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 최고의 라이벌...국내 프로야구에서 두산베어스와 엘지트윈스를 일컫는 말이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두 팀의 수장은 저마다 ‘좋은 라이벌로 야구팬에게 멋진 경기를 선보이겠다’며 승부욕을 드러내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산과 엘지 프로야구팀을 이끄는 김경문(경영학과 78학번), 박종훈(경영학과 78학번) 감독은 40년 가까이 우정을 쌓은 친구다. 친구로서, 최고의 라이벌로서 쉽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두 선배를 만나 승부 이면의 인연과 우정을 들어봤다.

 

사진ㅣ한상우 기자 woo@kunews.ac.kr

 둘은 얼마나 친한 사이?

박종훈 | 서로 알고 지낸 것이 중학시절 부터니 벌써 40년이 다 돼가네요. 대학에서 함께하기 전에 고등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당시 창단 준비 중인 신일고등학교에서 우리 둘을 영입하려 했거든요. 하지만 무산돼 너무 아쉬웠죠. 본교 재학시절엔 둘이 항상 붙어 다닐 정도로 친했습니다. 지금도 자주 연락하고 만납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프로야구 일정상 라이벌 팀 감독으로 만나는 일도 잦고요(웃음).

김경문 |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제가 집안 사정상 대구로 가게 돼 아쉽게도 그럴 수 없었죠. 같이 본교로 진학하며 만났을 땐 매우 반가웠고 그때부터 아주 가깝게 지냈습니다. 졸업 이후에도 한 팀(OB베어스)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같이 1, 2군 감독(두산베어스)을 지냈어요.

 서로의 첫인상

박종훈 | 중학시절 상대팀 포수로 처음 접한 김경문 감독(둘은 서로를 정중히 감독이라 부른다)은 체구도 작고 얼굴도 예쁘장해 미소년 같았어요. 실력도 뛰어나 생긴 것처럼 야구도 참 예쁘게 잘 한다고 생각했죠.

김경문 | 박종훈 감독은 또래 선수보다 체격이 건장했어요. 타격 솜씨도 일품이었고 어릴 때부터 국내무대와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보인 터라 엘리트 야구선수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고대로 갈까, 연대로 갈까

박종훈 | 그 시절 서울 출신 야구선수들은 대부분 연대 진학을 바랐습니다. 저 역시 고민했죠. 하지만 신일고 2학년 때, 고려대 야구부 감독으로부터 ‘눈여겨보고 있다. 1학년 때부터 시합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에 고대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김경문 | 저도 마찬가지로 고민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그 시절엔 연대가 약간 우위를 보이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우연히 고교시절 지켜본 고연전에서 ‘자유 정의 진리’를 앞세워 경기하는 고려대를 보며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그 때부터 고대 진학을 꿈꿨습니다. 고려대의 조건이 더 좋기도 했고요(웃음).

 야구부 시절 에피소드

박종훈 | 김경문 감독에게 정말 미안한 기억이 있어요. 신입생 환영회 전날, 함께 농구를 하던 중 발목을 다치게 했습니다.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는 포수에게 발목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김경문 감독의 대학 선수 생활이 그때 어긋났죠. 아직까지도 너무 미안합니다.

김경문 | (그것을 아직도 기억하냐며) 선수시절 부상을 달고 지냈습니다. 부상으로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팀에 많은 기여는 못했지만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야구 전반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박종훈 감독은 야구부 시절 국가대표로 뽑히면서도 팀의 주장을 맡아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고연전에서 패배한 날엔 선수들을 다독거려 줄 만큼 동료와 후배를 배려하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선수시절 전성기는

김경문 | 박종훈 감독은 1983년 프로에 입문해 신인왕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어요. 3년 연속 3할 타자로도 명성을 날렸죠. 정말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데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은퇴를 결심한 것을 보고 대단한 결단력이라고 생각했어요. 친구의 이른 은퇴가 아쉽기도 했고요.

박종훈 | 우리 둘의 전성기는 고교 3학년 때라고 생각해요. 공주고(김경문)와 신일고(박종훈)는 대회마다 우승 후보로 꼽혔고, 그 중심엔 우리 둘이 있었죠. 특히 김경문 감독은 1977년 대통령배에서 대회 최우수선수를 포함해 3관왕에 오를 정도로 절정의 기량을 보여줬습니다.

 선수에서 감독으로 한솥밥

박종훈 | 김경문 감독이 두산 1군 감독을 맡을 때 저에게 2군 감독을 제안했습니다. 팀과 친구를 위해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고민한 뒤 수락했죠. 2007년부터 3년간 김경문 감독을 보조했습니다. 사석에선 친구였지만 팀에선 상하관계를 엄격히 지켰습니다. 수직관계를 인정했기에 서로 불편한 점은 전혀 없었어요. 곁에서 지켜본 친구는 정말 멋진 감독이었어요. 저의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경문 | 박종훈 감독이 곁에 있어 큰 힘이 됐습니다. 힘들 때마다 조언을 구하며 의지했죠. 이 기간 제가 명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팀이 좋은 결과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엔 박종훈 감독의 힘이 컸습니다.

 학업에 충실했던 야구선수

박종훈 | 우리가 입학할 땐 학과를 선택할 수 있었고 둘은 경영학과를 선택했어요. 우리는 수업에 열심히 들어갔습니다. 시험도 거르지 않았어요. 김경문 감독과 앞뒤로 앉아 시험을 봤습니다. 당시 경영학의 신수식, 지청, 서남원 교수님께서 야구장에 자주 찾아오실 정도로 야구를 좋아하셨는데 시험에 안 들어오면 학점을 안주겠다는 말이 아직 생생히 기억납니다.

김경문 | 맞아요. 우린 정말 열심히 수업 들었어요. 학과 공부가 어렵긴 했지만 학업에 소홀하진 않았어요. 부전공으론 심리학을 했는데 그 때 들은 모든 수업이 감독 생활에 도움이 됩니다. 개인적으론 스포츠인에게 심리학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운동하는 후배들이 참고했으면 합니다.

 대학스포츠를 위해

박종훈 | 요즘 대학에선 운동부 선수의 학습권을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체육특기자가 전공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학교는 체육 특기생에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봐요.

김경문 | 대학스포츠가 옛날처럼 활성화되지 않았어요. 우리가 야구부 활동할 때도 관중이 많진 않았지만 교수부터 학생까지 찾아와 한데 어울려 응원하는 정은 넘쳤습니다. 이는 본교 구성원의 몫입니다.

 정상의 자리에서 만난 소감

박종훈 | 친구끼리 감독 자리에서 만났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아직 배우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김경문 감독은 능력을 인정받아 어느덧 국민감독이 됐습니다. 정말 좋은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죠. 저는 올해 처음 감독이 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경문 | 박종훈 감독은 능력은 물론이고 야망까지 갖춘 준비된 감독입니다. 제가 조금 먼저 감독을 맡았을 뿐이죠. 친구가 잘 돼 개인적으로 아주 기쁘고 든든합니다. 하지만 상대팀 감독입장으론 상대하기가 쉽지만은 않아 경기장에선 애를 먹고 있어요(웃음).

 후배에게 전하는 키워드, 대화

박종훈 | 함께 선수 생활할 때 희망과 꿈에 대한 진심어린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그것이 저희의 소통이었죠. 많은 대화를 통해 우리의 생각과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소통의 기본은 대화에요. 후배들도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풀어가길 바랍니다.

김경문 | 박종훈 감독과 오랜 시간 함께 하며 마음에 있는 얘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많이 배려하고 이해하려 해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거라 생각해요. 함께 야구 감독의 꿈을 키운 것도 그때부터죠. 그런 대화가 서로에게 의지가 됐고, 우리를 나아가게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남룡 기자 ndragon@kunew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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