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최근 대학생의 학력저하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고교 교육과정의 변화에 따라 대학생의 학력이 학문을 하기 위한 기초능력 부족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인터넷 활용능력과 같이 과거에 비해 뛰어난 정보수집능력 등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높다.
이에 본지에서는 △학력의 진정한 의미 △최근 들어 학력저하가 대두된 이유 △대학의 역할 강화의 필요성 △학력저하에 대한 해결 방안 등에 대한 전문가 좌담을 준비했다.
왼쪽부터 김건(이과대 화학과 ·입학관리실장)교수, 김양분(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씨, 권오혁(사범대 국교03·단과대 수석입학)씨 백순근(서울대 교육학과)교수 
  
 


  
  
  
  
  
  
  
  
  
  
  
 

 
△최근 학력의 의미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김건 학력은 정확히 정량화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추상적으로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학문을 정량화 한다는 것은 공부하는데 필요한 도구과목인 국어와 수학, 영어를 얼마나 잘 할 수 있느냐 입니다.

백순근 저는 결론적으로 학력은 점수화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점수화 할 수 없는 것도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학력은 시대나 상황에 맞게 달리 정의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따라 점수화 여부가 결정된다고 봅니다.

김양분 저는 최근 학생들이 학문을 하는 기초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체감되고 있지만 반면 인터넷 활용이나 정보수집 등 학생들의 능력이 예전에 비해 지금 더 뛰어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력에 대해 어떤 개념을 취하느냐에 따라 학력이 저하됐다고 볼 수도 있고 예전과 다른 새로운 능력을 많이 가지게 됐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권오혁 제 의견도 여기 계신 분들과 거의 비슷해요. 먼저 학력이라는 것이 단순히 시험 성적에 국한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학생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은 모의고사 점수를 학력으로 봤어요. 저희 윗 세대인 이해찬 1세대를 단군 이래 최악의 학력이라고 하지만 모의고사 점수를 보고 욕먹는 것은 저희가 더 많이 먹었거든요. 이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이 외의 다른 것들이 학력이 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게 만들고 있어요.

△학력저하가 최근 들어 갑자기 대두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건 입시학원이 수능 문제를 훈련시키는 훈련소가 돼 버려서 학력과는 상관없이 1년 더 연습한 사람이 점수가 높게 됩니다. 재학생의 학력이 저하됐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의미로는 대입 제도가 상당히 경직돼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백순근 학력저하 여부와 관련해서 아직도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학력저하라고  별로 인정하지 않아요. 학문을 하기 위한 기초학력과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초학력과는 다르거든요. 이는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춰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구요.

수능 점수가 내려가는 것은 교육과정의 변화에 수능이 발맞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수능을 대학 갈 사람만 봤지만 요즘에는 아무나 다 보니까 평균 점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또 수능 출제 측에서도 새로운 스타일의 문제를 개발해서 넣다 보니 일선 교육과정에 없는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점수가 떨어지는 거죠. 또 서울대에서 분반 시험을 친 결과 낙제점이다 아니다 논란이 많은데 이것은 △고급반 △보통반 △노력반을 나누기 위한 것이고 대부분 의 학생들이 보통반에 가서 쉽게 학점을 받기 위한 전략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과는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라고 봅니다.

김건 본교의 경우 이공계를 예로 들었을 때, 모든 교수가 공동으로 가르치는 과목은 천명이상의 학생들이 동시에 시험을 칩니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점수가 떨어지고 선생님들의 전반적인 생각이 갈수록 애들을 가르치기 힘들다는 겁니다.

백순근 학력저하의 원인으로는 농어촌, 외국인, 장애인 특별전형 등 정원 외로 특별하게 들어오는 경우를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은 전혀 배우지도 않고 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을 보기 때문입니다. 또 서울대의 경우 이공계에 들어오는 상당한 학생들이 외국 유학 준비를 하거나 아니면 재수를 해서 의예과로 갈 준비를 해요. 그래서 교양 공부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죠.  

김양분 재수생이 재학생보다 학력이 좋은 이유는 재학생들이 수능과 내신을 같이 준비할 때 재수생은 수능 공부만 해도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 본고사 폐지 이후 생긴 수능의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며 학교 내신 평가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내신을 잘 주려고 평균을 75점 이상에 맞추다보니 학생들이 어려운 내용은 접할 기회가 없어요. 학원에서는 기출문제를 반복, 선행위주 훈련을 하다 보니 더욱 학력의 기초를 다질 기회가 적어져 학력이 저하되는 것 같습니다.

백순근 수능에 나오는 수준이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우수대학에서 원하는 것은 고급이라고 할 만한 것이지 기초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수준이에요. 국가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근거할 때 지금의 기초학력이라고 말하는 수준은 아주 낮아요. 이점을 아셔야 합니다.

김건 기초학력은 우수대학에서 요구하는 학력이 아니라 학문을 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백순근 그러한 능력은 대학에 와서 키워줘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고등학교에서는 그런 걸 가르치지 않게 되어 있어요. 따라서 이런 능력을 두고 학력저하를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권오혁 저는 비평준화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저희 학교의 경우 선생님께서 ‘수능만 잘 보면 대학 갈 수 있다’고 하셔서 고등학교 1,2학년 때 비교적 내신을 신경 안 쓰는 편이에요. 그래서 자세히 공부해야 할 교과서를 대충 공부하게 되죠. 고3이 되자 선생님께서는 수능을 대비해서 교과서 대신 수업시간에 공부할 문제집 목록을 적어주셨고 저희는 그것을 가지고 배우고 공부를 했어요. 이게 현실이에요.

김건 학력저하의 단적인 예로 일반화학을 들어보겠습니다. 미국, 일본 등 거의 모든 나라가 같은 수준을 공부합니다. 때문에 화학과에 들어온 모든 고등학교 학생들은 이 일반화학을 배울 수 있는 기초학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양분 이공계의 학력저하 현상은  우수한 대학 화학과만 그런 게 아니라 지방대의 경우 훨씬 더 심각해요.

백순건 지금 현재 우리나라 학생들이 대학에 가는 게 꼭 학문을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은 아니에요. 기초학력저하가 아니라 학문에 대한 관심부족으로 생각할 수 있어요.

권오혁 수능시험을 보고 나서 각 학원들에서 나오는 배점표에 맞춰 학교를 지원하기 때문에 학력이 낮은 것은 아닐까요? 소신껏 자신이 가고싶은 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적고 대부분이  배점표에 맞춰서 대학을 가요. 그렇게 대학에 오다보니 원하지도 않았던 공부를 해야 하고, 결국 공부 하기가 싫어지죠.

또, 우수한 대학의 이공계에 갈 만한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교과서 내의 미적분은 다 할 줄 알아요. 그런데 대학에서 실력이 저하됐다고 하는 것은 고등학교 때 배운 실력을 이어서 끌어 주는 게 아니라 더 높이 도달해야 하는 수준이 있으니까 너희들이 열심히 해서 따라와라 하는 거죠. 자연히 학생들이 어려움을 느끼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게 되고요.

백순근 지금 대학에 학문을 하기 위해서 오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개는 취직을 하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학력저하만을 논의 할 일이 아니라 대학에서 취직을 준비시켜주는 파트도 필요하다고 봐요.

김양분 내신을 잘 주기 위해서 쉬운 문제, 조금만 암기하면 되는 문제만 내다보니 학생들이 깊이 사고하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요. 뿐만 아니라 컴퓨터나 핸드폰 문화에 젖다 보니 더욱이나 깊이 사고하는 것을 싫어해요.

김건 그 단적인 예로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들의 경우 수학을 풀지 않고 외웁니다. 그만큼  단편적인 지식만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김양분 지방의 경우 상황이 훨씬 심각해요. 예전에는 전문대 갈 정도 학력의 학생들이 지방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이공계의 경우 수학이나 과학의 기초도 접해보지 못한 학생들이 많아요. 그래서 거의 공부에 손을 놓는 경우 많다고 합니다.

백순근 순수학문이 학문의 중심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TV를 만드는 원리를 아는 것보다 채널을 어떻게 돌려서 정보를 얻고 즐길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리를 아는 전문적인 기술을 배워야 하는 사람은 대학에 와서 체계적으로 키워져야 하고 그 외 사람들은 몰라도 지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권오혁 앞의 교수님 말씀대로 저희 세대는 예전에 비해 TV의 작동 원리 등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적지만 그 외에 TV를 활용해 정보를 얻는 능력은 전 세대보다도 더 낫다고 생각해요.

△본교를 예로 들면 수강신청 후 폐강된 강의의 대부분이 수업 내용이 어려운 과목들입니다. 이 때문에 전략과목이라는 말도 생겨났는데요. 이러한 모습에 대해 대학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건 근본적으로 학교책임이 큽니다. 가령 3학점이라면 모든 과목이 비슷한 시간을 투자해서 학점을 딸 수 있도록 돼야 하지만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이를 위해 이듬해 1학기부터 교양을 대대적으로 강화 할 겁니다. 아직 선진국에 비해 등록금은 1/10의 수준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대치는 미국의 교육수준을 원할 만큼 높습니다. 아직은 재정상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백순근 학생선발에 대학이 자율성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합니다. 또 대학 자체가 상당한 정도로 특성화, 전문화 돼서 직장이나 사회의 요구에 매치가 되고 연계가 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전까지는 교수와 학생이 서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학생이 들어오고 나갔을 때 학교의 통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품질을 책임진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김양분 두 분의 이야기에 동감하고요, 다른 측면으로 대학에서 교수를 평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의를 얼마나 잘 하는가 하는 것은 비중이 적고 업적에 치우쳐 평가하다보니 교수들이 학생을 잘 가르치는 것에 소홀해지지 않나 싶어요. 저 같은 경우도 매번 레포트를 내주고 싶어도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체제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강의가 내실화하기 힘들거든요. 대학의 학력저하에는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지 않나 싶어요.

김건 과거 우리나라 학생들의 경우 화학 같은 것은 세계 어떠한 대학에 가서 공부하더라도 세계 대학 교육의 질에 비해 수준이 결코 떨어지지 않았어요. 장비가 부족한 실험을 제외하면 세계의 학생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안됐는데 현재의상황이 계속된다면 외국 학생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초학력 문제가 나오고 이를 걱정하게 되는 거에요.

권오혁 이공계 기피현상의 경우 사회적 문제가 크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에 나가도 먹고살게 없거든요. 대학 들어와서 공부도 해야 하지만 취업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기 때문에 학문에 대한 기피현상이 있는 것 같아요.

김건  취업이 안 된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분야에 전문가로서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에게 직업에 대한 비전을 심어주는 문제는 IMF를 거치면서 힘들어졌는데 다시 안정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리겠죠.

백순근 앞에서 교수 업적 위주로 가다보니 강의가 소홀해진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현재 대학 내 사제지간이 소원해지는 등 학부에 대한 관심, 지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드는 부분이 있어요. 교수의 역할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만약 학력저하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그것에 대한 해결이나 대학교육, 학생 선발 방식 등이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권오혁 일단 전체적으로 대학 입학부터 과정까지 문제가 있다고 봐요. 고등학교의 영어 회화시간이라면 그에 걸맞는 수업을 해야 하고 문제집을 푸는 위주로 수업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 같아요. 문제 위주로 공부해 문제 푸는 기술만 늘리는 공부가 아닌 기초를 다질 수 있는 공부를 하도록 입시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쉽게 대강 공부를 해와서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와 처음부터 어려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를 정비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봐요.

김양분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한 제도가 보완되고 대학에 맞는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해서 대학 자체적인 입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보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우수한 능력 가진 학생들을 뽑을 수만 있다면 학생들은 입시의 방향에 민감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준비하는 방향을 좋은 쪽으로 유도하게 된다고 봐요.

백순근 저는 학력저하가 아니라고 보는 입장의 한 사람이며 학생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제도와 상황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에서 자율성을 가지고 학생을 뽑고, 체계적으로 프로그램을 준비해 학생을 길러내야 해요. 교수의 경우에는 교수와 학생사이의 관계를 진정으로 인정하는가, 또 그 학생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데 얼마나 많이 신경을 써주는가에 대해서도 자성해야 합니다. 학생의 경우 그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계에 대해 준비하며 눈앞의 부와 명성을 너무 쫓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김건 제가 보기에는 대학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요. 추천서로 뽑을 경우  천편일률적으로 다 똑같은 서류를 받게 되고 자체적으로 시험을 보려 하면 본고사 부활이라고 난리입니다. 공부 열심히 한 사람 순으로 뽑겠다고 하면 교육부에서는 이것을 줄 세우기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각 대학이 독특한 입시정책을 세우기가 힘듭니다. 현재 여러 가지 입시정책으로 포장된 것일 뿐 대학들마다 사정은 다 똑같습니다.

권오혁  마지막으로 한 말씀드리면 저도 학력 저하에 찬성하지는 않는 입장이에요.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리를 학력 저하 세대라고 말하지 말라’는 글을 보았어요. 결론에 ‘우수한 대학과 우수한 학과가 아니더라도 그곳에서 열심히 노력해 우수함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오기 전까지는 우리는 학력저하라는 말을 쓸 수 없다’ 고 말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찬성했고요, 사회적 고정관념이 바뀌지 않는 한 대학 간판에 따라 평가받는 사회에서는 입시제도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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