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고대신문사. 뷰 파인더에 고대신문사를 채우듯 대학생활에서 나란 사람을 채워준 것은 단연 고대신문이다.                                                         (사진=한상우 기자)

고대신문을 뷰 파인더에 담아보다  

지난 해 3월, 난 평소 읽지도 않던 고대신문을 집어 들고 기숙사로 왔다. 그날 밤. 룸메이트와 고대신문을 깔고 치킨을 먹다가 수습기자 모집 광고를 보았다. 사진기자로 활동하는 고대신문사의 한 동인의 사진들을 보고 일반 취재부로 지원했던 지원서를 전부 지우고 사진부에 지원했다. 전에 사진을 찍어본 적도 없었지만 그 사진들에 반해 사진기자에 지원했다. 광고 문구 중 '3학기 이상 활동 가능한 자'라는 것이 거슬렸지만 '몇 학기 하다가 나가면 되지 뭐'라는 마음으로 고대신문에 지원서를 넣었다. 지금은 어떻게 됐냐고? 지금 수습일기를 쓰고 있는 나는 군 입대도 미루고 신문사에서 3학기, 사진부 정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기자로 첫 셔터를 끊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 하나가 '셔터를 끊는다'라는 말이다. 나 또한 '셔터를 누른다'라는 말 보단 '셔터를 끊는다'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카메라 셔터라는 칼로 끊어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드는 느낌이랄까. 셔터에 의해 잘린 시간은 순간에서 영원으로 남게 된다. 내가 첫 셔터를 끊은 취재는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취임식이었다. 첫 취재에서 내 사진들은 완벽히 망했다. 카메라 LCD 창을 통해 망한 나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촬영을 망친 탓에 나의 첫 고대신문은 내가 아닌 홍보팀에서 제공받은 사진으로 1면 사진이 실렸다. 그 때가 2009년 8월 31일자 1620호 신문이었다. 이때까지 나는 찰칵찰칵하는 카메라 셔터소리를 부담스러워 했다.

 작년에 고연전 기사를 준비하다가 60년대 고연전 사진이 필요해서 신문사 내의 자료실에 들어간 적이 있다. 자료실에는 고대신문이 탄생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신문자료들이 모여 있었다. 거기서 나는 한참을 서서 먼지가 뽀얗게 쌓인 흑백사진첩들을 들여다보았다. 50년대부터 현재까지 사진부 선배들이 찍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넘겨보며 처음엔 '옛 사진이네'라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내 마음이 점차 부담감으로 변해갔다. '내가 찍은 사진들도 몇 십 년이 지난 후에도 고대신문 사진기사로 남아 있겠구나.'라는 부담감. 그래서 작년 고연전 사진은 평소 촬영보다 더 열심히 찍었다. 피사체에 최대한 가깝게 붙으려 노력했고 비가 내려도 자리를 지켰다. 그 결과 만족할만한 사진들이 나왔고 그렇게 나의 첫 사진특집이 완성됐다.

 

 (사진=고대신문 사진부)

고대신문의 기억들을 사진으로 남기다

 지금 수습일기를 쓰고 있는 날짜는 2010년 3월 9일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신문은 3월 8일자 1635호 신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신문을 만든 1620에서 지금 1635호까지, 고대신문 사진기자로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다. 반기문 UN사무총장, 오세훈 서울시장, 세계적인 문호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미란 선수 등 이름만 말하면 누구든지 아는 유명인사들 부터 정경대 1층 청소아주머니, 홍대의 괴팍한 예술가들, 날 뒤쫓아 오던 원곡동의 중국인 불법체류자들까지 정말 다양한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여러 사람들과의 인터뷰는 나에게 강의실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가르쳐줬다. 어떤 것들을 배웠는지는 수습일기에 쓰기에는 양도 많을 뿐더러 적절한 표현도 없을 것 같다. 혹시라도 고대신문에 입사하고 싶은 사람이 이 수습일기를 보고 있다면 직접 신문사에 입사해서 배워보길 권한다. 고대신문이 나에게 안겨줬던 선물은 여러 사람들에게 받았던 인생수업,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찰칵찰칵하는 셔터 음을 즐길 수 있게 된 나다.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렇게 난 조금씩 순간을 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도 고대신문 사진기자는 취재현장에 있습니다.     (사진=허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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