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학기마다 수강신청 기간이 끝나면 사라지는 과목들이 생겨난다. 이 중 대부분은 ‘중급독어작문’ 같은 어려운 교양 과목이거나 ‘시스템프로그래밍’ 등 소위 ‘점수 받기 힘든’전공과목들이다.

학생들의 수업 선호 경향에 대해 본교 교수들은 “학생들이 노력에 비해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수업을 고른다”고 입을 모은다. 학습부담을 주면 수업을 신청하는 학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수업의 난이도를 높이기 힘든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전공필수 과목 축소 등 과목선택권이 늘어나면서 학생들은 부담이 큰 수업을 회피하게 됐고, 따라서 학력저하가 우려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박인우(사범대 교육학과) 교수는 “전문적이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시키려고 해도 학생들이 피하기 때문에 학력저하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4년에 걸쳐 이뤄져야 할 전공 공부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기 힘들다는 게 교수들의 생각이다.

이공계의 경우 타 학과에 비해 학력저하 현상이 두드러진다. 전기공학부 한 교수는 “학생들이 갈수록 전문직을 선호하면서 우수한 학생 유치가 어려워지고 입학한 학생들 중 많은 수가 재수하기 위해 자퇴한다”며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 및 의욕저하를 중요한 문제로 꼽았다. 실제로 1학기 제적생통계에 따르면(지난 달 22일 기준) 공과대의 경우 120명이 자퇴했으며 일반 휴학생의 수도 219명에 이른다.

대학생의 학력저하가 지닌 문제점에 대해 교육자와 기업의 우려는 크다.  김동균(이과대 수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원서인 전공서적을 영어능력 부족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늘어나고, 학문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수가 줄면서 순수학문이 발전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대학이 기초학력이 튼튼한 졸업생을 배출해 내지 못하면서 수요자인 기업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보면 전문 인력을 배출하지 못해 국가 산업의 발전이 어두워 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학력저하의 기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서울대에서는 글쓰기 교실과 영어·수학의 수준별 분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 학사과 관계자는 “수준별 학습의 배경에는 대학생의 학습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며 “글쓰기 교실 역시 객관식 문제에 익숙한 학생들의 글쓰기 등 표현능력 부족으로 신설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반 수업 까지도 학점을 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학생들도 있다. 서울대 교육학과 한 교수는 “고급반 수준이 되더라도 보통반에서 상대적으로 점수를 더 잘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입학 전에 치르는 분반시험에서 고의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으려고 한다”며 부작용을 우려했다.

현재 본교의 학력저하 대책마련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교무지원부 수업과 담당 안선희 씨는 “학력저하에 대한 대책은 아직 없으며 교양교육실을 만들어 교양 교육과정을 개편, 관리할 계획이나 수업 분반 등의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또 최근 확대된 자유교양의 상대평가 역시 학력증진의 방편으로서 시행되고 있으나 “오히려 학생들이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을 쫓아가는 현상을 유발한다 ”는 학생들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본교생들은 점수를 잘 받는 수업을 골라듣는 현상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유경미 사범대 학생회장은 “수업의 질이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부담이 적은 수업을 택한다”며 근본적으로 수업의 질이 향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미현 공과대 학생회장 역시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특징 때문에 쉽게 배우고 온 학생들을 학교측에서 제대로 이끌어주지 않아서 수업이 어렵다”며 커리큘럼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학력저하에 대한 학교측의 대책마련은 대학 자율화 정책에 따라 더욱 요구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구연희(학술학사지원과) 씨는 “대학생의 학력에 관한 연구는 대학 특성화 등의 문제와 관련돼 국가 차원에서 시행할 수 없으므로 대학 자체 내에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강병화(생환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학생들의 학력저하는 졸업하기 위한 필수 학점이 적어 학생들이 산만하게 교양 등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며 학교측의 학점 운영에 있어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취업난 등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대학생의 학점위주 공부는 자연스런 현상이다”라는 장정우 경영대 학생회장의 지적이 있듯 대학생의 학력저하는 시대와 사회에 따른 당연한 추세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측의 수업 질 향상과 제도적인 보완은 학생들의 자기 계발 노력과 함께 학력저하의 오명을 벗겨줄 유일한 열쇠가 될 것이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