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삼일절 새벽. 하루만 지나면 개강이다. 난 이제 정기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수습기자에서 정기자가 됐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수습일기를 써도 될까'라고 고민도 했었다. 수습기자만 쓰는 '수습일기'라는 형식상의 제한을 잊고 '수습기자였던 정기자의 일기'를 통해 힘겹고 지루했던 겨울방학을 잊고 싶다.

1. 2009년 9월 초

                 ▲지난 해 9월 7일, 나의 첫 인터뷰였던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터뷰. 

수업이 끝나고 과 친구들은 점심을 먹으려고 교우회관으로 향했지만, 나는 신문사가 있는 홍보관으로 왔다. 아직 개강 초라 홀로 홍보관에 오는 것이 낯설 수도 있지만 싫지는 않다. 신문사에 도착하자마자 본관 취재처에 전화를 돌린다. "안녕하세요? 하현희 기자입니다. 2시에 찾아뵙고자하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시계 바늘이 1시 50분을 가리키자마자 곧바로 취재수첩과 펜을 손에 든 채 본관으로 뛴다. 처음엔 무뚝뚝해보였지만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시는 학교 직원을 상대할 때면 본관 기자로서의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 학교를 가장 잘 알고 있을 수 있는 직원 분들의 말 한 마디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취재 후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기사를 구성한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사람마다 하는 말이 너무 다르다. 나는 기사를 어떻게 써야 객관적이고, 중립적일까라는 생각보단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여러 갈등이 내포되어있다는 점을 최대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기사를 쓰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점점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다. 기사 하나를 쓰고 나면 시간이 훌쩍 가버리고 배가 고프기도 했다. 기사를 다 썼다는 기쁨으로 마구 집어든 잔류 물자는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때만 해도 나의 신문사 생활은 순탄할 줄로만 알았다.

2. 2009년 11월 말

걷는 것조차 지친다. 취재점검이니 아이템이니...... 머리보다 몸이 더 지친다. 11월 내내 비염, 감기, 몸살을 끼고 살았다. 몸이 너무 무겁고 아파서 눈에 보이는 약은 있는 대로 다 먹어치웠다. 아마 11월에 먹은 약 종류만 해도 꽤 될 듯하다. 몇 주 전 중앙도서관에서 컴퓨터로 과제를 하는 도중 머리가 갑자기 어지럽고 초점이 흐려졌다. '일주일에 2~3일씩 밤새고, 요즘 무리했나보네' 세수를 하려고 화장실로 급히 향했지만 몸이 비틀거렸다. 걱정이 앞선다.

하루에 한 번 게으른 나를 탓한다. 게으르고 둔해서 시간에 맞춰 일을 하지 못한다. 부장님의 꾸중에 눈물을 훔친 적도 꽤 있었다. 물론 내가 나태하기 때문에 혼나는 것은 당연하다. 기운을 내고 열심히 일을 해야할텐데... 늘어가는 건 한숨뿐이다.

신문사에 들어오기만 하면 표정이 굳어진다. 이러한 태도는 바로 기사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졌다. 학기 초에는 작은 기사라도 직접 발로 뛰며 취재를 다녔지만, 요새는 학교 직원이 준 보도자료를 통해 기사를 쓴다. '발기사'가 따로 없다. 편집 회의가 두렵긴 하지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기사를 쓴다.

예상했던 대로 편집회의 때 내가 썼던 모든 기사는 비판의 대상이 됐다.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지난 일주일 동안 학교 공부나 과제에 충실한 것도 아니고 취재에 열의를 보인 것도 아니다. 언제부터 내 생활이 꼬이게 된 것일까. 집에 가는 발걸음이 너무 무겁다. 학점이든 기사든 어느 하나에 집중해 훌륭한 성과를 내고 싶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하는 끝없는 고민이 머리를 지배한다.

3. 2010년 3월 1일 새벽 3시.

이 글을 쓰며 지난 학기를 돌아보고 있다. 시작은 좋았으나 끝은 부끄러웠다. 고등학교 시절, 난 항상 내 인내심을 자랑스럽게 내세워왔다. 난 누구보다도 힘든 상황을 잘 버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에 오면서, 고대신문사에 입사하면서 내 인내심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즉 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깨닫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읽어본 자기계발서 중 대부분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나의 한계를 알게 될지라도 한계가 아닌 앞으로 풀어야할 숙제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또한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 하 기자가 되고 싶다. 대부분의 시간을 나 자신을 한탄하는 데 쓰기보다, 그 시간에 기사의 질과 양을 고민하고 싶다. 오는 6월, 난 신문사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부디 신문지에서 나는 잉크 냄새를 맡으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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