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울고 대표팀도 울고 국민도 울었던 6월 26일 우루과이 전. 유독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던 한 선수가 있다. 경기 종료 10분 전 터진 역전골을 바라보며 고개를 떨궜던 김정우(체육교육과 01학번). 그는 이제 붉은 유니폼을 벗고 군복을 입었다. 국군체육부대에서 만난 그는 축구선수라기 보단 늠름한 군인에 가까워 보였다.

(사진 = 이수지 기자 sjsj@kunews.ac.kr)
“긴장 좀 푸세요”
월드컵 스타 앞이라 얼어붙은 기자에게 김정우 선수는 형처럼 편하게 대하라며 오히려 기자를 배려했다. 덕분에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김정우 선수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은 ‘숨은 주역’이다. 공격을 욕심내기보다는 팀플레이에 집중하는 편이다. 김정우는 팀 내에서 자신의 역할은 다른 선수들이 더 잘 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공격형 미드필더로 경기를 뛰어봐서 골 욕심이 있어요. 하지만 저까지 골에 욕심을 부리면 팀플레이가 무너질 수 있거든요. 그 점을 알기에 골 욕심은 잠시 접어두고 제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하죠” 그의 남다른 배려는 일상생활에서도 드러나 여자들한테 너무 잘해주지 말라는 여자 친구의 핀잔을 듣기도 한단다.

 

 

‘뼈정우’, 드디어 월드컵에서 이름을 떨치다
스물 아홉. 축구선수로는 적은 나이가 아니지만 이번 남아공월드컵이 그에겐 생애 첫 월드컵 무대였다. 2004 아테네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선 국가대표로 참가했지만 유독 월드컵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김정우의 실력은 국가대표로 발탁되기에 충분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끝내 그를 부르지 않았다. “물론 아쉬웠죠. 그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으니까요. 당시 제가 일본에서 활동해서 감독님께 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었어요”
첫 월드컵 무대였지만 본선 3경기와 16강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그리스 전과 나이지리아 전에서 보여준 역습차단 플레이는 눈부셨다. 그는 사실 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부담이 컸다고 고백했다. “올림픽에 비해 월드컵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출전해 긴장이 됐어요.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평소하고 다를 게 없더라고요”
마른 체형 때문에 붙여진 ‘뼈정우’란 그의 별명이 무색할 만큼 김정우는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에서 이청용, 박지성에 이어 가장 많이 뛴 선수로 기록됐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약을 달고 살았어요. 안 먹어 본 게 없을 정도니까요. 축구선수 치고는 마른 체형이지만 체력만큼은 자신있어요”

스물 아홉. 축구선수로는 적은 나이가 아니지만 이번 남아공월드컵이 그에겐 생애 첫 월드컵 무대였다. 2004 아테네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선 국가대표로 참가했지만 유독 월드컵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김정우의 실력은 국가대표로 발탁되기에 충분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끝내 그를 부르지 않았다. “물론 아쉬웠죠. 그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으니까요. 당시 제가 일본에서 활동해서 감독님께 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었어요”첫 월드컵 무대였지만 본선 3경기와 16강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그리스 전과 나이지리아 전에서 보여준 역습차단 플레이는 눈부셨다. 그는 사실 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부담이 컸다고 고백했다. “올림픽에 비해 월드컵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출전해 긴장이 됐어요.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평소하고 다를 게 없더라고요”마른 체형 때문에 붙여진 ‘뼈정우’란 그의 별명이 무색할 만큼 김정우는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에서 이청용, 박지성에 이어 가장 많이 뛴 선수로 기록됐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약을 달고 살았어요. 안 먹어 본 게 없을 정도니까요. 축구선수 치고는 마른 체형이지만 체력만큼은 자신있어요”

고려대, 그리고 친구

 

인터뷰 도중 갑자기 음악이 흘러나왔다. 체조시간을 알리는 음악이었다. 본교에서도 오후 12시가 되면 ‘새야 새야 파랑새야’가 흘러나온다고 말하자 김정우는 놀라는 눈치였다. “사실 운동하느라 학교생활을 거의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게 가장 아쉬워요”
그가 재학할 당시 본교 축구부엔 스타가 유독 많았다.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차두리(신문방송학과 99학번)를 비롯해 이천수(체육교육과 00학번)와 최성국(체육교육과 01학번)이 버티고 있던 고려대 축구부는 어느 팀을 만나도 두렵지 않았다. “팀 내에 청소년 대표만 5~6명이었고, 우승도 자주 했어요. 처음 출전한 2001년 정기전에선 1대 0으로 졌지만 다음 해에 4대 1로 통쾌하게 갚아줬죠”
오랜 친구인 최성국과는 군대에서 고참과 후임 관계로 다시 만났다. 군에선 고참인 최성국에게 깍듯이 대하지만 그들의 우정은 변치 않았다. 월드컵이 끝나고 최성국은 김정우의 미니홈피에 ‘사랑한다, 우리 정우가 젤 잘했어’라는 글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휴가 나와서 그 글을 봤어요. 평소엔 표현을 잘 안하는 친구라 감동 받았어요. 그래서 저도 똑같이 사랑한다고 써줬죠. 물론 친구로서(웃음)”

 월드컵은 끝났지만 김정우는 다시 시작이다
월드컵이 끝난 뒤 연일 언론에선 대표팀 선수의 해외진출 얘기가 화제다. 하지만 현재 광주 상무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김정우 만은 예외다. 메시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김정우는 국방부와 상의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동료들의 해외진출 소식이 부러울 법도 하지만 그는 해외 진출에 대한 꿈은 전역 이후 천천히 이루겠단다. 덧붙여 2년 남짓 경험했던 일본리그는 너무 외로웠다. 다음번엔 누군가와 함께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결혼에 대한 의지도 내비쳤다. “사실 아직 해외 진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다만 경기를 많이 뛸 수 있는 팀으로 가고 싶어요. 왠지 저보다 마른 사람이 많을 것 같은 베트남 리그가 저랑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나요?”
축구로 따지면 김정우의 전반전은 끝났다. 그리고 잠시 하프타임에 접어들었다. 그의 후반전은 하프타임이 끝나는 2011년 9월 21일 멋지게 다시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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