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이스하키부 주장이었던 김혁이 국내 최초로 일본 프로팀에 입단한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일본 프로팀 입단을 결정한 그를 5일 학교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이수지 기자 sjsj@kunews.ac.kr
“사진도 찍는 줄 알았으면 좀 더 신경 쓰고 나올 걸 그랬어요” 첫 마디처럼 청바지에 반팔티 차림을 한 그는 국내 최초 일본리그 진출 선수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수수했다. 최초라는 점에 자부심도 가질 법 한데 그는 의외로 무덤덤했다. “운동은 남한테 보여주려고 하는게 아니라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에 의미를 두진 않아요”

김혁은 병역이 해결되지 않은 탓에 처음엔 스카웃 제의를 받고도 일본진출을 고민했다. 아이스하키는 상무팀이 없기 때문에 군 입대는 곧 선수생명이 끝나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업 팀에서 뛰는 선배들이 나이가 들면 군대 때문에 못 간다며 기회 있을 때 더 큰 무대를 경험하라고 조언했어요. 저도 군대 때문에 포기하는 건 억울하다고 생각했고요”

김혁은 지난 1월 일본 토호구 프리블레이즈 팀을 직접 방문하고 난 뒤 일본진출을 결심했다. 그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그를 스카웃 한 크리스 와카야바시(Chris Wakabayashi) 감독이다. 일본리그 1위 팀 감독이었던 와카야바시 감독은 지난해 토호구 프리블레이즈를 창단했다. “감독님 가르치는 스타일이 한국과는 또 달라서 배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수비수에게 공격적인 플레이도 요구하는 일본 경기 스타일 역시 저와 잘 맞을 것 같았고요”

입단을 결정한 후 김혁은 본격적으로 학원도 다니고 드라마도 챙겨보며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가장 재밌게 본 드라마는 아이스하키 드라마 <프라이드>인데 실제 경기와 다르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거의 매 경기 버저비터가 나오는데 쉽지 않아요. 저도 15년 아이스하키하면서 한두 번 경험한 게 다니까요”

재학시절 김혁은 유독 정기전과 인연이 없었다. 1학년 땐 경기 두 달 전 내측인대파열로 제 플레이를 못했고, 4학년 땐 경기 일주일 전 부상이 재발하며 진통제를 맞고 출전했다. 당시 의욕이 앞선 나머지 주먹다툼(아이스하키에선 허용)도 했다. “경기 끝나고 그 선수를 만났어요. 저는 맞질 않아서 아무렇지 않게 대했는데 그쪽은 절 피하더라고요. 제 이미지가 무서웠나봐요”

김혁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연세대 사랑’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미 선수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사실이란다. “경기 내용도 좋았고 전력도 비슷했는데 심판이 자꾸 판정가지고 장난치니깐 아무래도 힘이 빠지죠. 작년 비정기전 4번은 모두 심판 때문에 졌다고 봐요. 졸업하고 나서 연세대 친구들이랑 술 한 잔 하면서 그때 좀 심했다고 말하면 자기들도 알고 있다고 말할 정도니 말 다했죠”

4년 간 본교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묻자 2007년 종합선수권대회에서 만났던 연세대와의 경기를 꼽았다. “그 해에 정기전이 취소돼서 너무 아쉬웠거든요. 종합선수권대회에서라도 연세대와 붙으려고 다른 팀 경기를 죽기 살기로 했어요” 그렇게 해서 붙은 연세대와의 경기에서 김혁은 승부를 결정짓는 골을 성공시켜 더욱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경기가 끝나고 헬멧을 벗으면 열 때문에 머리에서 김이 나요. 김이 안 나면 그만큼 열심히 안 했다는 증거죠. 일본에 가서도 우리 학교 망신시키지 않으려면 열 좀 내야죠” 머지않아 등장할 일본의 한국인 슈퍼루키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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