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바라는 건 없어요.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것 하나에요”
지난 8일(목) 안암병원 미화노동자들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은 병원과 용역업체에 △정원확충 △아침밥 제공 △휴게공간 마련 △다쳤을때의 응급치료 제공을 요구했다. 공공노조 서경지부 고려대분회(병원)가 결성 된지 6년. 그간 조용하던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사연은 무엇일까.

 

▲ 지난 12일(월) 오전 9시 미화노동자들이 대기실에서 아침조회를 하고 있다. 사진=이수지 기자 sjsj@

미화노동자 강 씨의 하루일과
여름날이지만 새벽 5시는 여전히 어두웠다. 지난 12일 기자는 본교 안암병원을 찾아 미화노동자의 하루를 동행했다.
안암병원 8층. 병실 환자들은 새벽잠에 빠져있을때 미화노동자 강 씨(여·60세)의 손은 분주했다.
출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청소용구가 담긴 카트를 밀고 다니며 병동 곳곳에 놓인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이다. 화장실을 청소한다. 환자들이 주로 사용하니 변기엔 오물이 튀어 있었다.
주사기와 약을 보관하는 간호실도 화장실이나 병동만큼 청소할 것이 많다. 지난밤 환자 치료에 사용됐던 거즈와 링거병이 넘쳐났고 바닥엔 피고름자국이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화장실과 병동, 간호실에서 나온 쓰레기는 의료폐기물로 취급돼 병동마다 딸린 오물처리실에서 소각용 박스에 담아 별도로 처리한다. 주스 병부터 고름을 닦은 휴지, 다 쓴 링거병, 주사기 등 각종 폐기물이 한데 모아진다. 일이 시작된 지 30분만에 77ℓ 소각용 박스 4개가 가득찼다. “8시까지는 숨 돌릴 틈이 없어요. 환자들 아침식사 전까지 청소가 끝나야 하거든요”
오전 8시. 이들은 아침을 먹으며 한숨 돌린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밥값을 절약하기 위해 도시락을 싸온다. 대기실에 미리 가져다놓은 밑반찬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운다.
PS실이 휴게실이 된 까닭
냉난방배관, 오수관, 통기관 등이 수직으로 세워진 한 평 남짓한 공간. PS(Piping Shaft)실은 미화노동자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된다. 바닥에 깔린 작은 장판 조각과 롤 휴지 박스, 걸려 있는 옷가지 몇 개가 공간의 용도를 보여줬다.
병원 측은 미화노동자들이 원래 휴게 공간이 아닌 PS실을 이용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JCI인증 검사 항목에 PS실에 관한 규정이있기 때문에 안암병원은 지난해에 JCI인증을 앞두고 PS실을 폐쇄하기도 했었다. PS실 사용은 병원이 이들의 편의를 위해 암묵적으로 눈 감아 주는 것이다.
미화노동자 대표 김윤희(여·63세) 씨는 PS실을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병원 2층 한 켠에 여자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대기실이 있지만 잠깐 쉬러 가기엔 거리가 너무멀다"고 말했다. “많은 미화노동자들은 대기실까지 오가는 시간을 아껴 PS실에서 조금이라도 쉬려고 해요. 층마다 물품보관소가 따로 없어 롤휴지나 물비누도 PS실에보관하고 있어요”
미화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 요구에 따라 몇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6일, 요구 3년 만에 2층 대기실이 넓어졌으며 병원과 용역업체는 이들의 요구 사항을 검토해 합당하다고 판단되면 11월 재계약시 반영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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