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경제학에서 주류경제학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일컫고, 비주류경제학엔 신고전파 경제학 이외의 맑스주의·스라피언·신구조주의 경제학 등이 속한다. 대학에서도 비주류 경제학은 ‘비주류’다. 국내 대학의 경제학과 중에서는 비주류경제학을 전공하는 교수가 없는 경우도 많다. 이에 비해 본교 비주류경제학은 다른 대학에 비해 전통이 깊고 연구조건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주류경제학자로서의 삶과 학문을 즐기고 있는 박만섭(정경대 경제학과) 교수를 만났다.

고려대이기에 가능

대학에선 정치경제학, 노동경제학, 경제사 등이 비주류경제학 과목으로 분류된다. 박만섭 교수의 전공은 정치경제학이다. 정치경제학은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지 않지만, 주류경제학은 경제를 정치로부터 분리하고 개인의 행동을 분석한다.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맑스경제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어려워 이를 대치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라는 설명도 뒤따른다.

본교에는 박 교수 외에 김균 교수, 정주연 교수가 비주류경제학 전공을 담당하고 있다. ‘비주류경제학이 맑스주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비주류경제학은 분야가 다양하다. 맑스주의에서 시작해 다양한 학파의 관점을 도입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을 찾기 때문이다. 세 교수 역시 맑스주의 경제학만을 다루진 않는다. 정주연 교수는 폭넓은 사회적 현상을 염두에 둔 경제학을 연구하며 김균 교수는 경제학설사, 경제사와 사회이론을 접목한 경제학이론을 연구한다. 박 교수는 신(新) 리카도 경제학이라 불리는 스라피언 경제학을 주로 연구한다.

비주류경제학 담당 교수가 3명인 대학은 본교가 국내에서 유일하다. 서울대도 2008년 비주류경제학 분야에서 유명했던 김수행 교수의 정년퇴임 이후 비주류경제학 분야 신임교원을 뽑지 않았다. 박 교수는 본교의 안정적인 비주류경제학 연구가 고려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비주류경제학 전공자가 세 명이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고대의 학풍이 작용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누군가가 은퇴해도 고려대는 정치경제학이나 비주류쪽 후임을 분명 뽑을 겁니다. 서울대는 김수행 교수 후임자를 못 뽑은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안 뽑은 거죠”

본교가 타 대학보다 비주류경제학 전공자가 많긴 하지만 1998년 박 교수의 부임 이후 12년간 비주류경제학 분야 신임교원이 없었다. 박 교수는 “이젠 고려대도 새로운 방향을 공부한 비주류경제학 전공자가 한두 명쯤은 더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국 경제학 연구가 주류에 치중된 것은 유학생 대부분이 미국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의 경제학은 거의 전부가 주류경제학이다. 박만섭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학자 중 비주류경제학 전공자는 5%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비주류경제학 연구는 유럽에서 활발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특히 비주류경제학 성향이 강하다. “유럽은 한국과 달리 비주류경제학 연구도 많이 인정하는 편이에요. 물론 유럽도 1980년대 초에 비해 비주류경제학이 더 ‘비주류’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학생들의 관심은 높은 편

본교생은 비주류경제학에 얼마나 관심을 보일까. 비주류경제학 과목은 한 학기에 한 두 개 정도 개설되고 수강생이 60명~100명 정도는 꾸준히 채워진다. “비주류경제학은 수학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듣는 학생도 많아요. 하지만 수강생의 3분의 2 정도는 관심 있는 학생 같아요. 수업 첫 시간에 비주류경제학은 수학은 적게 사용하지만 주류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주류경제학 공부보다 2배는 힘들다고 엄포를 놓아도 다들 빠져나가지 않고 그대로 있던걸요(웃음)”

대학원 연구생도 적지만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현재 박 교수 아래엔 석·박사를 합해 8~9명 정도가 공부하고 있으며, 4명 정도가 유학을 떠난 상태다. “1998년 처음 부임했을 땐 주체하지 못할 만큼 많은 학생이 들어왔는데 요즘은 덜 들어오네요. 2년에 한 명 정도가 석사로 들어와요”

출발점부터 다른 두 개의 경제학

그렇다면 주류경제학과 비주류경제학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박 교수는 “출발점에 대한 견해부터 다르다”고 설명했다. “주류경제학은 ‘인간’을 추상적으로 정리하고 그것을 근거로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펼쳐가요. 반면 비주류경제학자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죠. 사회학적인 생각을 경제학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가장 기본적인 ‘상품 가격’에 대한 견해도 다르다. 주류경제학은 모든 상품의 가격은 그 상품의 ‘희소성’에 따라 변화하며, 희소성 때문에 경제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반면 비주류경제학은 상품의 가격이 그 상품을 생산하는 생산자 또는 경제 전체의 재생산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출발점이 다르기에 분석방법도 달라진다. 희소성의 문제에선 주어진 양의 효율적인 교환활동이 분석의 중심이 되는 반면, 재생산성의 문제에서는 생산활동을 통한 자본재의 생산과 소모, 그에 따른 소득분배가 분석의 중심이 된다.

현재의 시사문제를 하나 골라 비주류경제학자의 시각으로 진단해달라고 부탁했다. 박 교수는 세종시 문제를 꼽았다. “노무현 정부 당시의 세종시 법안은 지방과 서울간의 불균형발전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지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정책이 아니었어요, 주류경제학의 중요한 관점인 ‘효율성’은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했죠. 반면 현 정부로 들어서면서 세종시 법안은 효율성의 관점으로 재단됐어요. 그 당시의 법안은 효율성 측면에서 당연히 문제가 있을 수밖에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경제학 원리도 비주류경제학자의 시각으로 보면 완전히 달라진다. 박 교수는 맨큐의 경제학에 나오는 ‘10대 원칙’을 모두 반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과서를 믿지말라

박 교수에게 비주류경제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항상 비판적 사고를 했으면 해요. 교과서에서 가르치거나 많은 사람들이 믿는 건 100% 진리도 아니고 완전하지도 않아요. 항상 그것을 비판하고, 다른 시각에서 보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비주류입니다”

그는 이어 ‘다름’을 강조했다. “만약 제가 공부를 시작할 때 맑스경제학이 주류였다면 전 신고전파 경제학을 택했을 겁니다. 제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과 다른 길에 도전하는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선택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박 교수의 눈이 빛났다.

 

박만섭 교수 약력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해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리즈 대학에서 8년간 교수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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