 경합 중 흘러나온 공이 양준아의 왼발에 걸렸다. 양준아의 슛은 강하게 골문을 갈랐다. 양준아는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공이 발에 걸렸다"며 득점상황을 회상했다. 전반을 1-0으로 앞선 채로 끝났다. 후반전에 박정훈의 패스를 받아 유준수가 통렬한 중거리 슛으로 팀의 두 번째 골을 신고했다. 잘나가던 경기에 위기가 찾아왔다. 오른쪽 수비수 오주현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남준재를 잡아당긴 것. 심판은 페널티 스폿을 가리키며 뛰어왔다. 우리학교 선수들은 강하게 항의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연세대 3학년 주장 이현웅과 새내기 골키퍼의 대결. 이현웅은 침착하게 골키퍼를 속이고 득점에 성공했다. 남은 경기는 1골 차의 살얼음판이었다. 후반 46분 연세대 김동희가 우리 아크에서 날린 회심의 슛이 오른쪽 포스트를 살짝 빗나가며 종료휘슬이 울렸다. 선수들은 승리의 환호를 질렀고, 5년 만에 박주영 징크스를 벗어냈다.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김상훈 감독은 "징크스 아닌 징크스를 깼다. 노력의 성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