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는 죄악이다', '아직 멈추지 않았다' 같은 문구가 책상 곳곳마다 붙어있었다. 초시계와 초콜릿도 눈에 띈다. 책장 넘기는 소리, 샤프 줄긋는 소리도 조심하는 곳, 안암학사 행정고시동을 다녀왔다.

지난달 23일(화) 오전 7시 30분, 조식을 신청한 고시생들이 기숙사 구내식당으로 모였다. 열에 아홉은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안암학사 고시동은 실원들에게 신청을 받아 아침과 저녁식사를 제공한다. 식사 시간은 30분이 채 안됐다. 학생들은 곧장 고시동에 올라가 하루를 시작했다.

모의고사를 신청한 학생들은 매일 아침 8시부터 1시간 동안 2차 논술형 시험 답안 작성을 연습한다. 외무·행정고시 1차 시험이 막 끝나서일까. 답안을 쓰는 학생들에게서 더욱 긴장감이 느껴졌다.

열람실엔 스무 개 남짓한 책상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책상의 삼면은 두꺼운 행정학, 경제학 서적이 가득 꽂혀있었다. 고시생 서범석(정경대 통계03) 씨는 “고등학교 땐 <수학의 정석>과 <성문종합영어>가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책인 줄 알았는데, 고시 공부를 시작해보니 그만큼 두껍지 않은 책이 없네요”라며 웃었다.

오후 1시가 되면 학습조교가 강의실에서 인터넷 강의를 틀어준다. 수강생은 조교가 미리 이메일로 보내준 자료를 인쇄해서 자리에 앉는다. 강의 도중 가끔 조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마음 편히 자지 못하고 곧 눈을 떠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다.

고시동엔 4개의 스터디실이 있는데, 예약을 하면 실원 누구든 사용할 수 있다. 스터디 시간엔 아침 모의고사에서 작성한 답안을 돌려보고 서로 첨삭을 해준다. 스터디는 오랜 수험 기간에 지친 학생들간에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저녁식사 후 학생들은 다시 자습에 들어간다. 고시는 ‘엉덩이 싸움’이라 했던가. 학생들은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장민호(정경대 행정02) 씨는 “아는 친구는 모르는 사람을 두고 ‘저 사람보다 오래 앉아 있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한대요. 한 번은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도 상대방이 안 일어나서 버틴 적도 있다고 해요” 라고 말했다.

쉬는 시간에 학생들은 바깥 공기를 쐬거나 기숙사 매점에서 간식을 먹는다. 쉬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은지 신문을 읽거나 고시동에 비치된 고시 관련 자료나 수험 잡지를 읽는 학생도 있다. 행시사랑이나 법률저널 같은 인터넷 사이트를 뒤적이는 학생도 있었다.

오후 11시가 되자 학생들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10명 정도는 그 후에도 남아서 공부를 했다. ‘고시 공부가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 학생은 공부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동기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걸 볼 때 조금 힘든 것 같아요. 고시는 수험기간이 정해진 게 아니니까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죠. 그래도 뒷바라지 해주시는 부모님 생각하면 힘을 내게 돼요”

이 날 고시동의 불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꺼졌다. 긴장감과 목표에 대한 의지로 가득한 안암학사 고시동에선 오늘도 고시생들이 두꺼운 책과 씨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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