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악역을 맡았다고 자처하는 사람. 그는 고국에 돌아왔지만 아직도 자신을 이방인이라 일컫는다.  쎄느강과 한강을 따라 택시운전을 하며 우리에게 똘레랑스를 이야기하는 이방인. 한국을 정말 사랑하는 이 사람 홍세화를 만나봤다.
 
△현재 한겨레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계십니다. 하시는 일은 무엇이며, 신문기자로 일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 한겨레신문에는 작년 2월에 입사했습니다. 평소 토론면과 사설 등에 관심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르몽드(Le Monde)지에 버금갈만한 토론면을 정착시키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일방적인 자기주장에서 벗어나 쌍방향적인 의사소통의 장을 열고 싶었습니다. 재작년에 한겨레신문사측에 이런 생각을 전달해 같이 일하기를 제의했고, 이를 한겨레신문사가 받아들여 한겨레신문의 <왜냐면>을 맡게 됐습니다.


△「노무현 없는 대통령」이라는 칼럼을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칼럼을 쓰신 이유는 무엇이며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한 동의와 파병결정은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미국에 예속적이었던 역사를 교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파병은 이러한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대외의존도가 높고 무디스 등에 예속돼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군사·외교문제는 자주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교육 개혁에 앞장서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학벌없는 사회’라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육 개혁을 진보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의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현재 한국사회의 교육은 모두 권력문제와 맞물려있습니다. 이런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평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학교 내 교육투쟁도 필요합니다. 현재는 대학 평준화 지향과 함께 지역별 할당제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울대를 지역학생들에게 개방하는것부터가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교육개혁을 주장하는 이유는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야만 진정한 국가 경쟁력의 발전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들간의 다툼이 우리교육의 문제점을 대표적으로 표출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특권층의 집단이기주의고 다른 한가지는 지식인들의 무식함이다. 이런 사회에서 국가 경쟁력을 기대할수 없는 것은 너무 자명한 이치입니다. 한국의 대학 졸업장은 4년간 대학교에 등록금 냈다는 증거 밖에 되지 않습니다.

△서울대의 학부개방론을 주장하고 계시는데요.
- 학부개방론은 이전부터 제의됐던 내용입니다. 지금은 우리교육자체가 붕괴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소위 SKY대학이라는 대학들이 앞장서서 개혁하지 않으면 교육이 제대로 서지 않을 것입니다. 교육개혁을 위해 지방에 있는 국립대에 서울대를 개방하고 서울대는 대학원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산 초등학교 교장 자살사건 이후에 전교조 활동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교조 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며 전교조의 활동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울러 전교조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가장 민주적 공간이어야 할 학교가 봉건적 인간관계의 현장으로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번 사건이 계기가 되어 보수적, 권위적으로 대변되는 교육 현장이 바로 잡혀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반공, 숭미, 질서, 체제순응 등의 교육을 무의식적으로 받아왔습니다. 알다시피 사회화 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교육입니다. 현재 전교조 선생님들의 반전 평화수업이 50∼60 세대들의 반체제의식으로 인해 거부되고 있어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요? 현재 초등학교는 과거 일제시대의 병영과 매우 흡사합니다. 수위실은 초소 역할을 하며 운동장은 병영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사열대에서 군대 장교에 해당하는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입학해서 가장 먼저 배우는 ‘앞으로 나란히’ 또한 군대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제식훈련과 동일합니다. 이러한 교육은 군국주의의 영향으로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는 국가주의 교육의 틀입니다. 제대로 된 교육은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지배자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지난 대선 선생님께서 특정정치인을 지지한 것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언론인이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화’입니다. 오히려 자기의 소신을 밝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언론은 공기로서 공익을 목표로 하고 생각의 다름을 표현하는데 있어 자신의 확실한 논거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공익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나의 언론활동에 논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학교를 다니시던 당시는 학생운동이 상당히 활발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일고 있는 대학생의 학생운동조직 개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며, 학생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현재의 학생운동은 물신지배로 인해 매우 약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 자체가 자아 실현이나 이성추구를 위한 운동보다는 유복하고 풍요로운 생존에만 더 많은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진보나 이상을 외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학생운동 세력 역시 물신이 지배하는 풍조아래 스스로 매몰되면서 학생대중과 괴리감이 생겨 대중성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한총련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은 잘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조금이라도 많은 학생대중을 포함하기 위해 학생운동 역시 변해야 합니다.

△프랑스에 계시던 20년동안 한국땅을 밟지 못하셨습니다.
- 프랑스에 있으면서 한국에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조국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국에 사는 사람만이 한국사람은 아니듯이 항상 한국을 그리워했습니다. 마치 아들이나 딸이 부모를 배반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나도 역시 조국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시민사회가 상당히 발전돼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시민사회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근본적으로 프랑스의 경우 시민혁명을 통해 시민이 탄생한 나라이지만 우리의 경우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문벌, 군벌, 학벌 등이 난무하고 있는 것도 우리의 봉건성을 여실히 말해 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시민의 의미는 부산 시민, 서울 시민 등 행정적 단위의 지배에 이용될 뿐 프랑스의 시티즌적인 개념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교육을 통해서도 시민교육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똘레랑스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똘레랑스란 무엇이면 한국에서 똘레랑스가 실현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 똘레랑스는 차이를 전제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며칠전에 동성애 학생들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우리사회가 차이를 차별의 눈으로 본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을 다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던 안타까운 일입니다. 현재 우리사회는 국가보안법 등 차별을 만들어내는 법으로 사상적으로 반신불수가 됐습니다. 출생지에 따른 우리나라사람들의 선입견 또한 대단해 지역갈등을 낳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절하게 학살하고 있음에도 상대방과 상황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다 똘레랑스의 부족에서 초래되는 것입니다.

△<악역을 맡은자의 슬픔>을 새로 출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악역을 맡은자의 슬픔>은 한국에 온 이후에 집필한 것으로 한국사회의 문제에 대해 좀더 많이 개입하면서 쓰게 됐습니다.
한국 지식인들이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에 비해서 너무 점잖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른바 비판적 지식인조차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지적하다보니 한국사회에서 악역을 맡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책에서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본인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이며, 한국에서도 이방인이라고 느끼시는지.
- 프랑스에서는 공간적으로 이념적으로 이방인이었습니다. 현재는 공간적으로는 이방인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방인이라고 느낌니다. 주류라는 것에 대해 정서적으로 탐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내 삶은 주류와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저서에는 한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많습니다.
- 내가 속한 사회가 조금 더 맑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판적인 책을 씁니다. 사회에 내 자신을 투영하고자 하는 자아의 욕구실현이기도 합니다.

△한국에 들어오신 이후 약 2년 정도 지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생활을 하시면서 사상적으로 달라진 점이나, 한국생활을 하시면서 특별히 느끼신 점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달라진 점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물신의 공격성에 대해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됐습니다.“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등의 광고 카피는 의식이 있는 교육자라면 분명 문제의식을 가져야하는 부분입니다. 상업성 광고에 노출돼있는 청소년들이 이런 광고 문구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 토론문화 이바지를 위해 더 충실할 예정입니다. ‘왜냐면’ 을 통해 쌍방향 토론의 질을 높이고 싶습니다.
진보적 사회운동 중에서는 한국내 외국인노동자의 문제에도 동참하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학벌 없는 사회 모임 외에도 재소자 인권운동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본교생들에게 한마디 해주십시오.
- 공부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특히 한국 현대사를 많이 공부했으면 합니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너무 무식한 것 같습니다. 나중에 지금 여러분들이 비난하고 있는 어른들과 똑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현대사에 대해 좀더 공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고국을 떠나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고국을 향했었다는 것을 인터뷰 내내 느낄수 있었다. 악역을 맡기에 그의 눈은 너무 선해보였다. 우리사회를 좀도 맑게 하고 싶다는 그의 한마디는 메아리처럼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인터뷰 현마리아 기자
mary@kunews.korea.ac.kr
 정리 이지영 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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