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총체 ‘번역’으로 천국을 만난다
인문학의 총체 ‘번역’으로 천국을 만난다
  • 장민석 기자
  • 승인 2010.05.22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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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윤정윤(문과대 국제어문10) 씨가 번역가 김인순(독어독문학과 77학번), 김재혁(독어독문학과 78학번) 선배를 만났습니다.

▲ 사진 | 이수지 기자 sjsj@kunews.ac.kr

 

 

윤정윤 | 번역가가 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김재혁 | 사전을 바로 보는 법부터 배우세요. 오역의 지름길은 사전에 나온 대로 번역하는 거예요. 사전에 있는 단어는 죽은 상태고, 오류가 많아요. 문학 작품 속의 단어는 맥락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변하는 살아 숨쉬는 존재에요. 그 의식의 흐름과 단어의 결을 살려야 하는데, 사전대로 고등학교 문법대로 번역하면 그럴 수 없죠.

사전에 있는 단어 하나하나를 자신의 느낌대로 새로 쓰는 훈련을 하세요. 그러면 단어를 보는 눈이 생길 거예요.

김인순 | 원론적으로 번역은 외국어로 적힌 작가의 감정과 생각을 느끼고, 한국어로 재생산하는 작업이에요. 그래서 번역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외국어 소양과 한국어 소양을 동시에 갖춰야 해요. 온전히 느끼고, 또 표현해야 하니까요. 결국 책을 많이 읽으란 소리죠.

 

윤정윤 | 번역을 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김인순 | 먼저 번역을 하고 싶은 작품의 저작권이 살아있는지 확인해야 해요. 저작권이 있으면 출판사를 통해 저작권자와 계약을 맺어야 해요.

저자 사후 50년이 지난 고전은 자유롭게 번역할 수 있어요. 번역을 한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가서 계약하면 되요.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요.

김재혁 | 한 10권정도 번역한 다음부턴 출판사에서 먼저 청탁이 와요. 이런 작품 번역해보시겠냐고. 그쯤 되면 번역가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거죠.

다만 조심할 것은 하고 싶은 작업을 주로 해야지, 상품 매뉴얼이나 기업 서류 같은 걸 번역하다보면 자기 가치가 떨어진다는 거예요. 내가 문학에 적합한지, 이론서, 실용서, 서류에 적합한지 잘 살펴 자기 분야를 정해야 해요. 하지만 보통 문학번역을 해야 번역가라고 하죠.

 

윤정윤 | 번역만 해서 먹고 살 수는 있나요

김인순 | 보수가 많이 열악해요. 독일어는 200자 원고지 한 매당 보통 3000원 정도를 받아요. 실력을 인정받은 번역가는 4000원 정도죠. 영어는 이보다 더 싼 걸로 알고 있어요.

원고료 대신 책의 인세를 받을 수도 있어요. 저작권이 없으면 인세의 12%, 있으면 6%정도죠.

김재혁 | 출판사랑 인세로 계약하면 출판사 쪽에서 흥정을 해요. 아무래도 번역가가 손해를 보죠. 그쪽은 장사하는 사람들이니까. 인세를 제대로 받기도 힘들어요. 물론 작품이 20쇄, 30쇄 찍히면 많이 벌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죠.

 

윤정윤 | 그걸 감수하고 번역을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김인순 | 번역이 좋아서 하죠. 번역을 하면 작가와의 심층적인 만남이 가능해요. 낱말 하나를 옮기기 위해서 머리를 싸매면서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작가에게 다가갑니다. 작가가 원했던 말을 찾아 한국말로 옮겼을 때의 성취감. 독자에게 그것을 전달했다는 뿌듯함. 이런 기쁨이 번역을 하는 원동력입니다.

김재혁 | 번역은 외국문학을 연구하는 방법론이기도 해요. 외국문학 교수로 독창성을 가질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나는 비교문학, 다른 하나가 번역문학을 하는 거죠. 번역과정을 통해 문학작품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는 작업은 번역가가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어요. 독일인 교수가 독일문학을 번역의 관점에서 연구할 수는 없거든요.

 

윤정윤 | 실제 번역작업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김재혁 | 맨 정신으로는 힘들어 막걸리를 옆에 두고 번역을 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번역을 하면 정말 행복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대화는 힘들고 지칠 수가 있는데, 텍스트와의 대화는 달라요. 천국에 와있는 느낌이죠. 여기에 빠지면 일상생활에서의 갈등을 잊을 수 있어요.

또한 번역은 작품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작업이에요. 완벽한 번역이란 있을 수 없지만 최대한 완벽에 다가가려 노력하는 거죠.

 

윤정윤 | 제 주위에선 번역보다 통역을 더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번역과 통역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김인순 | 번역은 혼자 해야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에요. 통역은 실용적이죠. 시대가 시대다보니 편한 길을 찾는 것 같아요. 통역과 번역의 차이는 커요. 통역이 단층적이고 일차원적이라면, 번역은 다층적이고 창조적이에요. 그래서 번역을 하려면 문학적 소양, 표현능력, 인문학 지식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만약 이게 힘들어서 번역을 피하는 거라면 참 안타깝네요.

김재혁 | 불어, 독어 등은 통역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그리고 통역은 작업으로서의 가치가 남지 않아요. 번역되지 않은 작품은 절반만 완성된 작품이란 말이 있어요. 번역엔 이해, 해석의 과정이 있고, 이를 통해 작품의 새로운 면이 드러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인문학적 사고방식과 가장 잘 맞아 떨어져요.

 

윤정윤 | 번역을 하다보면 자신의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나요

김인순 | 대부분 생기죠. 시간만 주어진다면, 나만의 작품을 쓰고 싶은 열망이 있어요. 번역가라면 누구나 그렇게 말할 거예요. 저도 아직은 못 썼지만 언젠가는 꼭 쓸 거예요.

김재혁 | 번역을 하면 남의 것만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기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어요. 그래서 창작에 대한 열망이 생기죠.

한편으론 번역과정에서 글 쓰는 방식에 대해 많이 배워요. 번역이 한국말을 풍요롭게 해준 거죠. 김수영의 시나 이상의 시에서 번역 투가 자아내는 ‘낯섦’이 한 예라고 할 수 있어요.

김인순 | 번역 투가 한국말을 풍요롭게 하는가, 아니면 오염시키는가는 미묘한 문제에요. 어느 쪽이 시대정신과 부합하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지금은 오랜 번역 투에 시달린 뒤라 순수 한국말 사용을 선호하는 거죠.

 

 

김인순 독문과 77학번
헤르타 밀러 <저지대>, 프로이트 <꿈의 해석> 등 번역
산드로마라이 작품 다수 번역

김재혁 독문과 78학번
<더 리더 : 책읽어주는 남자> 등 번역.
릴케 작품 다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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