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신 박사는 실험실로 출근하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모니터엔 밤 사이 크기가 작아진 세포가 떠 있다. 어제 세포에 억제물질을 주입하고 퇴근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억제물질의 효능을 확인한 고대신 박사는 이번엔 물질에 대한 독성반응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 물질은 이번에 개발된 신약에 들어가는 것이다. 고 박사는 가상세포에 독성물질을 주입해 시뮬레이션 과정을 살피며 세포 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결과를 기록했다.

우리가 먹는 식품과 의약품에 포함된 모든 물질은 시중에 나오기 전 독성이 포함돼있지 않은지 검사를 받는다. 검사를 위해 물질 투여량에 따른 생체 반응 정도를 알아보는 실험을 거치는데, 이 때 사용하는 기술이 바로 ‘독성평가기술’이다.

기존의 독성평가기술 실험에선 쥐나 토끼 같은 동물모델을 이용했다. 그러나 연간 3만 마리에 달하는 동물이 실험에 사용되면서 윤리성 논란이 불거지자 전 세계적으로 동물실험을 규제하자는 목소리가 확산됐다. 유럽연합(EU)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단계적으로 화장품 생산과정에서 동물실험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동물모델을 이용한 독성평가 연구방식엔 기술적인 한계도 있다. 독성물질을 실제로 동물에 투여해 동물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비교·분석해야 하므로 같은 물질도 양을 달리해가며 오랜 기간(일반적으로 설치류는 90일간) 반복적으로 실험해야 한다. 그렇게 얻은 결과에서도 주어진 자극에 대한 반응만 알 수 있을 뿐, 어떤 메커니즘을 거쳐 독성물질이 변화를 일으켰는지 그 중간과정은 확인할 수 없다.

반복실험의 필요성 줄여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 ‘컴퓨터 가상실험(in silico)을 이용한 독성평가기술’이 개발됐다. 카이스트 조광현(카이스트 바이오·뇌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이 기술엔 ‘가상세포’가 활용된다. 가상세포는 살아있는 세포의 단백질과 분자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수식으로 나타낸 것으로, 실제 세포처럼 대사·신호전달·항상성 조절 시뮬레이션을 수행한다. 따라서 실제 실험을 하지 않고도 컴퓨터에서 세포를 배양하고 개량하며 질병을 유발하는 단백질이나 유전자를 발굴하게 해준다.

독성평가를 하기 위해선 기존에 있던 가상세포모델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자 하는 독성물질에 맞는 가상세포를 새롭게 개발해야 한다. 조광현 교수는 “각기 다른 독성물질이 세포 내에서 어떤 신호전달체계를 공격하는지 작용점을 찾아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더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독성평가기술을 활용하면 동일한 독성물질에 대해 실험을 반복할 필요가 없어져 효율성이 높아진다. 이 기술은 생체 가상모델에 독성물질을 투여한 후 유전자에서부터 단백질 네트워크의 반응까지 동시에 얻어낸다. 이후에도 가상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종합해 계속해서 가상모델에 반영해 나간다. 이렇게 실험데이터로 검증된 모델을 통해 반복실험 없이도 독성물질의 투여량에 따른 반응 변화를 알 수 있다.
또한 새 기술의 개발로 독성이 일으키는 변화 과정을 연속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조광현 교수는 “이전의 독성평가가 단순히 결과만을 보여줬다면 새 기술은 독성물질이 생체에 투여됐을 때 어떤 조절 기작을 거쳐 결과로 이어지는지 심층적으로 파악하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가상질병모델을 통해 질병이 발생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며,  신약 후보물질을 투여해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도 판단할 수 있다.

생명체 완전 재현에는 못미쳐

가상실험을 이용한 독성평가기술은 비 임상실험 단계에 사용되는 실험동물 수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하지만 모든 동물실험을 대체하진 못한다. 생명체가 갖고 있는 복잡성을 가상모델로 완전히 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기존 동물실험의 결과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의 효율성 제고가 목표이기 때문에 실험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주요 부분에 집중해 시뮬레이션을 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가상세포는 현재까지 축적된 실험데이터를 취합해 만들기 때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물학적 현상은 반영돼 있지 않다. 이상엽(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는 “완벽하게 실제 세포를 시뮬레이션할 수 없다는 제한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가상세포를 이용하면 기존에 가상세포 없이 연구를 할 때보다 컴퓨터 시스템적으로 정량적·정성적 분석*이 가능해져 더 많은 연구에 가상세포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정량적·정성적 방식│ 정량적 방식은 양을 헤아려 수치를 재는 것이다. ‘A를 10㎖투여 했을 때, B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음엔 20㎖ 증가했다가 이후엔 10㎖ 감소했다’가 정량적 방식이라면, 이와 반대로 ‘A가 증가하면 B가 증가하고 C는 감소한다’는 문장은 물질의 성분이나 성질만을 밝혀내는데 치중한 정성적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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