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의 정든 강단을 뒤로하고 떠나는 사범대 역사교육과 김현구 교수를 지난 17일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야기의 시작은 명함이었다. 인사를 하며 기자의 명함을 건네자 요즘은 대학생들도 명함을 쓰냐고 물으신다. 일본은 한자를 읽는 방법이 다양해 오래전부터 대학생들이 명함을 썼다고 설명했다.

김현구 교수는 국내 교수 중 최초로 일본으로 건너 가 일본 역사를 공부했다. 1970년대까지는 중국사 중심의 동양사가 주류였지만 김 교수는 일본과의 관계를 주목하여 일본사를 연구했다.

일본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던 국내 대학가에서 김 교수는 일본 역사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다섯 개 대학의 대학원 수업을 고려대학교에서 합동으로 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학생운동이 정점에 달했던 1980년대 학생들에게 조언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학생운동은 19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 모습과 닮았어. 일본 학생 일부는 도시게릴라 같은 폭력으로 그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했지. 반면 자신들의 주장을 열심히 공부해서 이론으로 집대성한 학생들도 있어. 학생들에게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조언했지”

25년간 손때가 배인 강단을 떠나는 느낌을 물었다. 김 교수는 한참 생각하더니 섭섭하다고 했다. “이제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하고 저술할 수 있어서 약간 해방감도 들어. 하지만 강단에 서지 못하는 게 아쉬워. 맹자가 말한 인생삼락(人生三樂) 중 하나를 잃게 된 거잖아”

김 교수의 퇴임 후 목표는 일본 역사를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연구했던 것을 일반인이 쉽게 읽도록 책으로 낼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본교가 한국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대학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늘 날의 시대정신은 국제화야. 그런데 세계의 보편적인 사람이 되는 것과 우리의 독특한 것을 세계에 소개해 세계를 다양하게 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바람직할까. 고려대가 국제화의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고 나아갈 때 비로소 한국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대학, 민족의 대학이라는 전통을 이어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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