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외국인’이 아니라 ‘엑스팻(expat)’으로 불러 달라는 외국 사람이 등장했다. <대한민국 사용후기>란 책으로 유명한 스콧 버거슨(Scott Burgeson)이 그 주인공. 엑스팻은 ‘expatriate’의 약자로 한국의 매력에 사로잡혀 떠나지 못하고, 떠났다가도 돌아오는 외국인을 뜻한다. 이들은 한국 음식 정도가 아니라 한국 문화와 역사에 익숙하다.

버거슨이 지난 10월에 출간한 <더 발칙한 한국학>은 이 땅에 사는 엑스팻들의 이야기다. 그중 유제인(한국명, 본명=Zane Ivy)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제인은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고정 출연했고, 현재 본교에서 ‘Academic English’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달 18일 본지 편집실에서 미국 출신의 두 엑스팻을 만났다.

외국인에서 엑스팻으로 불러달라는 요구는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버거슨은 한국사회의 폐쇄성을 지적한다. “한국인이 미국에 가면 그들은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미국인도 일본인도 모두 외국인이다. 개별적 정체성이 무시되고 모두 ‘한국인이 아닌 자’로 취급된다”

이들은 한국사회의 폐쇄성이 해묵은 단일민족주의에서 기인하며, 미디어로 끊임없이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제인은 <서프라이즈>에 나오는 외국인을 예로 들었다. TV에 방영되는 외국인의 모습은 실제 모습이 아니라 한국인이 생각하는 왜곡된 외국인의 모습이란다. 버거슨도 거들었다. “왜 <미녀들의 수다>나 <서프라이즈>는 매력적인 젊은 외국인 여성이나 얼빠진 광대처럼 구는 외국인 남자만 보여주나. 이것이 한국이 세계를 반기는 방법인가”

제인과 버거슨 모두 국내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한국 대학생으로 이어졌다. 그들에게 ‘대학생은 어떤가. 좀 더 열려 있는가’라고 물었다. 제인은 “학생들이 말을 잘 듣고 수업에 잘 참여하지만 그 이상의 소통은 없다”고 평가했다. 버거슨은 좀 더 구체적이었다. “10년 전에는 수업이 끝나면 같이 커피를 마시거나 회식을 하며 교류했는데 요즘 대학생은 너무 바쁘고 지쳐 보인다. 학생들끼리도 열려 있지 않다. 모든 게 취업과 연결돼 스스로를 챙기는 데 혈안이다. 남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둘의 대학생활은 어땠을까. 버거슨은 UC버클리에서 영문학과 수사학을 전공했다. 그는 대학생 때 진로를 고민하며 초조해하지 않았다. 철학이든 예술이든 원하는 것을 마음껏 공부했다. 그는 “입학할 때부터 전공을 정하는 한국 대학 시스템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2년 정도는 전공에 상관없이 맘껏 공부한 뒤 전공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메리카 인디언 체로키족의 피를 물려받은 제인은 집안에서 유일한 대학생이었다. 가족 어른 중 누구 하나 공부를 시키는 사람이 없었고, 교육제도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스스로 공부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네댓 대학을 넘나들고,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갈 정도로 능동적인 학문의 길을 개척했다. 그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과 시야를 얻었고 이는 내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대학 시절을 회고했다.

그들은 한국인이 다른 관점을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버거슨은 “외국인을 한국인의 잣대로 바라보기에 오해가 생긴다”며 “외국인의 입장에서 정상인 게 한국인에게 비정상일 수 있으므로 서로 다른 관점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학생들은 우선 주변에 있는 외국 교환학생을 포용하라고 조언한다. “일본과 중국에 비해 덜 알려진 한국을 찾은 외국 유학생은 특별하다. 이들은 다른 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사람이다. 이들과 이야기하고 교류하며 다른 관점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버거슨은 한국이 지향할 ‘다문화주의’가 이상적으로 실현됐던 곳으로 1990년대 홍익대 앞을 꼽았다. 서구적인 유흥가였던 홍익대 앞에서 국적은 논외였다. 엑스팻과 한국인이 당시 유행한 일렉트로닉 음악 하나로 거리낌 없이 융합돼 새 문화를 창출했다. 엑스팻 DJ도 많았다. 하지만 1997년 경제위기가 찾아오면서 엑스팻들이 떠났고, 그후 홍익대 앞도 변했다. 버거슨과 제인은 홍익대 앞이 상업 공간으로 변질됐다며 제2의 홍익대 앞을 찾아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엑스팻은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자유주의자들이다. 버거슨과 제인이 원하는 것처럼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걷히고 점점 더 한국사회의 일원, 나아가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엑스팻이 엑스팻이 아니게 되는 모순이 생기지 않을까. 둘은 엑스팻이 한국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다만 오해의 시선이 걷힌다면 엑스팻과 한국인이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이브리드’ 문화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

고향이 그립진 않을까. 제인은 미국이 그리운 게 아니라 미국의 ‘지리’가 그립다고 했다. 사람들보다 고향의 산, 사막, 풍경이 보고 싶단다. 버거슨의 대답은 더 엑스팻다웠다. “고향이 그립냐고요? 전 항상 고향에 있습니다. 제가 몸담은 곳이 제 고향이거든요”

 

스콧 버거슨(Scott Burgeson) / 사진=이수지 기자

유제인(Zane Ivy) / 사진=이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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