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전국 인문대학장이 모여 ‘인문학의 위기’를 선언했다. 당시 문과대 학장이었던 조광 (문과대 한국사

▲ 사진|황세원 기자 one@
학과) 교수가 오는 31일, 정년퇴임을 맞는다.

조광 교수는 한국 후기 천주교 연구의 대가이자 강만길 명예교수의 뒤를 잇는 민족사학계의 대표학자다. 그는 조선 후기의 천주교 등 ‘비주류’ 세력을 주로 연구했다. “천주교는 변혁을 지향하던 다양한 세력 중 하나입니다. 당시 비주류 세력은 사회변혁을 위한 실천적 행동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신분평등’은 오래 전 변혁을 꿈꾸던 사람들의 공입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역사와 인문학의 가치를 말하며 우리 사회의 미래를 걱정했다. 조 교수는 앞으로도 역사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겠다고 밝혔다. “전과 다름없이 계속 책을 읽고 미처 하지 못한 연구를 할 생각입니다. 한문 원전을 교열하거나 주석을 다는 일을 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역사가 우리 사회에서 푸대접 받는 상황을 바로 잡는 것이 시급합니다.”
지난 24일(화) 서관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조광 교수를 만났다.

중·고등학교 역사 교육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지금 정권은 역사를 푸대접합니다. 일례로 고교과정에서 사회탐구과목을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꿔 국사를 비롯한 인문학 관련 과목의 비중을 줄였습니다. 지나친 학습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비판 능력과 꿈 꿀 기회마저 빼앗아선 안됩니다. 중·고등학교는 인문학적 지식을 종합적으로 배워 인성을 다지는 시기입니다. 기성세대의 잘못을 비판하고, 우리 세대에서 어떤 유토피아를 만들지 꿈꾸게 하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제 키가 173cm입니다. 자기 키를 알면 자로 재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키를 추측할 수 있듯이 역사와 인문학은 자기를 이해하고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을 세워 다른 문화와 심성을 이해하게 합니다. 그 중 역사는 인문학의 기본이고요.

역사를 정의한다면
역사는 인류의 증언이고 인류의 지혜입니다. 증언과 지혜를 잘 파악할 때 인류의 미래가 밝아집니다. 역사의 주역들은 모두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 우리와 이야기 합니다. ‘죽었지만 산 사람’을 통해 인류는 막대한 지혜를 누립니다. 엘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제3의 물결>과 같은 미래 전망 능력은 결국 과거에 대한 지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대학의 인문학 역시 ‘위기’란 지적이 있는데요
인문학의 위기는 정말 비극적인 현상입니다. 인문학은 물과 공기처럼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없으면 모두가 죽습니다. 요즘 대학이 기업의 요구에 따라 맞춤형 인재를 키운다는데 말도 안되는 얘깁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맞춤’ 인재를 키우면 먼저 내놓은 ‘맞춤’인재는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대학교육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사회에 맞춘 것이 아니라 기본소양을 가르쳐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인문학을 홀대하는 대학은 빨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기업CEO도 인문학적 지식을 갖추고 자기 철학을 가져야 경영을 잘할 수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본 축적만을 목표로 하는 기업은 수명이 짧을 수 밖에 없고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대기업이 이익만을 위해 중소기업을 잠식하는 것이 비난 받듯 이익을 추구할 때도 해야 하는 일과 해선 안 될 일이 있습니다.

교과서 검정 문제로 말이 많습니다
역사교과서 검정은 역사학계와 역사교육학계에 믿고 맡겨야 합니다. 하지만 근현대사 교과서 검정에 근현대사 전공자가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역사는 사실과 사관이 합쳐져야 진실과 우리 삶을 생동감 있게 밝힐 수 있습니다. 이번에 역사편찬위원회가 검정을 통과한 역사교과서를 봤더니 ‘사실’마저 틀린 부분이 많았습니다. 전공자가 아니면서 참여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그들을 위촉한 당국이 더 큰 문제입니다.
한일공동연구위원회에 참여했는데, 한일관계 회복의 관건은 무엇인가요
일본이 한국병합조약(한일병합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해야 합니다. 일본은 한국병합조약이 국제법적으로 유효했다고 주장하지만 강압적으로 체결된 사기 조약이기 때문에 불법침략조약이 맞습니다. 한국병합조약이 법적으로 정당하단 말은 당시 독립운동가는 다 죄인이란 소리와 같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적게나마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도 감정적으로만 일본을 대하지만 말고 객관적으로 인정할 건 인정하고 용서할 준비가 돼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에 앞서 가해자인 일본이 더 적극적으로 과거사를 정리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한일우호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고대정신’의 현대적 의미는
‘민족고대’가 절대 나쁜 게 아닙니다. 다만 열려있고, 대화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공존을 추구하는 민족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휴머니즘입니다. 휴머니즘을 간직하는 것은 ‘고대정신’을 키워가는 데 중요합니다. ‘민족고대’이되, 휴머니즘에 기초해 민족과 세계 인류를 생각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고려대는 그것을 함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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