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정치권력의 부패가 계속되고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던 경제는 점차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어 3월 15일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는 장기집권을 이루기 위한 자유당 정부에 의해 부정선거를 치르게 됐다. 3·15 부정선거 이후 마산에서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4월 11일 시위 과정에서 실종됐던 김주열 군이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시체로 발견됐다.

학생들의 불만이 높아지던 중‘우리는 행동성이 결여된 기형적지식인을 거부한다’는 4월 10일자 본지 사설은 학생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4월 18일 본교생 3천 여명은 신입생환영식에 참석해 오후 12시 50분 마산학생석방과 학원의 자유보장을 요구한다. ‘ 기성세대를 불신하며 각성을 촉구한다’ 는 건의문을 채택, 교문을 나와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제지를 무릅쓰고 1 천 여명이 오후 2시 20분에 의사당 앞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의사당 앞에 모여 선거를 다시 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던 학생들은 유진오 총장의 만류로  농성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종로 4가 천일백화점 앞에서 경찰이 동원한 백 여명의 깡패들의 습격을 받아 본교생 2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당시 조선일보 정범태 기자가 유일하게‘4·18 고대생 피습사건’을 찍었다.
 
4월 19일 아침,  조선일보 사회면에 톱으로 이 사진이 실리자 깡패들까지 동원해 군중에 폭력을 행사하는  정부를 규탄하는 성난 군중들과 학생들로 서울 장안이 가득 메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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