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작국립대학교 국제관계학부 4학년에 재학중인 크냐제(22)는 쿠르드족 출신 카작학생이다. 할아버지대(代)에 현재의 이라크에서 카프카스지역의 그루지야로 이주해 살다가 아버지대(代)에 카자흐스탄으로 와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필자가 “이라크전쟁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 --- “라고 채 질문을 끝맺기도 전에 “까레이츠 말라젯”-Korea is good 이라는 러시아어-이라고 말하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이유인즉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끊임없이 시달려온 약소민족의 한이 베여 있어 안타까웠다. 쿠르드족은 멀리는 약 700여년 전,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인 몽골의 기마부대로부터 최근의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 강대국들의 침략과 약탈의 대상 또는 들러리로서 이용만 당하는 보잘 것 없는 역사를 가진 민족이었다. 지금까지도 독립된 국가와 영토를 확보하지 못한 채 살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의 지원으로 독립을 보장받을려다가 오히려 후세인의 화학무기 보복 공격으로 수만명의 희생자들을 현대사에 기록했다. 현재는 이라크, 터어키, 시리아, 이란 등 4개국에 나뉘어 살고 있다. 그래서 크냐제는 초강대국 미국에 맞서는 후세인과 이라크를 지지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전이 이라크의 완패로 그것도 예상보다 빨리 끝나고 곧이어 터진 북한의 ‘핵 보유’ 발언 등을 국제뉴스를 통해서 접하고는 이런 행동을 한 것이었다. 

  크냐제는 이어, “김정일 말라젯”이라고 하면서 또 한번 엄지를 치켜세워서 필자를 당황케 했다. “사담보다 김정일이 더 배짱좋게 싸우고 있다” 라고 말하고서는 “한반도는 통일이 될 것인가?  언제쯤 통일이 되냐? “ 라며 이라크전에 대한 필자의 질문들은 까맣게 잊어먹은 듯 한반도 문제에 관한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연거푸 질문공세를 벌였다. 

  카작국립대학교 본관 구내식당에서 만난 누르술란(생물학과,21)은 카작 청년이다. 우리와 거의 비슷한 외모를 가진 남부 카작인 부모를 두고 대대로 알마타에서 살아왔다.  그는 ‘대조국 전쟁(2차대전)’ 당시 나찌 독일의 탱크에 맞서 육탄으로 사회주의 조국을 지키다 전사한 할아버지를 인터뷰 중간중간에 언급할 정도로 카작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전형적인 카작인 학생이다. 

  그러나 정작 필자의 이라크전 관련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회피하고는 화제를 슬그머니 경제적인 이슈로 바꾸었다. “생활비가 가장 비싼 도시가 토쿄, 홍콩 다음이 어딘지 아느냐?” “바로 모스크바인데, 그만큼 돈과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증거 아니겠냐!”고 말하며 은근히 러시아의 경제적 위상을 강조하였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그리고 우크라이나 벨라루시아가 현재의 관세동맹에서 화폐단일화로 까지 나아간다면 과거 소련시절의 국제경제적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기까지 했다. 정치적 얘기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누르술란의 생활신조인 양 필자의 질문을 요리조리 피해다니면서 최근 ‘사스’에 까지 화제를 옮겼다. 그러나 “뿌찐은 미국에게 ‘이제 그만 !’이라고 말해야 한다. 미국의 일방적인 행동을 더 이상 놔둬서는 안된다.”라는 한마디를 잊지 않고 해주었다. 

  삿바예바 공대 교정에서 만난 지마(전기공학 3년,22)는 “부시는 더 이상 자신의 신을 모독하지 말라”며 노골적으로 반미를 말하면서도 카작의 친미성향의 대외정책과 대 이라크전쟁에 대한 어정쩡한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필자의 질문에는 “에따 뽈리찌까(그건 현실정치야 ) ”라고 말하면서 말끝을 흐려버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순조로운 발전을 위해서는 미국이 필요하다는 것이 지마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소련붕괴 직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카스피해의 유전개발권과 가동이 중단되어 있던 중요 광산 콤비나트들을 미국과 자본주의 강국들에게 지나치게 주었다. 이젠 당시 남발된 권리들을 제한해야 한다” “우리는 신의 선물인 석유 주권을 현명하게 지켜야 한다.” 하면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실용적이고 리더십 넘치는 외교력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카작의 대학가는 자신들의 문제뿐 아니라 한반도의 통일 문제에 까지 관심을 기울일 정도로(80년대 한국의 대학가만큼이나) 정치적인 학생이 있는 반면 미국에게 일침을 놓는 말을 아끼지 않았지만 주된 관심사는 역시 ‘돈 버는 것’이 되어 버린 대학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카작의 대학인들은 이라크전보다는 졸업 후 실직자 신세를 면할려는 듯 창업과 외국어 공부에 대한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지배적이었다. 

  구소련 붕괴 후 체제전환기에 일어났던 무수한 부정부패사건, 사유화 특혜 시비, 국민연금의 미지불 사태, 대규모 밀수사건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났었음에도 반정부 대자보 하나 볼 수 없었던 카작의 대학가였지만, 이번의 이라크사태는 국내 문제가 아니어서 반전 집회정도는 기대했던 필자의 기대가 결국은 오버(?)로 결론지어졌다. 

  카작의 경제가 최근 3년 동안은 두자리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갈 곳을 잃은 시중의 여유 자금들이 부동산 시장에 몰려서, 과거 국가로부터 무상으로 분배받은 아파트와 주택들이 곱절로 오르는 바람에 너도 나도 ‘노브이 카작’ - 신 카작인(졸부를 지칭)- 이 될 수 있다는 환상에 들떠 있어서 일까?  대학인들은 아직도 높은 실업률에 때문인지,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이라크전은 끝이났다. 그러나 이라크전 종전 후 터진 북핵문제로 인해 이젠 한반도가 세계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1차적 관심대상은 아니지만...
 
김상욱 마자흐스탄 알마타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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