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괴물>, <여고괴담> 시리즈, 김기영 감독의 <하녀>. 이 중에서 판타스틱 영화는? 정답은 ‘모두’다.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지난 19일(목) 개막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각종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판타스틱 영화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정확히 대답하는 사람이 드물다. 대부분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처럼 화려한 CG가 화면에 가득하거나 기상천외한 미지의 세계를 다룬 영화, 대중보다 마니아가 좋아하는 장르영화가 아니냐고 되묻는다. 판타스틱 영화제는 이런 ‘마니악’한 영화만 다룬다고 생각해 거부감을 갖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오해와 달리 판타스틱 영화는 장르영화가 아닌 영화 속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을 뜻한다. 장르영화는 멜로영화, 서부영화, 공포영화처럼 관객이 표현 양식이나 전개를 예상할 특정한 틀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판타스틱 영화는 공상적인 이야기를 단순히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억눌린 감정이나 욕망을 화면 속에 표출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일탈, 충돌, 비현실을 주로 다룰 뿐이다.

제 12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인기상영작 <렛미인>
판타스틱 영화는 현실적인 공간에 비현실적 요소가 침입해 불안과 공포가 발생하는 영화를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개념이다. 판타스틱 영화의 비현실적인 요소는 공포영화, 좀비영화, 고어영화, SF영화, 괴수영화, 포르노그라피와 같은 장르영화 속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제 14회 부천영화제 권용민 프로그래머는 “현실을 재현하는 리얼리즘 영화도 존재하지만 원래 영화 자체가 인간이 만든 비현실”이라며 “판타스틱 영화는 영화 속 현실에 비현실적인 것을 끌어와 인간의 정신, 영혼, 진실을 이야기 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판타스틱 영화의 서사 구조는 현실의 체계를 뒤흔드는 전복성을 띈다. 영화사 봄 김영덕 프로듀서는 “판타스틱 영화는 장르가 아니기에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서사구조와 전복성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판타스틱 영화에 등장하는 귀신, 팜므파탈, 괴수, 신체훼손 등의 요소는 정상적 세계를 흔들어 혼란과 불안, 갈등을 낳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김소영 교수는 자신의 저서 <근대성의 유령들>에서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계급갈등을 위협적인 여성의 섹슈얼리티로 대치해 신생 도시 중산계급의 불안을 드러낸다’고 기술했다. 김영덕 프로듀서는 “1998년 시작한 <여고괴담> 시리즈가 2009년까지 이어진 이유는 여자고등학교가 지닌 억압적 환경과 현실이 다양한 판타스틱 이야기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고괴담>

현실을 흔드는 이야기는 비현실적인 요소를 더해 대중의 억눌린 감정과 욕망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공감을 얻는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선 미군의 약물방류로 탄생해 사회를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는 괴수가 등장한다. 일부 관객은 영화 속 미군의 현실을 뒤흔드는 괴물을 보며 반미감정을 해소하기도 한다. 서정남 영화평론가는 <영화의 환상성> 리뷰에서 ‘리얼과 리얼리티가 서로 부딪치고 맞버티면서 그 사이에서 의미가 획득된다’며 ‘의미 획득의 지점에 판타즘이 자리한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비현실적 이미지 속에 있는 현실적인 텍스트를 읽을 때 판타스틱 영화의 재미는 배가 된다. 판타스틱 영화 중 잔혹한 신체훼손을 다루는 고어영화나 흉물스러운 괴수, 죽은 시체가 등장하는 좀비영화는 처음엔 거부감이 들고 인상이 찌푸려진다. 하지만 잔혹하고 비현실적인 장치는 영화의 목적이 아닌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소위 마니아는 자극적인 이미지 자체보단 현실을 억압하는 것이 파괴되고 무질서해지는 모습을 보며 해방감을 느낀다. 권용민 프로그래머는 “겉으로 보이는 장면 자체를 즐길 수도 있지만 잔혹하거나 기이한 장면 속에 숨은 감독의 진정성을 찾으며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직 한국 판타스틱 영화 소재는 제한적이다. 한국영화엔 주로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귀신이나 정상적 가부장적 체계를 위협하는 팜므파탈, 혹은 도시를 위협하는 괴수가 등장하는 정도다. 해외에서 이미 여러차례 흥행에 성공한 좀비나 바디스내처(외부생물체가 들어와 인간의 몸을 바꾸는 것)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으며 흡혈귀도 최근 이시명 감독의 <흡혈형사 나도열>이나 박찬욱 감독 <박쥐>에서 다뤄지기 시작했다.

아직 다루지 않은 소재가 많다는 것은 오히려 한국의 판타스틱 영화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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